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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공포를 흥미로 전환, 테마파크형 리더십 필요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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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2호 16면

자연에서 배우는 생존 이치

자연에서 배우는 생존 이치

자연에서 배우는 생존 이치

놀이공원으로 유명한 에버랜드를 한때 자주 찾은 적이 있다. 사자와 호랑이의 삶이 한창 궁금하던 때였는데, 이곳 ‘사파리’에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연의 두 ‘호걸’이 한 공간에서 살고 있어서였다. 처음엔 오로지 사파리만 보고 나오곤 했는데, 몇 번 가자 눈길과 발길이 다른 곳으로 슬슬 돌아가기 시작했다. 즐거운 괴성이 난무하는 곳이 어디 한두 군데인가. 사자와 호랑이가 어슬렁거리듯 그렇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 순간 궁금해졌다. 이곳에 온 사람들은 다들 웃고 즐거워하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까? 또 이걸 위해 이곳은 뭘 어떻게 하고 있을까?

발품을 팔다 보니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두 가지가 흥미로웠다. 먼저 눈에 띈 건, 독특한 역발상이었다. 이곳의 핵심역량이라 할 만한 것이 불안과 공포인 까닭이다. 이곳은 모든 사람들이 부정적으로만 여기는 불안과 공포를 재미와 스릴로 만들어 사람들 스스로, 그것도 돈까지 내면서 들어가게 한다. 오금이 저리다 못해 머리털이 주뼛 서고 비명까지 질러야 하는 위험천만한 곳으로 말이다. 더구나 웃고 떠들고 줄까지 서면서! 다른 곳에서는 거의 무조건이다시피 꺼리는 사람들을 어떻게 ‘용기백배’ 하게 만드는 걸까? 의외로 방법은 간단하다. 적당한 수준의 불안과 공포를 제공하는 것이다. 무섭고 위험하기는 하지만 끝이 있고 안전하니 사람들은 용기를 낸다. 담력 시합까지 하면서 말이다.

각각의 놀이 기구를 품은 전체 공간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말이지 곳곳에 ‘숨은 그림들’이 배치돼 있었다.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주는 커다란 입구를 들어서면 널찍한 도로와 도로 주변의 알록달록한 가게들이 뭔가 즐거운 일이 곧 일어나리라는 걸 암시한다. 걸어가면 계속 변하는 공간과 풍경은 새로운 공간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게 하고, 그러는 동안 ‘와, 저기 한 번 가보고 싶은데?’ 이런 생각이 드는 것들을 랜드마크처럼 보여준다. 또 모퉁이를 돌면 거의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생각지 못한 것들이 있다. 무엇보다 내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어 헤맬 필요도 없고 그래서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놀이기구에 가득한 불안과 공포를 밖에선 조금도 느낄 수 없는 공간 배치다.

생존이치

생존이치

이런 대비는 테마파크의 원조 격인 디즈니랜드도 마찬가지인데, 생각할수록 조직을 이끄는 리더들에게도 이 두 가지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리더들 역시 인간을 이해해 불확실성 가득한 세상 속으로 스스로 뛰어들도록 하는 일이 갈수록 필요해지고 있는 까닭이다. 알다시피 요즘은 예전과 달리 “일단 해봐”라거나 “나를 따르라”고 해서는 어림도 없지 않은가. 예를 들어 적당한 불안과 안전하면서도 끝이 있는 공포는 리더십에서도 대단히 중요하다. 위험하긴 하지만 감당할 수 있고, 보상이 괜찮다면 사람들은 기꺼이 용기를 내기 때문이다. 당위성 강조나 지시보다 구성원들 스스로 참여 하고픈 마음이 들게끔 하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다양한 심리학 연구들이 말하듯, 참신함은 낯섦과 익숙함이 조화될 때 생긴다. 너무 낯선 환경으로 갑자기 끌고 가거나 등 떠밀지 말고, 놀이 기구처럼 수위를 맞춰주어야 하는 것이다. 제대로 잘 가고 있다는 이정표와 가야 할 곳인 랜드마크 같은 비전을 수시로 제시해서, 구성원 스스로 어디서 와서,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철학의 명제가 이 세 가지인 것은 인간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뭔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랜드마크 같은 비전을 ‘잊을 만할 때마다’ 제시하는 게 갈수록 필요해지고 있다. 잭 웰치가 일찌감치 얘기했던 것처럼 “입에 재갈을 물리고 싶어 할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왜 열심히 일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계속, 다양하게 보여야 한다. 인간은 시각을 기본 감각으로 하고 있어 두 눈으로 봐야 믿고, 믿어야 행동하기 때문이다. 알아듣게끔 잘 말했으니 다 이해했을 거라는 식으로 하는 리더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힐 가능성이 크고, 답답함이나 조급함에 잔소리처럼 자기 얘기만 하면 불신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어느 정도의 불안과 공포를 감수해야 한다는 건 구성원들도 잘 안다. 중요한 건, 이들이 감수해도 괜찮다 싶을 정도로 이것들을 ‘설계’하고 조절하는 것이다. 웃고 떠들고 줄까지 서게 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는 가능할 테니 말이다. 아마 앞으로는 이런 환경을 잘 설계하는 ‘테마파크형 리더’가 각광받을 것이다. 인간은 그 어느 생명체보다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잘 알아보고 적응하는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아드레날린을 마음껏 내뿜으며 살아있다는 느낌을 강렬하게 느끼고 싶어 하는 게 우리 인간 아닌가? 조직을 이끄는 문제로 머리가 아프다면, 바람도 쐴 겸 근처 테마파크를 한 번쯤 가보길 바란다. 불안을 설렘으로, 공포를 스릴로 전환할 수 있다면 하루하루가 즐거울 수도 있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경향신문과 중앙일보 이코노미스트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2005년부터 자연의 생존 전략을 연구하며 지속 가능한 생명력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지를 탐구하고 있다.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등의 책을 냈고,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지식탐정의 호시탐탐’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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