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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 K방역, 인문·사회과학적 요인도 고려 균형점 찾아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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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2호 28면

러브에이징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 바이러스 세계적 대유행이 3년째 진행 중이다. 인류는 팬데믹 초기부터 지금까지 지구촌 한가족의 마음으로 감염자의 특징, 예방법, 치료법 등을 공유했다. 21세기형 전자현미경과 염기서열 분석 기술 덕분에 왕관 모양의 신종 바이러스 정체는 일찌감치 파악했다. 세계 각지의 전문가들은 첨단 정보통신 기술과 현대 의학을 접목해 코로나19에 관한 다양한 대응책을 ‘과학’의 이름으로 실시간 제시했다. 또 진단, 백신, 치료제 등에 관한 연구와 개발도 발 빠르게 진행돼 단시간에 제품이 출시됐으며 긴급사용 승인을 통해 전 세계 방역 현장에 투입됐다.

한국 100만 명당 사망자 일·중보다 많아

하지만 2년 반이 지난 지금, 세계 각국의 팬데믹 상황은 판이하다〈표 참조〉. 얼핏 봐도 지역에 따라 감염자 수, 사망자 수는 차이가 크다. 눈길을 끄는 데이터는 첨단 현대 의학을 주도하는 미국과 서유럽의 인구 100만명당 확진자·사망자가 아시아나 아프리카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이다. 또 같은 지역, 같은 인종이라도 국가별 격차가 심하다. 예컨대 동아시아 3국인 한·중·일만 보더라도 한국은 인구 100만 명당 사망자 수가 일본의 약 2배이며 중국보다는 100배 이상 많다. 또 확진자도 일본의 약 5배, 중국의 2200배 이상 발생했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 것일까.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우선 방역 대책이 같아도 인종과 식습관, 비만 인구, 질병 분포, 고령화 정도 등에 따라 결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특히 코로나19는 젊은 층보다 초고령자 사망률이 수천 배씩 높다 보니 아무리 좋은 방역 정책을 펼쳐도 평균 수명 80세 이상의 장수 국가 사망률이 높기 마련이다. 양질의 의료 시스템을 갖춘 평균 수명 83세 한국의 인구 100만명당 사망자가 의료 환경이 열악한 평균 수명 58세 케냐보다 4.7배 높은 이유다.

또 나라마다 처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문화적 상황이 달라 방역 방식도 차이 나기 마련이다. 본질적으로 방역 대책은 과학적 근거를 ‘참고’해서 제시하는 범국민적 행동 지침이며 정치적 ‘통치행위’일 수밖에 없다. 실제 팬데믹 초기부터 방역 계획을 각국의 최고 지도자가 발표하고, 세 번째 여름을 맞이하는 지금도 국내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총리가 주재한다. 한국(Korea)에는 K방역이, 일본(Japan)에는 J방역이, 중국(China)에는 C방역이 각각 존재한다.

방역 성과는 보는 시각에 따라 지혜로운 방역과 우매한 방역, 합리적 방역과 모순된 방역, 폭력적 방역과 인권 친화적 방역 등 다양하게 평가할 수 있다. 예컨대 아시아 국민은 팬데믹 기간 내내 개인 정보 추적, 과도한 격리와 사회적 거리두기 등 인권 침해적 방역 정책에도 순응한다. 반면 유럽에서는 초기 봉쇄 기간을 제외하면 자유를 침해하는 방역 정책에 분노하면서 마스크 없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일이 흔하다. 아시아와 유럽의 방역 성과를 사망자 수치 등으로 단순 비교하기는 어려운 셈이다.

그렇다면 팬데믹 시기의 슬기로운 방역 대책은 무엇일까. 선진국, 후진국을 불문하고 팬데믹은 범사회적 위기 상황이다. 따라서 전염병이 초래할 경제적·사회문화적·의료적 위험 요인을 분산시켜 사회가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방역 정책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물론 질병의 특징을 모르는 팬데믹 초기에는 ‘단기간’ 자유를 제한하는 강력한 봉쇄 정책도 필요하다. 하지만 계절의 변화, 치료법 개발, 백신 출시 등 팬데믹 상황은 수시로 변하기 마련이며 그에 대응해 방역 정책도 적절하고 유연하게 변해야 한다. 그래야 특정 집단의 집중적인 희생을 막고 국민의 일상 회복도 앞당길 수 있다.

애초에 코로나19는 인류와 공존하기로 작정하고 출몰한 신종 바이러스다. 감염자 80%가 무증상과 경증인 호흡기 질환을 지구촌에서 종식시킬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팬데믹 초기부터 느슨한 방역으로 건강인의 자연 면역을 유도해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이 제시됐던 이유다. 실제 유럽의 많은 국가는 방역의 목표를 확진자 감소보다는 노약자 보호에 두었다. 물론 한국은 오미크론 대유행 전까지 2년 내내 한여름 복더위에도 실외 마스크까지 강요하면서 긴장의 끈을 놓지 말라는 주장이 대세를 이뤘다.

K방역도 초기에는 밀접접촉자를 찾고 격리 치료하는 3T(Test-Trace-Treat) 방역으로 좋은 성과를 얻었다. 문제는 인간의 공포심을 담보로 한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이 너무 오랫동안 지속됐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어린이들의 사회화 과정과 학습권 침해, 자영업자 파산, 청년 자살률 증가 등 특정 집단이 집중적인 피해를 입었다. 게다가 자연면역을 얻을 기회가 거의 없었던 한국인들은 오미크론 대유행 시기에  확진자 세계 1위를 기록하며 1700만명이 단기간에 감염됐다.

수시로 변하는 팬데믹 상황에 대처해야

이제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 정책을 고수했던 문재인 정부의 1기 K방역은 막을 내렸고 윤석열 정부의 2기 K방역이 시작됐다. 새 정부는 전문가 의견을 바탕으로 한 과학적 방역체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분명한 사실은 과학적 방역은 실험실에서 확인된 과학적 사실이나 환자 데이터 같은 의학적 요소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다. 방역 정책이 초래하는 인간의 공포심, 심리적·정신적 변화, 학생들의 변형된 사회화 과정, 타인에 대한 인식 변화, 인권 문제, 경제 문제 등 사회과학과 인문과학적 요인을 모두 포함해서 균형점을 찾았을 때 과학적인 K방역이 탄생할 수 있다. 새로운 방역 책임자들이 제시할 2기 K방역은 어떤 모습을 띨 지 희망을 가지고 지켜볼 일이다.

황세희 연세암병원 암지식정보센터 진료교수. 서울대 의대 졸업 후 서울대병원에서 인턴·레지던트·전임의 과정을 수료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미국 MIT에서 연수했다. 1994년부터 16년간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면서 ‘황세희 박사에게 물어보세요’ ‘황세희의 남자 읽기’ 등 다수의 칼럼을 연재했다. 2010년부터 12년간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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