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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원 내고 OTT 하루만 보면 안 돼? ‘1일권 판매’ 논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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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하루 단위로 온라인 동영상(OTT) 이용권을 판매하는 사이트가 등장해 콘텐트 업계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31일 공개된 ‘페이센스’ 얘기다. 이 사이트는 주요 OTT 서비스의 한 달 이용권을 하루 단위로 판다. OTT 회사들과 제휴를 맺지 않고 임의로 이용권을 쪼갰다. 넷플릭스 1일권은 600원에, 웨이브·티빙·왓챠·라프텔 1일권은 각 500원에, 디즈니플러스 1일권은 400원에 한정 판매하는 식이다.

12일 OTT 업계에 따르면, 웨이브·티빙·왓챠 등 국내 OTT 3사는 이를 ‘불법 쪼개기 판매’로 보고 지난 10일 페이센스에 영업 중단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서비스 개시 11일 만이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페이센스는 각 OTT에서 4인용 프리미엄 이용권을 구매한 뒤, 이 계정을 재판매·공유하는 방식이다. 월 1만7000원인 넷플릭스 이용권으로 단순 계산하면 30일 기준 120명에게 팔아 최대 7만2000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 월 이용권 하나당 5만5000원의 차익이 남는 셈이다.

이와 관련 송홍석(36) 페이센스 대표는 팩플팀에 “OTT 시장을 교란하려는 것이 아니다”라며 “페이센스가 합리적인 소비자들의 요구를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다만 누적 이용자 수나 약관 위반에 대한 입장 등은 밝히지 않았다.

실제 소비자들도 ‘기발하다’는 반응이다. 원하는 콘텐트만 몰아보고 싶을 때 페이센스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면 적지 않은 돈을 아낄 수 있어서다. OTT 업체가 손해를 떠안는 구조다. 제 돈 주고 OTT를 쓰는 다른 소비자 불만도 커질 수 있다.

OTT 업체들은 “명확한 약관 위반”이란 입장이다. 이들은 약관에 ‘이용권의 타인 양도 및 영리 활동 금지’, ‘회원의 아이디와 비밀번호 관리 책임’ 등을 명시하고 있다.

이용권 재판매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물론 비밀번호를 바꿔가며 같은 계정을 여럿에게 공유하는 것 자체가 민·형사상 책임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페이센스 측은 일반 소비자들에게 “법률을 위반하지 않았으니 불법이 아니다”라고 안내하고 있다.

OTT 업계가 유례없이 빠른 법적 조치를 예고한 배경엔 페이센스에서 일 단위 계정을 구매한 소비자를 현실적으로 제재하기 어렵다는 고충이 깔려있다. 국내 OTT 업계 관계자는 “어떤 계정이 제3자로부터받은 것인지 기술적으로 적발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비밀번호가 지나치게 자주 바뀌는 패턴 등으로 추정할 순 있겠지만, 그런 계정에 일괄 이용 차단을 결정하는 건 또 다른 문제”라고 토로했다.

물론 ‘단기 이용권’ 도입은 OTT 업계의 오래된 고민이다. 한 국내 OTT 관계자는 “일일 또는 주간 이용권을 고려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라며 “구독모델은 영화·드라마당 1000원 이상인 단건 결제의 부담을 낮추는 대신 소비자가 일정 기간 구독을 지속할 것이란 전제로 창작에 투입할 비용을 계산하는데, 그 최소 단위가 월간~연간 단위 구독료”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구독경제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 전호겸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구독경제전략연구센터장은 “페이센스가 위법인 것과는 별개로, 다양한 구독 서비스의 범람으로 비용 부담을 느끼는 소비자들을 위한 요금제를 고민할 때가 됐다”며 “실제 해외 B2B 회사들의 경우 쓴 만큼만 돈을 내는 단가제(per unit pricing)를 통해 매출 성장을 이루는 등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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