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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둣발 짓밟힌 '모디의 굴욕'…말 한마디가 이슬람 뒤집었다 [세계한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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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한잔]은 우리 삶과 맞닿은 세계 곳곳의 뉴스를 에스프레소 한잔처럼, 진하게 우려내 한잔에 담는 중앙일보 국제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1. 무굴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왕비 뭄타즈 마할을 애도하며 22년에 걸쳐 지었다는 이슬람 건축물 타지마할은 인도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그런데 지난 2017년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州) 정부가 관광 안내 책자에서 이곳을 삭제해 논란이 일었다. 힌두교 사제 출신인 요기 아디트야나트가 주 총리로 임명되면서다. 그는 과거 무슬림을 “다리가 두 개 달린 동물” 등으로 표현했고, 집권당인 인도국민당(BJP)의 차기 총리 후보 중 한 명이다.

#2. 최근 수년간 BJP가 집권한 인도의 일부 지방 정부에선 이른바 ‘러브 지하드 대응법’이 통과됐다. 이 법은 무슬림 등 타 종교 남성이 힌두교 여성과 결혼해 개종을 강요할 경우 최고 징역 10년에 처하도록 한다. 힌두교 여성을 ‘보호’한다는 명분이다. 그러나 현지에선 무슬림과의 결혼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쓰인다는 비판이 나온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 2018년 12월 힌두교 전통 의식을 행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 2018년 12월 힌두교 전통 의식을 행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처럼 주류 힌두교도와 소수파 무슬림간 갈등의 골이 깊은 인도에서 이슬람 국가들까지 발칵 뒤집어 놓는 ‘사건’이 최근 발생했다.

무함마드 비하 발언에 무슬림들 분노

지난 8일 인도 내 무슬림들이 누푸르 샤르마 인도국민당(BJP) 대변인의 체포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8일 인도 내 무슬림들이 누푸르 샤르마 인도국민당(BJP) 대변인의 체포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최근 인도에선 우타르프라데시주에 위치한 이슬람교 예배당 갼바삐 모스크(Gyanvapi Mosque)에서의 힌두교도 기도권과 관련한 논쟁이 뜨겁다. 인도의 힌두교 신자들은 이 모스크를 힌두교 성지 위에 건설된 것으로 생각해 무슬림 사회와 갈등을 빚는 상황이다.

지난달 27일 누푸르 샤르마 BJP 대변인은 이와 관련한 TV 토론 중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를 비하하는 발언으로 불에 기름을 부었다. 이슬람권에선 무함마드에 대한 모욕은 대표적인 ‘레드라인’(넘지 말아야 할 한계선)으로 꼽힌다.

무슬림의 반발이 커지자 샤르마 대변인은 이후 “나의 발언은 힌두교 시바신이 모욕당한 것에 대한 대응이었다”며 “누군가를 불편하게 했거나, 종교적 감정에 상처를 줬다면 발언을 조건 없이 철회한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를 옹호하는 힌두교도들이 가세하며 논란이 확산했다. 인도에 사는 무슬림은 약 2억 명으로, 세계에서 3번째 규모이지만 약 14억 명의 전체 인구 중 80%가 힌두교 신자여서 상대적으로 소수다.

샤르마 대변인의 발언은 잠재돼 있던 인도 내 힌두교도와 무슬림간의 갈등을 폭발시켰다. 지난 3일 우타르프라데시주에 위치한 도시 칸푸르에선 샤르마를 처벌하라는 시위대와 이를 반대하는 힌두교도들 사이에 돌팔매질이 일어나 수십 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이후 뭄바이와 아마다바드 등 다른 도시들로도 시위가 번졌고, 10일 금요 예배를 기점으로 인도·방글라데시·파키스탄 등 아시아의 무슬림들이 대규모로 거리에 뛰쳐나왔다. 예배 후 거리로 나선 시위대는 “우리는 그에게 사형이 내려지기를 바란다”며 샤르마 대변인을 본뜬 인형을 불태우고, 경찰을 향해 돌을 던졌다.

BJP 측은 지난 5일 “어떤 종교의 종교적 인물에 대해서도 모욕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샤르마를 정직시키는 등 사태 진화에 나섰다.

