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우주시대 본격 개막]로켓 직접 깎고 다듬고, 우주산업 혁명 벼르는 ‘우주키즈’

중앙선데이

입력 2022.06.11 00:20

업데이트 2022.06.11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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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2호 10면

SPECIAL REPORT

항공대에서 제작한 로켓이 발사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 NURA], 황건강 기자

항공대에서 제작한 로켓이 발사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 NURA], 황건강 기자

“누리호는 개발하는 과정에 있고, 개발 과정을 두고 성공이나 실패라고 규정짓긴 어려울 것 같다.” 지난해 10월 21일 누리호 1차 발사 직후 진행된 브리핑에서 권현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거대공공연구정책관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이 장면은 수많은 ‘우주키즈’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올해 전국대학교로켓연합회(NURA) 회장을 맡은 한국항공대 20학번 최나린(22)씨도 이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최씨는 “지난해 누리호 1차 발사 장면이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며 “잊을 수 없다면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에 활동하다 보니 NURA 회장까지 맡게 됐다”고 말했다. NURA는 서울대와 카이스트, 한국항공대 등 전국 30여 개 대학이 참여하고 있는 로켓 분야 국내 최대 대학 단체로, 회원은 석·박사, 학부생 등 416명(지난해 말 기준)이다. 이들은 로켓을 연구하고 실제 제작을 하기도 한다.

한국의 우주산업을 이끌 우주키즈들의 마음 한 켠엔 저마다의 로켓이 자리 잡고 있다. NURA 책임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전하상씨(30)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나로호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인 2010년 나로호 2차 발사 실패에 마음 아파하던 전 위원장은 항공대 항공우주기계공학과 12학번으로 입학한 뒤, 지금은 석사 과정을 밟으며 NURA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누리호 1차 발사 때도 나로호 2차 발사 때의 폭발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며 “축구 꿈나무들이 박지성, 손흥민 선수의 활약에 울고 웃으며 꿈을 키운 것처럼, 나로호와 누리호를 보며 꿈을 키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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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 활동은 ‘월급 없는 회사 생활’

발사 준비 중인 로켓을 지켜보는 NURA 운영진. [사진 NURA], 황건강 기자

발사 준비 중인 로켓을 지켜보는 NURA 운영진. [사진 NURA], 황건강 기자

나로호와 누리호를 발사하며 한국 우주 산업의 성과를 만들어가고 있는 40·50대 엔지니어들에겐 우리별 1호가 있었다. 이들이 대학생활을 시작하던 1992년엔 한국 최초의 인공위성인 우리별 1호 발사가 우주키즈들의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이다. 전국에서 대학별로 활동하던 우주키즈들이 NURA를 설립한 것도 1992년이다. 우리별 1호 개발이 주목받던 1990년대엔 주요 대학 항공우주공학과에 우수한 학생들이 몰렸다.

이렇게 ‘우주에 꽂힌’ 우주키즈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매년 4분기 전국대학교로켓발사대회는 대학에 숨어 있는 우주키즈들이 갈고닦은 실력을 뽐내는 자리다. 봄과 가을에 진행하는 한국추진공학회 학술대회는 우주 키즈 선·후배들이 한자리에 모여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축제의 장이다. 이렇게 1년간 일정이 빡빡하게 돌아가다 보니 학생들 사이에선 동아리 활동이 아니라 ‘월급 없는 회사 생활’이란 얘기가 나올 정도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우주에 대한 열정이 넘치지만, 꿈을 키울 수 있는 토양은 척박한 편이다. 국내에선 고체 추진체 최대 탑재 중량 400g, 최대 상승 고도 152m(500피트)라는 규정 때문에 더 큰 로켓을 만들 수가 없다. 연료와 산화제를 혼합해 만드는 고체 추진체는 폭발 위험이 있어 화약류 관리법에 따른 규제 대상이다. 최대 상승 고도 역시 안전상의 이유로 제한이 걸려 있다. 제작 환경에서도 차이가 난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 로켓 강국에선 엔진이나 모터, 노즐 등 다양한 부품을 쉽게 구입할 수 있다. 반면 한국에선 로켓 제작에 필요한 부품을 대학생들이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제작하고 있다. 제작 과정도 험난하다. 우주 키즈들은 해외 논문이나 원서를 구입해 로켓 제작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데 비용이 만만찮다. NURA 행정 총무를 맡고 있는 건국대 기계공학부 20학번 문준석씨(22)는 “해외 원서를 구입하면 한권에 10만원을 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며 “그 마저도 학생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워 대학원생이나 국책 연구기관에서 일하는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켓 발사가 허용된 지역도 부안군 변산반도 일대와 고흥군 일부 지역 등 두 곳뿐이다. 국토 대부분에 군부대가 포진해 비행금지구역으로 묶인 탓이다. 로켓 시험 발사에 드는 비용도 만만찮다. 전하상 위원장은 “매년 진행하는 전국대학교로켓발사대회 교통비와 숙박비만 해도 6000만원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개최된 전국대학교로켓발사대회. [사진 NURA], 황건강 기자

