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출근하는 오전 9시 전후, 서울 용산의 대통령실 청사 지하 1층에선 “대통령님~”을 부르는 기자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주요 현안에 대한 윤 대통령의 입장을 직접 묻기 위해서다. 취임 이후 10일까지 모두 13번의 출근길 ‘도어스테핑(약식 회견)’이 진행됐는데, 처음엔 어색해하던 윤 대통령도 이젠 “매일 우리 기자분들 만나니까 아침 인사를 뭐로 해야 할지 모르겠다”(10일 출근길)며 먼저 여유를 보일 정도가 됐다.
출근하는 대통령에게 기자가 질문하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역대 정부에선 거의 볼 수 없던 장면이기도 하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갖는 무게감이 워낙 크다 보니, ‘불의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또 ‘청와대’라는 공간의 물리적 폐쇄성도 한몫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머무는 ‘춘추관’은 대통령 및 청와대 직원들이 근무하는 공간과 철저히 분리된 이른바 ‘외딴 섬’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의 아침 출근길 도어스테핑을 두고 대통령실 직원들은 “용산시대의 상징, 윤석열 정부의 상징”이란 반응을 내놓는다. 기자들 역시 주요 현안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직접 입장을 들을 수 있어 좋다는 반응이 많다. 한 신문사 말진(막내) 기자는 “아침 발제(기사계획) 부담을 덜 수 있어 좋다”며 기뻐했다.
물론 대통령과 기자들이 ‘한 건물’에서 근무한다고 한들, 대통령의 결단이 없었다면 도어스테핑은 이뤄질 수 없는 일이다.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저는 대통령이 되고도 기자들과의 ‘백블(질의응답)’을 하겠다”(지난해 11월 11일 봉하마을 방문)고 약속한 적이 있다.
복수의 대통령실 관계자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대통령 집무실의 서울 용산 이전이 확정된 이후 “백악관처럼 해보자”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하자”며 당시의 약속을 실현할 수 있는 계획 수립을 지시했다.
이에 국민소통관실 실무진은 용산청사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할 때부터 ‘청와대이전TF’ 등과 상의하며 윤 대통령의 출근길 동선과 도어스테핑 장소, 기자실 배치 등을 설계했다. 최종 보고를 받은 윤 대통령은 “오케이, 한번 해보자”며 계획을 흔쾌히 승인했다고 한다.
도어스테핑이 시작된 이후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윤 대통령의 두 번째 도어스테핑이 있던 지난달 12일, 윤 대통령은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장관을 임명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뒤돌아서 “오늘은 일부만”이라고 밝힌 뒤 그대로 집무실로 올라갔다. 이날 윤 대통령의 반응을 본 대통령실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이젠 (도어스테핑을) 안 하실 것 같다”며 “출근길엔 그냥 지나가시게 해주면 안 될까”라고 했다.
실제로 이날 이후 대통령실 내부에선 “매일 하다가 메시지 사고라도 나는 것 아니냐” “할 말이 없거나 침묵해야 할 땐 어떡하냐”라며 도어스테핑에 대한 반대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최영범 홍보수석이 나서 “대통령의 걸음걸이도, 표정도 모두 메시지”라며 반대 참모들을 모두 설득했다고 한다.
이렇게 이어온 도어스테핑은 윤 대통령의 취임 한 달 동안 이어지며 대통령실의 일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상당수 언론사는 오전 9시 이전에 끝마쳤던 발제(기사계획) 시간마저 윤 대통령과의 도어스테핑 이후로 미뤘다.
도어스테핑에 임하는 윤 대통령의 자세도 적극적이다. 취임 직후 두세개의 질문에 원론적 답변만 하고 자리를 뜨던 윤 대통령은 9일엔 7개, 10일엔 8개 등 주요 현안 관련 질문에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매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각본 없는 질의응답을 주고받는 건 대통령으로서도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부분”이라며 “윤 대통령이 도어스테핑을 국민과 소통하는 좋은 채널로 인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