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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에 나오는 투명 망토, 메타물질로 만들 수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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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2호 22면

[최준호의 첨단의 끝을 찾아서] 포스텍 젊은 석학 노준석 교수 

노준석 교수가 포항공대 실험실에서 레이저 광선을 메타물질 표면에 쏘아 초고해상도의 홀로그램(포항공대 로고)을 만들어 보이고 있다. 노 교수 왼쪽은 메타표면으로 만들어진 라이다를 이용해 얼굴 표면에 3차원 맵을 그리는 기술이다. [사진 포항공대]

노준석 교수가 포항공대 실험실에서 레이저 광선을 메타물질 표면에 쏘아 초고해상도의 홀로그램(포항공대 로고)을 만들어 보이고 있다. 노 교수 왼쪽은 메타표면으로 만들어진 라이다를 이용해 얼굴 표면에 3차원 맵을 그리는 기술이다. [사진 포항공대]

10억분의 1m. 나노(nano) 세계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대만 TSMC가 벌이고 있는 3나노미터 반도체 미세공정 경쟁이 대표적이다. 보다 좁은 면적에 보다 많은 반도체 회로 선폭을 그리는 기업이 반도체 시장의 패권을 쥔다. 한국을 찾은 바이든 미 대통령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부터 찾았고, 윤석열 대통령은 장관들을 모아놓고 반도체 ‘죽비’를 내리쳤다. 나노는 실제 물리적 전쟁도 일으킬 판이다. 중국 정부기관 소속의 한 경제학자는 지난달 30일 “미국이 중국 제재 강도를 높일 경우, 중국이 대만 반도체 기업 TSMC를 빼앗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노 세계의 전쟁은 반도체뿐이 아니다. 기술 발전이 급진전하면서 나노기술은 광학·바이오·정보기술(IT) 등 산업 전분야로 확산하고 있다. 포스텍의 젊은 석학 노준석 교수(41·기계공학과·화학공학과)는 나노소재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재료로 떠오르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는 세계 최고 수준의 나노 공정 및 생산기술을 바탕으로 메타물질에 기반한 차세대 디스플레이와 메타 홀로그램 등의 분야에서 선도적 연구를 통해 세계 최고의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7일 경북 포항에서 노 교수를 만나 나노세계의 첨단 연구에 대해 탐구했다.

나노입자 구성된 투명 망토 원리  

나노공학, 나노기술은 언제부터 쓰인 말인가.
“최초가 누구냐는 불분명하지만 학계에서 나노세계를 말할 땐 으레 미국의 이론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1918~1988) 교수의 말을 인용한다. 그는 1959년 캘리포니아공대 강연에서 ‘우리가 모르는 밑바닥에 무언가가 있다(There is Plenty of Room at the Bottom)’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엄청나게 작은, 즉 원자 단위의 세계였다. 이후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10억분의 1m, 즉 나노미터 단위의 세계까지 들여다보고 가공할 수 있는 기술이 나오면서 나노를 본격적으로 얘기하게 됐다.”
흔히 나노공학을 얘기할 때는 『창조의 엔진』(1986)의 저자 에릭 드렉슬러를 꼽지 않나. 나노과학의 창시자라는 표현도 나왔다.
“그를 나노과학의 창시자라고 하면 논쟁이 있게 된다. 나노의 개념은 파인만보다도 훨씬 전에 나왔다. 드렉슬러는 『창조의 엔진』이라는 베스트셀러를 쓰고, 대중과 정책 입안자들이 나노공학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 인식하게 하는데 기여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드렉슬러가 다소 부풀려진 측면이 있지만, 그가 과학계와 정책에 기여한 바는 실제로 크다.”(드렉슬러는 대학원생 시절인 1981년 미국 과학아카데미회보에 ‘분자엔지니어링’이라는 논문을 발표했고, 5년 뒤 단행본 『창조의 엔진』을 썼다. 그는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분자 나노기술 분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나노기술이 왜 중요한가
“과학이 기술로 이어지기까지는 50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것도 대부분은 과학에만 머물러 있고, 이 중 몇 %만 기술로 진화한다. 일반인들은 기술의 단계에 와서야 이해한다. 사람들이 휴대폰이나 컴퓨터 없이 못산다고 하지만, 전자공학과 메모리 등 그 원리는 잘 모른다. 나노기술은 아직 휴대폰·컴퓨터만큼 오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썬블록 같은 것도 나노입자가 그 안에 들어 있어 태양빛을 반사시키는 거다. 삼성전자와 대만 TSMC가 기술경쟁을 하고 있는 반도체도 나노미터의 세계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반도체의 최소 단위가 1마이크로미터 수준이었다. 통신도 5G, 6G처럼 기존보다 훨씬 더 빠르게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데, 결국 나노구조가 들어가야 한다. 달과 지구를 연결한다는 우주 엘리베이터도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양쪽의 중력을 버틸 수 있는 강성을 지닌 탄소나노튜브가 있어서 가능하다고 증명되는 거다.”
지구와 달을 탄소나노튜브로 연결할 수 있다는 얘기인가.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증명이 됐다는 말이다. 지구와 달이 자전과 공전으로 돌아가도 버틸 수 있는 정도의 재료가 탄소나노튜브다. 언뜻 생각하면 말이 안 될 것 같지만,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50년 전에는 절대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고 한 것들이다. 기술적인 문제가 있지만, 이걸 해결한 미래에는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한 우주 엘리베이터로 달과 지구를 오가는 시대가 오리라 희망하고, 또 그렇게 믿고 있다.”
영화 ‘해리포터’의 투명 망토. 메타물질을 입혀 사람 눈에 들어오는 빛의 정보를 바꾸는 게 원리라고 노준석 교수는 설명했다. [사진 워너브라더스]

