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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뒤 꼬여버린 민주주의 시간표…대선 직후 선거 반복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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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지도부가 지난 1일 지방선거 개표상황실에서 6월 지방선거 및 보궐선거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지도부가 지난 1일 지방선거 개표상황실에서 6월 지방선거 및 보궐선거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탄핵이 선거 시간표를 흔들었다.”

6.1지방선거 이후 정치권에서 회자되는 말이다. 이번 선거는 대선 85일만에 열렸다. 직선제가 도입되고 새 대통령 당선인이 나온 뒤 가장 최단기에 열린 전국단위 선거다. 이 기록은 2032년에 깨진다. 이때는 대선이 끝난 지 불과 43일 뒤에 총선이 열린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이후 민주주의에 새로운 시간표가 만들어졌다”고 했다. 과거 12월 대선이 3월로 바뀌면서 같은 해에 열리는 다른 전국단위 선거와의 간격이 확 좁혀졌다는 것이다.

이에 일각에선 대선 직후 열리는 총선과 지방선거를 대선과 동시에 치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선거 비용을 아끼고 투표율도 높일 수 있다는 건데, 여야의 이해관계와 학계 찬반이 엇갈려 해결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2017년 3월 당시 이정미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을 선고하고 있다. 탄핵 선고 이후 대선은 5년마다 3월에 열리게 됐다. 왕태석 기자.

2017년 3월 당시 이정미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을 선고하고 있다. 탄핵 선고 이후 대선은 5년마다 3월에 열리게 됐다. 왕태석 기자.

시작은 개헌론, 선거법만 개정해도 가능 

선거가 겹치는 건 대통령의 임기(5년)와 국회의원·지자체장(각 4년)의 임기가 달라서다. 10년마다 대선과 총선, 혹은 대선과 지방선거는 같은 해에 열렸다. 2002년엔 16대 대선과 제3회 지방선거가, 2012년엔 18대 대선과 19대 총선이, 이번 2022년엔 20대 대선과 제8회 지방선거가 같은 해에 열렸다. 과거엔 선거가 겹쳐도 대선이 12월에 있다 보니 4월과 6월에 열리는 총선 및 지방선거와 어느 정도 간격이 있었다. 하지만 이때도 ‘동시 선거’ 필요성은 제기됐다.

가장 대표적인 게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론이다. 대통령의 임기를 4년으로 줄이되 연임을 가능케 하고 동시 선거를 치르자는 주장이다. 2018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에 헌법개정안을 제출하며 부칙 4조에 ‘2022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 동시 실시’를 넣었다. 목적엔 ‘대통령 임기 중 치르는 전국선거를 줄여 국력 낭비를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개헌의 핵심은 권력 분산과 중임제에 있지만, 대통령의 임기만 달라 반복돼 온 ‘한 해 두 번의 선거’도 나름 주목을 받아온 문제다. 더불어민주당은 여당 시절인 2020년에 ‘2022년 동시선거’를 주장하며 약 1500억원의 세금 절감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2018년 당시 조국 민정수석(왼쪽)이 21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헌법개정안 내용을 설명하는 모습. [김상선 기자]

지난 2018년 당시 조국 민정수석(왼쪽)이 21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헌법개정안 내용을 설명하는 모습. [김상선 기자]

개헌하지 않고 법률을 개정해도 동시선거가 불가능하진 않다. 대선과 겹치는 해에 총선과 지방선거를 3월로 당기고 첫해에 한해 임기를 선거일에 맞춰 줄이거나, 당선인 기간을 조금 더 늘리면 된다. 지방자치법 등 법률로 임기를 규정한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은 법 개정을 통한 임기 조정을, 헌법상 4년의 임기가 보장된 국회의원은 당선인 신분 기한을 조금 더 늘리는 방식이다. 공직선거법을 다뤄온 황정근 변호사는 “정치권이 마음만 먹으면 동시선거를 위한 법 개정 자체는 어렵지 않다”고 했다.

동시선거 왜 찬성하나

‘동시 선거’를 주장하는 측의 가장 강력한 이유는 세금 절감이다. 지난 7회 지방선거의 선거 보전비용만 3200억원에 달했다. 21대 총선은 879억이었다. 대선과 함께 치를 경우 투표율도 올라간다고 주장한다. 대선의 투표율이 지방선거나 총선보다 평균 15~20%포인트가량 높기 때문이다. 20대 대선과 함께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의 평균 투표율은 70%를 상회했다. 하지만 6월 지방선거의 국회의원 보궐선거 투표율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50%대였다.

지난 1일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 도착해 본인의 의원실로 향하고 있다. 이 의원은 대선 3개월 뒤 열린 보궐선거에서 당선됐다. 김경록 기자

지난 1일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 도착해 본인의 의원실로 향하고 있다. 이 의원은 대선 3개월 뒤 열린 보궐선거에서 당선됐다. 김경록 기자

여당 공관위원을 맡았던 박명호 교수는 공천 시기와 선거운동 기간도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선 직후에 선거가 있다 보니 공천이 늦어지고, 자연스레 지방선거 후보자의 선거운동 기간도 줄어들었단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경기도 도의원에 당선된 한 국민의힘 지방의원은 “대선 기간엔 선거운동을 못 하게 했는데, 공천까지 늦어 정치 신인들이 얼굴을 알릴 기회가 많지 않았다”고 했다.

줄투표 심화할 우려, “아예 묻혀버릴 것”

반대하는 측의 이유도 만만치 않다. 대선과 겹치게 되면 대선후보 중심의 이른바 ‘줄투표’가 이뤄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방선거만 치러도 시장과 도지사 이름을 보고 줄투표를 하는 경향이 있다”며 “대선과 동시에 하면 지역 후보들이 아예 묻혀버릴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은 “길게 보면 동시선거를 하는 게 맞는다”면서도 “동시 선거로 양측간 진영 대결이 훨씬 더 심화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유권자가 정치권을 심판할 유일한 기회인 선거의 횟수 자체가 줄어드는 걸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정치권에선 결국 개헌을하지 않고선 동시선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란 회의적 시각이 우세하다. 박병석 전 국회의장은 재임 기간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동시에 치러야 한다”는 주장을 수차례 제기했지만, 국회서 유의미한 반향을 얻지 못했다.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해 6월 “2032년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시행하는 개헌을 하자”는 제안을 발표했지만, 당내에서도 공감을 얻지 못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이번 지방선거도 직전 대선의 승패가 결정적이지 않았냐”며 “선거의 시기는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라 여야 간 합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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