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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커피·와인 그리고 작은 공연장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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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2호 30면

서정민 문화선임기자

서정민 문화선임기자

‘스트라디움’이 오는 30일 폐관한다. 2015년 10월 서울 이태원에 개관한 스트라디움은 고음질 청음시설을 갖춘 공연장과 스튜디오에서 공연·강연·영화 등의 프로그램을 즐기며 음악적 일상을 만끽할 수 있는 음악문화공간이다. 바이올리니스트라면 누구나 꿈꾸는 명기(名器) ‘스트라디 바리우스’와 로마시대 음악당을 일컫던 명칭 ‘오데움’을 합쳐 만든 이름답게 이곳에선 매일 밤 수준 높은 예술가들의 노래와 연주 소리가 흘러넘쳤다. 특히 피아니스트 손열음·임동혁·임동민, 가수 윤종신·박기영·하림·선우정아·정밀아, 평론가 김태훈·황덕호·조희창 등 내로라하는 아티스트와 전문가들을 만날 수 있었던 2층 공연장은 50석 미만으로 좌석수를 제한해 보다 생생하면서도 강렬한 감동을 전달했다. 세계적 수준의 음향엔지니어와 사운드 시스템을 갖춘 3층 스튜디오는 세계적으로도 찾기 힘든 공간으로 유명했다. 5월 중순 어느 늦은 밤, 스튜디오에 방문했더니 천상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음악감독에게 누구의 목소리인가 물었더니 “조금 전까지 소프라노 조수미씨가 개인 녹음을 마치고 돌아갔다”고 했다.

하지만 고품격 음악문화공간도 코로나19를 이겨내진 못했다. 잦은 공연 취소가 장기화되면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 올해 건물주와의 임대차 재계약에 실패하면서 폐관을 결정했다. 스트라디움의 프로듀서이자 공연기획·제작사 ㈜유나이티드프로듀서스의 이병수 대표는 “음악과 와인이 있는 공간은 격이 높다”며 “4층에 루프톱 라운지를 준비하고 공연이 끝나면 관객과 아티스트가 만나 대화를 나누며 개인적인 감동과 위로를 넘어, 사회에 대한 친절한 시선과 삶의 변화를 고민하는 공간을 꿈꿨는데 이런 공간이 사라진다는 건 우리 모두의 손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매력적인 도시를 꼽는 기준
‘매직 텐’과 ‘보헤미안 도시’

중앙SUNDAY 기고가인 박진배(뉴욕 FIT대 교수·마이애미대 명예석좌교수) 작가는 최근 출간한 책 『공간미식가』에서 매력적인 도시를 만드는 ‘매직 텐’과 ‘보헤미안 도시’ 개념을 소개했다. 매직 텐(magic ten)이란 도시를 평가하는 가늠자로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10개의 매력적인 장소를 뜻한다. 보헤미안 도시란 19세기의 전통적인 관습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영위하던 문인·음악가·화가·배우들이 모여 살던 도시를 말한다. 박 교수는 “흔히 보헤미안 도시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대학 졸업자의 수, 시민들의 독서량, 그와 연관된 도서관과 서점의 수 그리고 커피, 공연, 와인을 꼽는다”며 “상징적인 기준들이지만 이 기준들이 매직 텐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도시의 멋을 한껏 올린다”고 했다.

얼마 전 넷플릭스 OTT 서비스로 본 일본 영화 ‘461개의 도시락’이 생각났다. 이혼한 아빠가 고등학생 아들을 위해 1년간 461개의 도시락을 싸 준다는 단순한 줄거리다. ‘음식 예술’로도 불리는 일본 도시락을 461개나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의외로 관심의 방점이 찍힌 것은 자유로운 영혼의 뮤지션으로 등장한 아빠 ‘카즈키’의 공연 장면이었다. 유명 밴드의 멤버인 카즈키는 아들의 도시락을 싸느라 고군분투하면서도 오래된 멤버들과 함께 열정적인 밴드생활을 ‘계속’ 해 나간다. 중년의 남자들이 취미가 아닌 일로서 밴드를 계속할 수 있다니 일본 문화의 넓은 스펙트럼이 부러웠다.

한국에도 중년을 훌쩍 넘은 나이에 밴드를 꾸려 나가는 멋진 뮤지션들이 많지만 카즈키의 밴드처럼 관객과 연주자가 찐하게 공감할 수 있는, 작지만 강한 공연장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3년간 이어진 코로나 팬데믹으로 서울 압구정동의 ‘원스 인 어 블루문’과 이태원의 ‘올 댓 재즈’, 부산의 ‘몽크’ 같은 유명 재즈클럽들도 버티지 못하고 줄줄이 문을 닫았다. 그리고 이달 말 스트라디움이 또 문을 닫는다. 음악과 커피, 그리고 와인이 있던 보헤미안 공연장이 하나둘 사라지면서 서울이라는 도시의 매력은 점점 떨어지고, 풀뿌리 문화를 위한 기반도 흔들리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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