영화 ‘해리포터’의 투명 망토. 메타물질을 입혀 사람 눈에 들어오는 빛의 정보를 바꾸는 게 원리라고 노준석 교수는 설명했다. [사진 워너브라더스]

교수님은 ‘투명망토’로 상징되는 메타물질 연구로 유명하다. 메타물질은 뭔가.
“메타물질은 초월을 뜻하는 그리스어 ‘메타’(meta)에 ‘물질’(materials)을 결합한 단어다. 한자로는 ‘초(超)재료’라고 한다.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물성을 지니도록 인위적으로 구성되고 가공된 물질을 뜻한다. 금을 최대한 작게 계속 자르면 금 원자가 나오고, 유리를 그렇게 자르면 실리콘 원자가 나온다. 원자의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에 금은 금의 특성을, 유리는 유리의 특성을 가진다. 탄소 같은 경우는 좀 특이하다. 같은 탄소 원자지만 생성 환경에 따라서 단뒤 원자가 연결되는 구조가 달라 흑연이 될 수도 있고 다이아몬드가 될 수도 있다. 메타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메타 구조’라고 하는 편이 맞다. 금은 반짝이는 노란 귀금속인데, 10나노미터 수준으로 작게 만들었더니 노란색이 아니라 빨간색에서 보라색까지 다양한 색이 된다. 크기와 모양·배열에 따라 달라지는 거다. 여기에 빛을 쪼였더니 굴절률의 방향이 기존과 완전히 반대인 음의 굴절이나, 완전히 반사가 된다거나, 완전히 흡수되는 새로운 현상들이 나왔다. 실리콘도 그렇게 해봤다. 거기에 빛이나 소리 등 파동을 쐈더니 투명망토와 같은 현상이 발생했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을 가능하게 하는 물질이라고 해서 메타물질이란 용어를 쓰게 됐다.”
1억분의 1m 수준의 메타구조를 어떻게 만드나.
“가공은 쉽게 생각하자면, 우리가 생각하는 자르고 깎고 구멍을 뚫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실리콘을 의도한 모양대로 자르려면 칼을 이용하면 되는데, 문제는 가장 얇은 칼날이라도 두께가 0.1㎜ 정도다. 이건 건드리면 바로 부러진다. 이래선 대상을 가공할 수 없다. 실리콘을 나노미터 수준으로 가공하는 데는 아르곤이나 갈륨 이온 같은 것을 쓴다. 이걸 가속해서 던지는 방식으로 실리콘에 모양을 낸다. 반도체 회로처럼 화학물질을 쓰기도 한다.”
투명망토는 뭔가. 원리가 궁금하다.
“영화 해리포터에 투명망토가 나온다. 이게 말이 안 되는 상상이 아니다. 우리 눈이 사물을 인식하는 원리는 빛이 사물에 반사된 뒤 눈의 망막에 맺히는 거다. 그런데 메타물질을 입힌 투명망토는 빛을 정상적으로 반사하지 않는다. 투명망토를 덮어쓴 대상이 있으면 빛이 투명망토를 타고 넘어가 뒤쪽에 있는 사물에 부딪히고 반사돼 다시 투명망토를 넘어 지켜보는 사람의 눈에 들어온다. 빛이 이렇게 표면을 타고 돌아나가도록 의도적으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앞에 물체가 분명히 있지만 눈에 들어오는 빛은 그 뒤쪽 정보밖에 없다. 이게 투명망토의 원리다.”
빛은 직진하는 것 아닌가. 어떻게 사람을 타고 넘어서 뒤쪽 사물에 반사돼 돌아오나.
“어떤 경우라도 빛은 직진하면서 들어오는 각도에 맞게 똑같이 반사돼 나간다. 하지만 나노입자로 구성된 메타물질 투명망토는 빛이 이상한 길로 반사돼 나가게끔 만든 거다. 댐을 건설할 때 물의 경로를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5년 뒤 메타물질 기술로 창업 계획

