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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속기로 작정한 '풍계리 폭파쇼'…北, 3번 갱도 핵단추 쥐었다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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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2018년 5월 24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위한 폭파작업을 외부 전문가 검증 없이 진행했다. 핵실험 관리 지휘소 시설 폭파 모습을 한국을 비롯한 5개국 기자들이 촬영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이 2018년 5월 24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위한 폭파작업을 외부 전문가 검증 없이 진행했다. 핵실험 관리 지휘소 시설 폭파 모습을 한국을 비롯한 5개국 기자들이 촬영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유지혜 외교안보팀장의 픽 : 북한 7차 핵실험 임박

“갱도의 깊이를 물었지만, 답은 듣지 못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 기자는 여덟 군데를 터트렸다고, 300(m), 200, 70, 50, 양쪽 입구에 다이너마이트를 심어 파괴했다고 이야기했지만, 들리는 폭발음으로서는 정확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물으니 말도 흐리고 확인을 안 해줬습니다.”

2018년 5월 24일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당시 현장에서 이를 직접 지켜본 한국 공동취재단이 귀국 뒤 전한 내용이다. 취재단도, 현장에 가지 못한 채 전해 들은 취재 내용과 영상을 분석한 전문가들도 품는 의문점은 같았다.

과연 북한은 갱도를 완전히 폭파했는가.

정보는 부족했고, 접근은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아무도 이 질문에 명확히 답할 수 없었다. 취재단은 “비전문가인 기자의 맨눈으로 본 것이기 때문에 확신할 수는 없다. 다만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다시 뚫을 수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2018년 5월 24일 북한 핵무기연구소 관계자들이 폭파 전 풍계리 핵실험장 3번 갱도. 사진공동취재단

2018년 5월 24일 북한 핵무기연구소 관계자들이 폭파 전 풍계리 핵실험장 3번 갱도. 사진공동취재단

그리고 4년여 지난 지금, 이런 기자의 직감은 사실로 확인됐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3번 갱도를 복구해 7차 핵실험 준비를 거의 마무리하면서다. 폭파 전인 2018년 4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재하다”고 과시했던 갱도다.

사실 당시에도 의심할 정황은 차고 넘쳤다. 북한 스스로 약속한 ‘전문가 참관’이 이뤄지지 않은 것부터 수상했다.

그나마도 북측은 취재단에 폭파 전 2, 3, 4번 갱도의 일부만 공개했다. 취재단이 확인한 건 갱도 입구로부터 채 수십m도 되지 않았다. 더 안쪽은 막혀 있거나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갱도 안쪽에 폭약이 설치돼 있는지 아닌지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2018년 5월 24일 북한 핵무기연구소 관계자들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에 앞서 3번 갱도를 국제기자단에 공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18년 5월 24일 북한 핵무기연구소 관계자들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에 앞서 3번 갱도를 국제기자단에 공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결국 취재단이 현장에 있었어도 북측이 보여주고, 들려준 것을 토대로 유추하는 수밖에 없었다.

“3번 갱도와 4번 갱도는 두 번씩 폭파했고, 2~3초 간격으로 터졌다. (북측 핵무기연구소 관계자가)처음 지도(안내도)를 보며 설명할 때는 세 번 폭파하기로 했다고 했는데, 들린 폭발음은 두 번이었다. 두 번 다 (갱도)앞쪽이었고, 안쪽에서 들려오지는 않았다. 깊숙한 곳에서 폭파한 느낌은 없었다.”

“맨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갱도의 길이는 30m 정도였다. 갱도 문 쪽에서 1차 폭발이 있었고, 2차 폭발은 갱도보다 위에서 있었다. 갱도를 보통 지하로 파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위에서 터뜨린 것은 보여주기 위한 것 아닌가 싶었다.”  

취재단은 폭파 뒤에는 다시 현장에 접근하지 못했다. 500m 떨어진 곳에서 봤을 때 3번 갱도에서 자갈이, 4번 갱도에서 흙이 흘러나와 있는 것을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다. 접근하더라도 천공 등 작업을 통해 갱도 내부를 뚫어보지 않는 이상 내부 폐기 여부를 알 수는 없었다.

이를 두고 당시 핵무기연구소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안에서부터 분출이 확 나왔댔지요. 아낙(속)에서부터 분출이, 폭발이 있었단 말입니다. 입구만 폭발했으면 그런 현상 안 나타납니다.”

하지만 올해 들어 북한이 불과 몇 개월 만에 3번 갱도 복구에 성공하면서 이런 설명은 사실이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2018년 5월 24일 풍계리 핵실험장 4번 갱도가 폭파되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2018년 5월 24일 풍계리 핵실험장 4번 갱도가 폭파되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사실 당시 북측은 완전한 폭파를 입증하기보다 수차례 핵실험을 했어도 방사성 물질 누출이 없었다는 안전성을 보여주려고 더 애를 썼다. 풍계리에 거주했던 탈북자들이 외신에 ‘귀신병’에 대해 알린 것을 의식하는 듯 했다. 원인도 모른 채 사망하는 주민들이 많았고, 생식기가 없이 태어난 아이도 있었다는 증언들이었다.

이 때문인지 북측은 국제기자단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일일이 뒤져 방사선량계(방사능을 측정하기 위한 장치)를 모두 압수했다. 풍계리 현장에서도 방호복을 지급하지 않고, 안전모만 줬다.

3번 갱도 앞의 개울을 지날 때 조선중앙TV 기자는 “한번 마셔보라. 파는 신덕 샘물의 PH가 7.4인데 이 물은 PH 7.15로 더 마시기가 좋다. 방사능 오염이 없다”며 취재단에 개울물을 권하기도 했다. 그래서 한국 기자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부터 먹어보라”고 했더니, 본인은 마시지 않았다.

2018년 5월 24일 북한 핵무기연구소 부소장이 풍계리 핵시험장의 폐기 방법과 순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18년 5월 24일 북한 핵무기연구소 부소장이 풍계리 핵시험장의 폐기 방법과 순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금도 아쉽다. 당시에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가 제대로 됐는지 북한에 검증을 강하게 요구했어야 한다. 북한이 수용하지 않으려 해도 비핵화 대화와 연결해 전문가들이 직접 현장에 가서 검증 작업을 진행하도록 설득 혹은 압박했어야 한다.

하지만 당시 문재인 정부는 “핵실험 중지를 투명성 있게 담보하기 위해 공화국 북부 핵실험장을 완전히 폐기했다”(풍계리 폭파 뒤 핵무기연구소 성명)는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한술 더 떠 당일 곧바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연 뒤 “상임위원들은 북한의 핵실험장 폐기가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첫 번째 조치임을 평가한다”는 보도자료까지 냈다.

입구만 ‘폐쇄’했을 가능성이 여전한데도 북한의 주장 그대로 받아들여 ‘폐기’로 공식화해줬고, 비핵화 조치의 시작이라고 큰 의미도 부여해줬다.

그때 청와대가 ‘폐기’했다고 확인한 3번 갱도가 다시 열렸다. 7차 핵실험은 매우 높은 확률로 전술핵 실험이 될 것이다. 김정은이 다시 연 3번 갱도에서 이제는 한국을 직접 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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