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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방화 참사 전날, 용의자 패소…벌금 200만원 선고됐다

중앙일보

입력

‘악연’ 상대 고소에 벌금형, 앙심에 불 당겼나 

지난 9일 대구 변호사사무실에 방화를 한 용의자 A씨가 사건 하루 전 민사소송의 피고인이 낸 고소사건에서 패소해 2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구지법 형사6단독은 지난 8일 재개발사업 시행사 대표 B씨에 대한 허위정보를 인터넷 등에 게시한 혐의(명예훼손,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A씨를 고소한 것은 투자금 상환을 놓고 오랫동안 소송을 해온 B씨 측이다.

대구 변호사사무실 빌딩 화재, 구조 기다리는 시민들. 연합뉴스

대구 변호사사무실 빌딩 화재, 구조 기다리는 시민들. 연합뉴스

중앙일보가 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2017~2019년 한 온라인 부동산 카페에서 “B씨가 경찰에 공개 수배됐다”라거나, “사악한 욕심에 눈이 멀었다”는 등 내용이 담긴 게시물을 올렸다. B씨와 연관된 회사의 주주 개인정보가 담긴 파일을 이 카페에 올리기도 했다.

재판 과정에서 A씨는 “게시물 내용은 사실이며, 설령 허위이더라도 공익적 목적을 위해 게재한 것”이라는 취지로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A씨가 제출한 자료를 봐도 게시물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고 뒷받침하기 부족하다”며 A씨에게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투자금 문제로 (A씨가 B씨에 대한) 불만을 품고 범행한 것으로 판단돼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가 인정된다는 취지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A씨는 이 판결이 나온 다음날 오전 해당 사건 고소를 맡은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 방화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대구시변호사회는 A씨가 소송 문제로 최근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온 것으로 파악했다. 지역 법조계 관계자들은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해 억울함을 호소하던 A씨가 민사소송 상대가 낸 고소사건에서 벌금까지 선고받자 앙심을 품고 범행에 나선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7명이 숨진 대구 수성구 범어동 건물 화재현장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합동 감식반이 현장에 투입됐다. 연합뉴스

7명이 숨진 대구 수성구 범어동 건물 화재현장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합동 감식반이 현장에 투입됐다. 연합뉴스

소송 악연 두 사람, 어떤 관계였나

A씨가 불을 지른 변호사사무실은 B씨의 민사 및 고소사건 등 소송을 대리했던 변호사가 소속된 사무실이다. 앞서 A씨는 B씨에게 억대 민사소송을 냈다가 기각당했는데, 이때도 해당 변호사가 B씨 측에서 소송을 맡았다. 참사 당시 이 변호사는 업무 관계로 출장 중이어서 화를 면했다.

A씨는 B씨가 대표로 있는 재개발사업 시행사와 2013년 11월 투자약정을 체결하고 2014년 10월부터 2015년 6월까지 10차례에 걸쳐 3억6500만 원을 지급했다. 이보다 앞서 투자했던 3억2000만 원까지 합치면 A씨의 총 투자금은 6억8500만 원에 달한다. 이후 A씨는 예상과 달리 사업이 부진하고 투자금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하자 시행사 대표인 B씨와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대표인 B씨가 회삿돈을 횡령했다”며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2016년부터 시작된 소송은 1심과 2심을 거쳐 2019년 7월 16일에야 마무리됐다. 이 재판에서 A씨는 일부 승소했지만 “시행사 대표로부터 추가로 돌려받아야 할 돈이 있다”며 별도의 민사소송을 지난해 1월 다시 제기했다. “시행사 대표 B씨에게 8억2000여만 원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소송이었다. 당시 소송에서도 상대방 측 소송대리인은 이번에 불이 난 사무실의 변호사였다. 그러나 A씨는 이 재판에서 패소했고, 판결에 불복해 항소심이 진행 중인 상황이었다.

10일 오전 대구 수성구 범어동 변호사사무실 건물 앞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조화(弔花)가 놓여 있다. 뉴스1

10일 오전 대구 수성구 범어동 변호사사무실 건물 앞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조화(弔花)가 놓여 있다. 뉴스1

경찰은 건물의 폐쇄회로TV(CCTV) 영상 분석 등을 통해 7명이 숨지고 48명이 다친 이번 방화 참사 용의자로 A씨를 지목하고 정확한 경위를 수사 중이다. 화재가 발생한 사무실에서는 흉기가 발견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사건과의 연관성 확인을 위한 감정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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