쿠웨이트의 한 쓰레기통에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비판하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트위터 캡처]

쿠웨이트의 한 쓰레기통에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비판하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트위터 캡처]

그러나 이슬람 국가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9일 아랍뉴스에 따르면 이란‧카타르‧쿠웨이트 등이 자국 주재 인도대사를 초치하는 등 최소 16개 이슬람 국가가 인도 정부에 항의했다.

BJP를 이끄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중동 쿠웨이트의 쓰레기통에 발에 밟힌 모디 총리의 얼굴 사진이 붙었고, 온라인상에선 인도산 제품을 보이콧하자는 해시태그가 달릴 정도다.

인도 외교관들은 “샤르마 대변인의 생각은 정부의 입장을 반영하지 않으며, 주된 견해도 아니다”고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전문가들, 모디의 ‘힌두 민족주의’가 문제

인도 카슈미르 지역에 있는 한 모스크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무슬림의 모습. [EPA=연합뉴스]

인도 카슈미르 지역에 있는 한 모스크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무슬림의 모습. [EPA=연합뉴스]

그러나 이번 소동을 개인의 실언 탓으로 돌릴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4년 모디 총리의 집권 이후 극단화된 힌두 민족주의가 문제란 분석이다.

미 외교전문지 더 디플로맷은 전문가의 발언을 인용해 “이번 논란은 인도 무슬림을 향한 오랜 기간의 폭력에 모디 총리가 침묵을 지킨 데서 기인한 것”이라고 짚었다. 힌두교 민족주의를 앞세워 정치적 인기를 얻은 모디 정부가 무슬림을 향한 폭력을 방관해온 것이 샤르마의 발언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도에선 모디 총리가 집권한 지난 2014년 이후 무슬림에 대한 혐오 발언과 공격이 증가하고 있다. 힌두교 지도자들은 공공연하게 “인도 내 힌두교도는 무기를 들고 (무슬림에 대한) 청소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BJP 고위 관계자들은 무슬림의 학살을 촉구하는 콘퍼런스에 수년째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 인도 NDTV에 따르면 지난 2009년부터 10년간 혐오 기반의 집단 폭행 사건은 총 297건 발생했는데, 피해자의 59%가 무슬림이었다.

모디 정부는 지난 2019년 종교 박해를 피해 온 방글라데시‧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3개국 망명자에게 시민권 획득의 길을 열어주는 시민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며 무슬림은 제외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모디 총리는 어린 시절부터 힌두민족주의 단체인 민족봉사단(RSS)에서 활동하며 이를 기반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이와 관련 미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는 “인도에선 이미 무슬림들이 다른 시민과 같은 권리를 누리고 있지 않으며, BJP는 무슬림에 대한 탄압을 통해 힌두교들을 더욱 통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 “이미 예견된 일…모디 정권의 변화 필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지난 2019년 뉴델리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포옹을 하고 있다. [AFP=뉴스1]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지난 2019년 뉴델리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포옹을 하고 있다. [AFP=뉴스1]

하지만, 이번 사태는 세계 무대에서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노력 중인 인도에 도전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수밋 강굴리 미 인디애나대 정치학 교수는 “모디 총리는 그간 이슬람 세계와 소통하는 데 상당히 능숙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런 사태는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며 “그는 그간 자신이 지켰던 침묵이 해외로부터의 막대한 피해를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9년 노동자들이 카타르 월드컵 주 경기장인 루사일 스타디움 건설 현장으로 향하고 있다. 이들 노동자 중 많은 수가 인도에서 왔다. [AP=연합뉴스]

지난 2019년 노동자들이 카타르 월드컵 주 경기장인 루사일 스타디움 건설 현장으로 향하고 있다. 이들 노동자 중 많은 수가 인도에서 왔다. [AP=연합뉴스]

인도의 2020~2021년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들과 교역 규모는 870억 달러(약 110조원)에 달한다. 이 지역에 진출한 해외 노동자들도 상당해 아랍에미리트(UAE)에만 약 350만 명의 인도인이 거주하고 있다.

인도는 지난 2월 UAE와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을 체결했고, 다른 GCC 국가들과도 더 많은 교역을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다. BBC는 “지난 수년간 양국의 관계가 진전됐다는 측면에서 UAE까지 인도를 비판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며 “아랍 국가들이 자국민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에 나설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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