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은 신학 아냐” vs “공짜 점심은 없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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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2호 20면

새뮤얼슨 vs 프리드먼

새뮤얼슨 vs 프리드먼

새뮤얼슨 vs 프리드먼
니컬러스 웝숍 지음
이가영 옮김
부키

절묘한 타이밍에 20세기 후반의 대표적인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과 밀턴 프리드먼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책이 나왔다.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가 코로나19에 이어 인플레이션과의 대결하고 있고 고물가 속 경기침체인 스태그플레이션을 걱정하는 판국이어서 참고할 게 많다.

‘경제학자들의 경제학자’ ‘현대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새뮤얼슨은 『맨큐의 경제학』이 나오기 전까지 베스트셀러 경제학 교과서였던 『새뮤얼슨의 경제학』을 썼고, 케인시안 입장에서 고전파 이론을 융합한 ‘신고전파 종합’ 이론을 창안했다. 경제가 완전고용에 가까울 정도로 호황일 때에는 가격과 시장기능을 강조하는 신고전파의 정책 수단을, 경제가 불황일 때는 케인스학파의 정책 처방을 따른다는 내용이다.

1980년대초 중앙일보 특파원과 인터뷰하는 새뮤얼슨. 오른쪽은 1970년 한국은행 초청으로 내한해 강연하는 프리드먼. [중앙포토]

1980년대초 중앙일보 특파원과 인터뷰하는 새뮤얼슨. 오른쪽은 1970년 한국은행 초청으로 내한해 강연하는 프리드먼. [중앙포토]

프리드먼은 윤석열 대통령이 소싯적에 읽고 감동했다는 『선택할 자유』의 저자이자 통화주의의 대표주자다. 애국심과 국가를 강조하는 전통적인 보수주의자와 궤를 달리하는 자유지상주의 신봉자였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징병제에 반대했으며 마약 합법화를 주장했다.

둘은 공통점이 많다. 유럽 출신 이민가정에서 태어난 유대인이고, 대학 동창과 결혼했으며, 시카고대에서 공부했다. 새뮤얼슨은 1970년에, 프리드먼은 1976년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3년 터울인 프리드먼(1912~2006)과 새뮤얼슨(1915~2009) 모두 94세까지 장수했다.

물론 다른 점은 더 많다. 새뮤얼슨이 시카고대를 전액 장학생으로 여유 있게 다닌 반면, 프리드먼은 조교 일과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마련해야 했다. 젊어서 고생한 기억은 오래갔다. 프리드먼은 나중에 노벨상을 받고 백만장자가 된 이후에도 기자들에게는 꼭 수신자부담 전화를 걸었다.

새뮤얼슨은 직관을 중시하고 현대 경제학의 수학적 방법론을 정립한 학자답게 수식을 많이 썼다. 프리드먼은 “지나치게 복잡하고 어려운 이론은 성공할 수 없다”고 했다. 사상을 설파하려면 이론을 단순하고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잘 알았기에 대중과 정치인의 마음을 파고들 수 있었다. “공짜점심은 없다” “샤워실의 바보” “인플레이션은 입법 없는 과세”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 등 요즘도 그의 어록이 자주 인용되는 이유다.

경제자문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케네디 행정부의 제안을 거절할 정도로 정치인과 거리를 뒀던 새뮤얼슨과 달리, 프리드먼은 닉슨·레이건 대통령과 대처 영국 수상, 피노체트 칠레 독재자 등 자신의 통화주의 이론을 실현해줄 이들에게 조언했다. 새뮤얼슨은 시장이 경제의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보수 경제학자의 주장을 “경제학은 신학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두 사람은 1966년부터 무려 18년간 주간지 뉴스위크에 번갈아 칼럼을 쓰며 논쟁을 이어갔다.

책 제목과 달리, 새뮤얼슨보다 프리드먼에 대한 서술이 많다. 좌충우돌하는 프리드먼이 얘깃거리가 많아서인 듯하다. 케인스주의가 득세할 때 프리드먼은 홀로 외로운 주장을 펼쳤고, 1970년대 인플레이션이 도래하면서 각광을 받기 시작해 스태그플레이션을 끝내는 데 기여했지만 미국과 영국에서의 정책 실험은 성공하지 못했다. “자신의 이상을 펼치고 싶었지만 이미지 관리에만 급급해 옳은 방법보다는 편의주의적 방편을 추구한” 닉슨 대통령에 좌절했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엔 공급주의 경제학에 밀렸고, ‘인플레이션 파이터’ 볼커 연준 의장의 통화주의 실험도 시늉에 그쳤다. 지나치게 단순한 프리드먼의 통화주의는 손님의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정책가의 도구가 되기는 힘들었다. 통화량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조절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구체적인 정책 수단으로 만들기엔 빈 구석이 많았기 때문이다.

두 학자의 대결, 최종승자는 누구일까. 저자는 새뮤얼슨의 손을 들어줬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세계 각국은 재정 투입이라는 케인스주의 정책을 펼쳤다. 저자는 “프리드먼이 1년 더 살았더라면, 통화만 충분히 공급하면 유동성 부족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자기 이론의 한계를 드러낸 2007~2008년의 금융위기를 경험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썼다.

물론 화폐의 안정적인 공급이 중요하며 무절제한 돈 풀기가 결과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는 프리드먼의 가르침을 무시하는 중앙은행은 없다. 프리드먼이 죽자 새뮤얼슨의 조카이자 클린턴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로런스 서머스가 “솔직한 민주당원이라면 이제 우리가 모두 프리드먼주의자라는 사실을 인정할 것”이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그러자 새뮤얼슨이 조카에게 뒤끝 작렬하는 편지를 썼다. “재정정책보다 통화정책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누가 증명한 거지? 네게만 하는 얘기다만, 프리드먼이 발표한 모든 글을 읽은 사람이자 거시경제학자로서 나는 그를 낮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 이 편지를 인용하진 마라. 망자에게 좋은 말만 해야 되는 시기니까.”

두 학자 이전의 경제학 흐름이 궁금하면 로버트 L 하일브로너의  『세속의 철학자들』과 토드 부크홀츠의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를 같이 참고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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