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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루나 50조 증발'에도 권도형에 사기죄 묻기 어렵다…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국산 암호화폐 루나(LUNC)와 테라USD(UST) 폭락 사건의 고소장을 접수한 검찰이 수사 착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인 개발사인 테라폼랩스와 권도형 최고경영자(CEO)에 대해 사기 등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고, 강제수사를 하더라도 그 대상과 실효 등이 분명치 않아서다. 검찰은 당분간 법리 검토를 이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할 시기 등을 결정할 걸로 보인다.

12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른바 '루나 폭락' 사태를 수사하게 된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은 이 사건의 법리 검토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달부터 최근까지 남부지검에는 루나 폭락 사태 관련 고소·고발장이 최소 3건 접수됐다. 법무법인 LKB앤파트너스와 대건, 네이버 카페 '테라 루나 코인 피해자 모임' 등이 테라폼랩스와 권도형 CEO 등에 대해 제기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상 사기 및 유사수신행위법 위반 등 혐의 고소·고발 사건은 그 피해 금액만 100억원이 넘는다.

암호화폐 거래소 통한 판매…권도형에 사기죄 묻기 어렵다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야후파이낸스 캡처]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야후파이낸스 캡처]

합수단은 이 사건에 사기죄를 적용할 수 있는지를 놓고 고심하고 있는 걸로 알려졌다. 형법(제347조)상 사기는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제1항)한 경우' 또는 '제삼자로 하여금 재물의 교부를 받게 하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게 한 경우'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테라폼랩스와 권 CEO의 경우 손실을 입은 코인 투자자들에게서 직접적으로 재산상의 이익을 취했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다. 이들 투자자가 매수한 루나와 테라USD는 국내·외 암호화폐 거래소를 통한 것이라서, 법률에 명시된 '재산상의 이익'이 해당 거래소에 코인을 올린 매도자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합수단은 시중에 유통되는 것이 아닌 최초 발행 당시의 코인을 구매한 투자자들을 선별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테라폼랩스로부터 발행된 코인을 직접 매수한 투자자는 '사기로 인한 피해의 당사자'가 될 수 있어서다.

"1조 5000억 사전 발행 기망 따지면 사기죄" "유사수신 엮어야" 

테라폼랩스가 2019년 4월 블록체인을 가동할 당시, 법인 앞으로 코인 10억개(당시 환율로 1조5600억원어치)를 사전 발행하고도 이를 거래소 백서 등에 기재(공시)하지 않아서 최근 문제가 된 '사전 발행' 논란으로도 형법상 사기죄의 구성요건인 기망행위가 성립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의 모습. 뉴스1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의 모습. 뉴스1

자본시장법 박사인 김정철 변호사(법무법인 우리)는 "루나와 테라USD가 최초 발행된 이후 거래소 거래 과정에 테라폼랩스나 권 CEO 등이 관여했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에, 거래 과정에서 코인이 폭락한 문제를 갖고 이들에게 형법상 사기죄를 묻기는 어렵다"고 봤다. 김 변호사는 다만 "검찰이 테라폼랩스의 '사전 발행'의 기망 행위를 짚어서 발행 액수 전체를 사기 액수로 특정해 수사한다면, 최초 투자자의 의사와 관계 없이도 사기죄로 처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 일각에선 테라폼랩스가 코인을 기초로 한 일종의 금융 서비스 '앵커프로토콜'을 출시한 뒤 '연 20%의 이자를 제공하겠다'고 말하며 투자자를 모은 것이 사기를 동반한 유사수신행위에 해당할 수 있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송성현 변호사(법무법인 한누리)는 "앵커프로토콜을 통해 연 20% 이자를 준다고 약속하면서 투자자들로부터 회사로 코인을 예치 받은 것이 핵심"이라며 "이 경우 유사수신행위와 사기를 한 데 묶어서 적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합수단은 '스터디' 중…"美처럼 미등록 증권 혐의도 따져볼 만"

합수단은 업계 전문가 등에게 설명을 들으면서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사건을 스터디하며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달엔 블록체인 초기 개발 작업에 관여한 테라폼랩스 전 직원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하기도 했다. 합수단은 이런 검토 작업을 조금 더 진행한 뒤 이 사건의 처리 방향과 수사 착수 시기 등을 결정할 방침이다. 합수단에는 아직 전담 수사팀조차 꾸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검찰이 본격 수사에 착수하더라도 테라폼랩스나 권 CEO 등에 대한 강제수사는 곧장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테라폼랩스 한국지사가 법인 해산 뒤 사무실까지 철수하는 바람에 압수수색 대상이 불분명해졌고, 권 CEO는 싱가포르 등 해외에 체류 중이기 때문이다. 권 CEO를 강제 송환하려면 여권 무효화나 범죄인 인도 청구 등 절차를 거쳐야 한다. 강제수사의 한 방법으로 코인거래소에 등록된 계좌를 들여다보는 것 역시 해외 거래소의 협조를 장담할 수 없다.

김정철 변호사(법무법인 우리). 중앙포토

김정철 변호사(법무법인 우리). 중앙포토

암호화폐 사기란 전례 없는 수사인 만큼, 아예 다른 시각에서 사건에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정철 변호사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미등록 증권을 문제 삼아 권 CEO에게 소환조사를 통보한 전례가 있으니 우리 검찰도 이 코인의 증권성 여부를 심도 있게 조사할 필요가 있다"며 "단순히 수요·공급 원리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비트코인과 달리 테라폼랩스가 출시한 '미러프로토콜'은 애플이나 테슬라 등 미국 주식 가격을 추종하는 파생상품 거래를 제공했기 때문에 자본시장법상 미등록 증권행위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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