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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적' 규정하며 전원회의 함구…핵 버튼 쥔 北의 교란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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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당ㆍ군의 고위급 인사를 대폭 교체하며 대남 및 대미 전열을 정비했다. 최근 대남 전술핵 위협을 고도화하기 위한 핵실험 준비를 마친 가운데, 한국을 상대로 '대적 투쟁'도 예고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10일 당 중앙위원회 본부회의실에서 진행된 전원회의 확대회의에 참석한 모습. 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10일 당 중앙위원회 본부회의실에서 진행된 전원회의 확대회의에 참석한 모습. 노동신문. 뉴스1.

북남관계→대적 투쟁 변경

11일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8일부터 사흘 동안 진행된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론에서 "대적 투쟁과 대외사업 부문에서 견지해야 할 원칙들과 전략전술적 방향들이 천명됐다"고 밝혔다.

북한은 직전 전원회의였던 지난해 12월 회의 결론에선 "북남관계와 대외사업 부문에서 견지하여야 할 원칙적 문제들과 일련의 전술적 방향들을 제시하였다"고 했다. 이번엔 '북남관계'를 '대적투쟁'으로 바꿔 부르면서 남북 관계를 적대적 관계로 강경하게 규정한 것이다.

앞서 2020년 6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대북 전단 살포를 빌미로 남북 통신연락선을 차단하면서 "대남 사업을 철저히 대적 사업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지난해 10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국방발전전람회 연설에서 "우리의 주적은 전쟁 그 자체이지, 남조선이나 미국, 특정한 그 어느 국가나 세력이 아니다"라고 말해 주적 개념을 접어뒀다.

그랬던 북한이 2년 만에 다시 '한국은 적'이라는 개념을 꺼내든 건 '북한을 적'으로 규정한 윤석열 정부에 맞불을 놓는 성격으로 볼 여지가 있다. 최근 사실상 한국을 타깃으로 하는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을 연달아 발사하는 행보와도 같은 맥락인 셈이다. 북한은 지난 4월에도 김 부부장의 담화를 통해 "남조선이 군사적 대결을 선택하면 핵 전투 무력을 수행해 전멸하겠다"며 대남 핵사용을 언급하는 등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10일 당 중앙위원회 본부회의실에서 진행된 전원회의 확대회의에 참석한 모습. 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10일 당 중앙위원회 본부회의실에서 진행된 전원회의 확대회의에 참석한 모습. 노동신문. 뉴스1.

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번 전원회의에서 "강대강, 정면승부의 투쟁원칙을 재천명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은 전했다. 이와 관련, 앞서 김 위원장이 천명했던 "강대강, 선대선" 기조(지난해 1월, 당대회)와 "대화ㆍ대결에 다 준비하라"는 메시지(지난해 6월, 전원회의)에 비해 한층 강경 일변도로 돌아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면서도 이번 전원회의 보도에서 한ㆍ미를 직접 언급하거나 핵실험과 관련해 구체적 발언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전원회의부터 대남ㆍ대미 전략을 함구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북한은 전원회의가 진행 중이던 지난 10일에도 전날(9일) 회의 사실에 대한 보도를 건너 뛰었다. 이는 김정은 집권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와 관련, 최근 북한이 이어온 '침묵의 교란술'의 일환이란 분석이 나온다. 북한은 지난달 4일부터 다섯 차례에 걸친 미사일 발사 관련 보도도 모조리 생략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10일 당 중앙위원회 본부회의실에서 진행된 전원회의 확대회의에 참석한 모습. 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10일 당 중앙위원회 본부회의실에서 진행된 전원회의 확대회의에 참석한 모습. 노동신문. 뉴스1.

당ㆍ군 '전열 정비'

이처럼 대외 전략은 비밀에 부치면서도, 이를 추진할 핵심 인력은 대거 교체했다. 최근 고도화하는 핵 위협에 한ㆍ미ㆍ일이 똘똘 뭉쳐 확장 억제력을 강화하자, 북한도 기존 체제로는 응수가 어렵다고 판단한 것일 수 있다.

우선 미국통이자 2018년~2019년 두 차례의 북ㆍ미 정상회담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외무상으로 승진했다. 이선권 외무상은 대남 사업을 총괄하는 통일전선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또한 2018년~2019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으로 대남 협상 전면에 나선 경험이 있다. 외무상 재임 기간(2020년 1월~2022년 6월)엔 대외 활동이 저조했는데, 애초에 외교 경험이 전무한 데다 코로나19까지 겹친 탓이었다.

지난 8~10일 당 전원회의에서 외무상에 임명된 최선희 전 외무성 제1부상. 노동신문. 뉴스1.

지난 8~10일 당 전원회의에서 외무상에 임명된 최선희 전 외무성 제1부상. 노동신문. 뉴스1.

최선희와 이선권 모두 대미, 대남 협상 국면에서 존재감이 워낙 컸던 인물들이라 김정은이 장기적으로는 대화나 소통을 염두에 둔 인사를 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현재로선 이들의 전진 배치 자체를 '대화 신호'로 보기엔 무리라는 지적이다.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는 "김정은의 대외 인식은 여전히 그대로라 북한이 먼저 대화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북ㆍ미 모두 서로를 향한 협상 문턱 자체를 높여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외에도 북한의 실질적 2인자로 불리는 조용원 당 조직비서가 조직지도부장까지 겸하게 됐고, 당 정치국과 비서국도 대폭 물갈이가 이뤄졌다. 군부 핵심 3인방(국방상, 총정치국장, 총참모장) 중 국방상을 제외한 2인도 바뀌었다. 이와 관련, 통일부는 "당 조직 지도 및 통제를 강화하고 군 기강을 확립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8~10일 당 전원회의에서 통일전선부장에 임명된 이선권 전 외무상. 노동신문. 뉴스1.

지난 8~10일 당 전원회의에서 통일전선부장에 임명된 이선권 전 외무상. 노동신문. 뉴스1.

핵 버튼 언제 누르나

한편 북한은 전원회의 종료 이틀째인 12일까지도 핵실험 관련해서는 준비를 마친 채 대기 상태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핵실험장이 있는 풍계리의 날씨 등 물리적 변수가 있지만, 중국의 만류도 만만치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북한은 의료품과 백신 등 코로나19 방역에서 중국의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지난해부터 중국의 정치 행사나 고위급 방한 일정을 아랑곳 않고 무력 시위를 하던 북한도 핵실험급 도발은 중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중국은 과거부터 북한의 핵 보유를 분명히 반대해온 데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이어 핵실험 도발에서까지 북한을 연거푸 두둔하며 '뒷수습'을 하기도 난처한 상황이다.

또한 미ㆍ중 갈등 국면서 북핵 문제가 자꾸만 불거지는 것 자체가 중국에게 외교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된다는 지적이다. 김흥규 아주대 미ㆍ중 정책연구소장은 "중국은 북핵 고도화로 미국에 대중 압박의 명분을 주고, 한ㆍ미ㆍ일 안보 협력이 강화하는 상황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2016년 1월 4차 핵실험부터는 중국에 사전 통보하지 않고 강행했던 북한의 과거 패턴을 볼 때, 언제든 '마이웨이' 행보를 이어갈 가능성도 열려 있다는 게 한ㆍ미 당국의 판단이다.

지난 8~10일 당 중앙위원회 본부회의실에서 진행된 전원회의 확대회의. 노동신문. 뉴스1.

지난 8~10일 당 중앙위원회 본부회의실에서 진행된 전원회의 확대회의. 노동신문.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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