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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성 감수성 너무 천박, 성 비위엔 여야 초록동색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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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2호 26면

콩글리시 인문학 

성 비위 의혹에 휩싸인 공직자들이 해명이나 사과를 하고 나면 되레 논란이 증폭된다. ‘지하철 안에서 성추행의 자유’를 노래한 시인-비서관은 “직원 10여 명에게 생일빵을 당했다. 여직원들이 생일에 뭐 해줄까 묻기에 화가 나서 뽀뽀나 해주라고 말했고, 볼에 뽀뽀하고 갔다”고 변명했다. 또 그가 여직원들에게 ‘러브샷(love shot은 콩글리시다. 굳이 영어로 표현하려면 entwine while drinking으로 쓸 수 있겠다)을 하려면 옷을 벗고 오라’고 했던 발언도 드러났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관의 성 감수성(gender sensitivity)에 국민은 충격을 받았다.

성추행이나 성희롱은 사과로 그칠 일이 아니라 범죄다. ‘전동차에서만은/짓궂은 사내아이들의 자유가/그래도 보장된 곳이기도 하지요/풍만한 계집아이의 젖가슴을 밀쳐보고/엉덩이를 살짝 만져 보기도 하고/그래도 말을 하지 못하는 계집아이는/슬며시 몸을 비틀고 얼굴을 붉히고만 있어요.’ 윤재순 대통령 총무비서관이 2002년에 펴낸 시집에 실린 시 ‘전동차에서’의 일부다. 윤 비서관은 검찰 재직 시 성 비위로 두 번의 징계도 받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10~20년 전의 경미한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여당 여성의원들조차 부적절한 인사라고 항변해도 비서실장은 대통령 뜻에 따라 “국민 눈높이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지만 사퇴시킬 생각은 없다”고 방어막을 친다.

우리 정치권의 성 감수성이 놀라울 정도로 천박하다. 김건희 여사를 평강공주에 견주는 글을 써 논란이 됐던 종교다문화비서관은 동성애를 정신병의 일종으로 치부하고 위안부 피해 보상을 밀린 화대(花代)라고 표현했으며 조선시대 여성의 절반은 양반들의 성적 노리개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퇴하면서 언론이 나라 망치고 있다고 오히려 화를 냈다. 여당 원내대표는 당 대표의 성 상납(sexual favours - sex acts done in exchange for something) 의혹에 대해 개인의 프라이버시라고 치부했다.

하태경 의원은 미투 이전과 이후를 구분해서 봐야 한다는 기상천외한 기준을 제시했다. 김기현 의원은 이 문제를 놓고 문 대통령 때의 탁모 비서관은 그보다 더했는데도 5년 임기 내내 자리를 지키지 않았느냐고 반박한다. 초록은 동색(One devil knows another)이란 뜻이 아닌가? 윤 비서관은 비서실 직원들의 성교육 담당이기도 한데 그의 시집 ‘석양의 찻잔’에는 “창녀들에 몸을 맡겨 보다가”라는 구절도 나온다.

민주당의 박 모 의원의 성 비위 사건만 해도 그렇다. 성 비위가 무엇인가? 왜 성 비위인가? 기자들이 의문을 제기하자 답변이 해괴하다. 당에서 제명까지 한 판에 피해자 보호를 이유로 사실을 숨기고 두루뭉술 비위라고 부른다. 비위(非違, misconduct)는 법에 어긋나는 일의 총칭이다. 정의당에서도 성범죄 사건이 터졌다. 청년당 대표가 당내 인사에게 성폭행을 당한 바 있다고 밝혔다. 그러자 당의 공식 해명은 불필요한 성 비위가 있었다는 식으로 얼버무렸다.

성폭행(rape)은 성 비위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성적 언행으로 수치심을 유발하면 성희롱(sexual harassment)이고 물리적 강제 접촉이 있으면 성추행(sexual assault), 특히 아동의 성추행은 molest라고 한다. 성폭행은 성범죄 중 가장 정점에 있는 중범죄다. 성 비위는 성범죄를 듣기 좋게 순화해서 말하는(euphemism) 수법이다. 새 대통령이 왜곡된 성 인식을 가진 문제 인물들의 인사 조처에 모르쇠로 일관하는 속사정이 궁금하다.

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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