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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발목꺾기 법"vs"국회무시 방지법"…시행령 견제법 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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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간사가 지난달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위 전체회의에서 야당 반대에도 윤석열 대통령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을 임명한 것에 반발하며 의사진행발언을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간사가 지난달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위 전체회의에서 야당 반대에도 윤석열 대통령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을 임명한 것에 반발하며 의사진행발언을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2015년 “배신의 정치”(박근혜 전 대통령) 발언의 진원지였던 국회법 개정안이 2022년 국회에서 다시 공방의 대상이 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행정입법을 견제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 발의를 예고하자, 국민의힘은 “정부완박 시도”라며 반대하고 나섰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2일 조응천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할 예정인 국회법 개정안과 관련해 페이스북에 “민주당이야말로 문재인 정부 시절 대통령만 바라보며 민망한 기립표결과 날치기를 반복했다”며 “행정부의 국회 패싱(무시)을 방지하겠다는 민주당의 주장 자체가 언어도단”이라고 썼다.

권성동 “국회법 개정안은 국정 발목꺾기”

조 의원이 발의할 국회법 개정안엔 “시행령이 상위법령인 법률의 취지와 내용에 어긋나면 국회 상임위원회가 정부에 수정·변경을 요청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현행법은 시행령 등이 법률을 위반했는지 국회는 ‘검토’만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개정안은 국회가 시행령 등에 직접 관여할 권한을 주는 것이다.

권 원내대표는 이에대해 “지금처럼 국회 권력이 일방적으로 쏠려있고, 그 권력의 당사자가 폭주를 거듭할 경우, 개정안은 의회독재와 입법폭주를 조장하여 삼권분립의 본질을 침해할 수 있다”며 “민주당은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검수완박을 하더니, 지방선거를 패배하자마자 ‘정부완박’을 시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청사 대접견실에서 열린 국민의힘 지도부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권성동 원내대표.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청사 대접견실에서 열린 국민의힘 지도부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권성동 원내대표. 연합뉴스

권 원내대표가 반발하고 나선 것은 조 의원 법안이 시행될 경우 윤석열 정부의 국정추진 동력이 크게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국회 다수 의석을 점하고 있는 현재로선 정부·여당 주도로 법률 개정이 쉽지 않다. 윤 대통령 입장에선 국회를 거치지 않고 개정할 수 있는 시행령, 시행규칙, 훈령 등 행정입법 수단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행정입법에까지 국회가 관여할 경우 “국정 발목잡기를 넘어 발목꺾기”(권 원내대표)를 당할 것이라는 게 국민의힘 판단이다.

2015년 여당이었던 새누리당(국민의힘의 전신)의 유승민 원내대표가 새정치민주연합이 요구했던 이번과 비슷한 내용의 국회법 개정 요구를 수용하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라고 강하게 비난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법안 발의 시점을 두고 민주당의 ‘내로남불’이라는 국민의힘의 반발도 나온다. 20대 국회 후반기 여야 갈등으로 입법 기능이 지체되자 문재인 정부도 ‘시행령 정치’를 했다. 개정된 시행령이 헌법이나 상위 법률을 위배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예컨대 경제사범 취업제한 대상을 ‘재산상 손해를 끼친 기업체’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시행령은 과잉금지라는 위헌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 민주당에서 국회가 정부의 시행령을 견제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진 않았다.

조응천 “국회 입법권 무력화 방지하는 적절한 입법”

국민의힘측의 비판에 대해 조 의원은 페이스북에 “행정부가 법 취지를 왜곡하거나, 위임 범위를 일탈하거나, 국민의 자유·권리를 제한하는 등 법률에서 규정해야 할 사안까지 행정입법을 통해 규율할 경우 국회는 입법권을 가진 헌법기관으로서 행정입법의 내용을 통제할 의무가 있다”며 반박했다.

2015년 6월 정의화 국회의장(가운데)이 중재한 국회법 개정안에 합의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왼쪽)와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이 합의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배신의 정치"라며 유 원내대표를 강하게 비난했다. 중앙포토

2015년 6월 정의화 국회의장(가운데)이 중재한 국회법 개정안에 합의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왼쪽)와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이 합의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배신의 정치"라며 유 원내대표를 강하게 비난했다. 중앙포토

민주당이 국회 과반 의석을 점한 만큼 조 의원 법안을 강행 처리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법률 공포까지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2015년 국회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의결됐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부 기능이 마비될 것”이라며 거부권을 행사해 법률 공포는 무산됐다. 윤석열 대통령도 민주당이 밀어붙이기에 나설 경우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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