학부와 석사에서 기계공학을 하다가 박사과정은 기계와 나노공학을 같이 전공했던데.
“석사과정 때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초소형 정밀기계 기술, 즉 멤스(MEMS· Micro-Electro Mechanical Systems)를 전공했는데, 투명망토 개념을 우연히 접하고 푹 빠졌다. 그래서 투명망토를 연구하신 교수를 찾아가 박사학위를 한 거다. 지도교수는 당시 2차원 0.1㎜의 아주 작은 영역에서 투명망토를 만들었지만, 나는 가로·세로 1×1㎝, 그리고 3차원의 투명망토를 2018년에 세계 최초로 만들어냈다. 즉, 물리적인 현상은 옛날 것과 똑같지만, 이것을 더 잘 만들 수 있는 가공·생산기술을 전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거다.”
그래도 가로·세로 1×1㎝를 투명망토라고 하긴 좀 그렇지 않나. 더 크게 못 만드나.
“가로·세로 1×1㎝를 만드는 비용은 약 1000만원 정도 든다. 이것도 과거보다 크게 내린거다. 더 크게 만드려면 비용도 더 들지만, 아직 넘어서야할 기술장벽이 하나 있다. 현재는 유리나 딱딱한 곳에서만 이런 동작이 가능해 투명 스크린에 가깝다. 망토라는 건 옷감처럼 구부러져야 하는데, 연구가 더 진전돼야 한다.”
투명망토와 같은 메타물질은 어떤 곳에 쓰일 수 있나.
“휴대폰에 장착된 카메라 렌즈가 지금도 작긴 하지만, 메타물질로 렌즈를 만들면 7장의 렌즈를 하나로 줄일 수 있다. 일반 안경에 스마트글래스와 같은 기능과 장치를 모두 집어 넣을 수도 있다. 무인자동차의 라이다 센서는 현재는 아주 큰데, 이걸 손톱만한 크기로 줄일 수도 있다. 메타물질을 전투기에 입히면 전파를 통과시켜 적들이 완전히 인지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지금의 스텔스기는 전파를 교란해 약하게 하는 정도다. 앞으로 5년 뒤 메타물질 기술을 바탕으로 창업을 해볼 생각이다.”

노준석

1981년생.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어바나-샴페인 일리노이대에서 기계공학으로 석사를,  UC버클리에서 기계공학과 나노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 박사후연구원과 아르곤국립연구소 연구책임자를 거쳐 2014년 포항공대기계공학과/화학공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2019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젊은과학자상, 2022년 공학한림원 젊은공학인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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