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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인센티브" 여당은 "과태료"…납품단가연동제 엇박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 하청업체가 원청에 납품하는 단가에 이를 반영해 납품 단가를 인상해주는 '납품단가연동제'에 대한 중소기업의 기대가 커지고 있다. 국내 중소기업 3분의 2는 최근 원자재 값 폭등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책으로 납품단가연동제를 꼽기도 했다. 납품단가연동제는 2008년부터 도입이 검토됐지만, 시장 원리 훼손 등의 이유로 계속 미뤄지다 윤석열 정부 들어 추진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는 각기 다른 해법을 내놨다. 여당은 원자재 가격과 납품단가의 연동을 강제하고 지키지 않을 경우 고액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정부는 강제가 아닌 자율로 하되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연동제가 정착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강제·페널티 vs 자율·인센티브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가운데)과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 ㈔한국창호커튼월협회 등 18개 중소기업 단체 관계자들이 4월 11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 납품단가 제값받기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가운데)과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 ㈔한국창호커튼월협회 등 18개 중소기업 단체 관계자들이 4월 11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 납품단가 제값받기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관계부처 등에 따르면 정부는 원자재 가격 상승 시 납품단가를 조정하는 내용이 포함된 표준계약서를 준비하고 있다. 하반기 시범운영이 목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하도급법에 따라 적용되는 표준계약서를 8월까지, 중소벤처기업부도 올해 여름 안에 만들어 공개한다는 계획이다. 표준계약서 적용은 현장에서 자율에 맡기되 이를 도입한 사업자에겐 혜택을 준다는 방침이다.

납품단가연동과 관련해 여당인 국민의힘은 의무화와 과태료라는 ‘채찍’을 들고나왔다.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이 9일 대표 발의한 하도급법을 보면 “주요 원자재 가격이 기준 이상으로 변동했을 때 계약상 납품대금 조정 방법에 따라 조정 지급해야 한다”는 문구가 법안에 들어갔다. 이를 지키지 않을 때 납품대금 조정분의 2배를 넘지 않는 선에서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벌칙 조항도 포함됐다.

납품단가 연동을 의무화하면서 지키지 않으면 페널티를 부과하는 식이다. 앞서 더불어민주당도 비슷한 내용의 상생협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부 “파격적 인센티브 준비”

정부는 이와 달리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납품단가 연동을 계약서에 자율적으로 담을 수 있게 한다. 이때 업종이나 원자재의 성격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 연동하는 게 좋은지 등을 표준계약서로 모범사례처럼 제시한다. 공정위는 하도급법, 중기부는 상생협력법에 적용 가능한 표준계약서를 각각 만들고 있다.

정부는 원사업자(원청)가 표준계약서를 수용한다고 할 때 줄 수 있는 인센티브를 구상하고 있다. 채찍이 아닌 ‘당근’에 초점을 맞췄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거부하기 어려울 정도의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센티브를 고려해서 주로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인 원사업자가 납품단가연동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들겠다는 뜻이다.

세제혜택·입찰 가점 등 논의

박세민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거래정책과장이 지난 1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원자재 가격상승에 따른 납품단가 조정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박세민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거래정책과장이 지난 1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원자재 가격상승에 따른 납품단가 조정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대표적인 인센티브로 조달청을 통한 공공기관이나 관급 공사 입찰에서 표준계약서를 채택한 기업에게 입찰 가점을 주는 방안이 유력하다. 또 공정위는 하도급법 위반으로 기업에 부여한 벌점을 감면해주거나 매년 시상하는 동반성장우수기업 선정에 가점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사업자들 측에서 인센티브로 세제혜택을 요구하는 만큼 이에 대해서도 논의할 방침이다.

입법 과정서 의견 충돌할 듯 

여당이 대대적으로 납품단가연동 의무화 입법에 나서면서 정부의 방향과 충돌이 불가피해졌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법을 발의하긴 했지만 입법 논의 과정에서 공정위 등 관련 부처의 의견을 수렴할 것. 그 과정에서 수정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제조기업 209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을 위한 중소기업 의견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67.0%는 원재료 가격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반영하기 위해 필요한 방법으로 납품단가 연동제를 들었다. 이어 19.6%는 ‘기업간 자율협의’, 11.5%는 ‘조정협의제도’라고 답했다.

또 응답 기업 가운데 55.0%는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 시 ‘법제화를 통해 의무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33.0%는 ‘자율 시행’이 필요하다는 반응을 각각 보였다. 조사에 참여한 중소기업들은 작년 원재료 가격이 전년 대비 평균 47.6% 올랐으나, 납품단가 상승률은 10.2%에 그쳤다고 응답했다.

다만 의무화가 이뤄질 경우 원자재를 납품하는 입장에선 단가를 낮추기 위한 노력이나 혁신 동력이 사라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결국 납품단가 상승이 소비자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에 따른 경제적 영향’ 보고서에서 “연동제로 비용이 증가하면 국내 중소기업에 대한 수요는 감소하고 해외 제품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당 연구에선 납품단가연동제 시행 상황에서 원자재 가격이 10% 증가하면 국내총생산(GDP)이 0.29% 감소하고, 소비자물가지수가 14%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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