지난해 12월 개최된 전국대학교로켓발사대회. [사진 NURA], 황건강 기자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우주에 대한 열정 덕에 성과도 나오고 있다. 한국항공대 로켓동아리 SRS는 하이브리드 로켓(고체 연료와 액체 연료를 조합한 추진제를 사용하는 로켓)의 완성도를 높인 것으로 유명하다. 항공대 하이브리드로켓 추진 연구실은 지난 2007년 국가지정연구실로 선정되기도 했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X처럼 로켓 재사용을 위해 로켓을 회수하는 연구를 진행 중인 곳도 있다. 순천대 로켓동아리 로켓단은 회수 가능한 2단 로켓을 설계해 지난해 진행된 ‘제19회 전국 항공우주과학경진대회’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을 받았다. 이 로켓은 1단부를 분리한 뒤 2단부가 정해진 지상 목표 지점에 안전하게 착륙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회수한 로켓은 재사용이 가능해 최근 민간 로켓 업체들 사이에서도 관심이 높은 분야다. 순천대 대학원에 재학중인 최모건씨(26)는 “국책 연구 기관에서도 연구하고 있는 로켓 재회수 기술을 대학수준에서 로켓에 적용한 것은 처음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대학·대학원을 졸업한 뒤에는 정부출연·민간 연구소나 민간 기업, 창업 등을 통해 우주에 대한 꿈을 키우고 있다. 하이브리드 로켓을 개발하고 있는 이노스페이스의 창업자 김수종 대표는 항공대 SRS 출신으로 NURA에서도 소문난 우주키즈다. 김 대표는 항공대에서 학부와 석·박사 과정을 마친 뒤 ㈜한화 방산 부문에서 고체로켓 부문 연구원으로 근무하다 2017년 이노스페이스를 창업했다. 액체 유인 발사체를 만드는 스타트업 우나스텔라의 박재홍 대표는 베를린 공대 우주공학부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독일우주센터 등에서 10년간 로켓 엔진을 개발하던 우주키즈다.

우주산업, 고급 인재 수요 급증 전망

항공대에서 제작 중인 하이브리드로켓. [사진 NURA], 황건강 기자

항공대에서 제작 중인 하이브리드로켓. [사진 NURA], 황건강 기자

우나스텔라의 김계환 최고기술책임자(CTO) 역시 대학 시절 로켓동아리에서 활동했다. 이들은 아시아 최초의 민간 유인 우주 비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올해 2월 설립된 이 회사는 지난달 중소벤처기업부의 민간 투자 주도형 기술 창업 지원 프로그램 팁스(TIPS)에 선정됐다.

2단형 초소형 우주발사체를 개발하는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의 신동윤 대표는 별이 좋아 우주 산업에 뛰어든 경우다. KAIST 항공우주공학과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인 신동윤 대표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망원경을 들고 별을 보러 다닌 것으로 유명하다. 별을 좋아하다 보니, 별에 조금이라도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로켓에 꽂힌 것이다. 신 대표는 “우리가 할 일은 사람들에게 우주가 친숙한 곳이라는 걸 보여주고, 우주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라며 “앞으로 소형 인공위성을 발사해주는 시장을 공략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정부가 우주산업을 본격적으로 키우겠다고 한 만큼 우주키즈들의 활약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당장 인재 수요 급증이 예상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2020년 우주사업실태조사’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신규 인력 수요는 973명 수준으로 연평균 200명가량을 필요로 한다. 우주학과 및 관련학과 졸업생은 1499명 수준인데 이 가운데 석사 이상 상급과정 진학률은 12.9%에 그쳐 고급 인재 부족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NURA 초대 회장을 역임했던 이훈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그동안 일자리 문제로 진로를 바꾸거나 연구를 그만 두는 선후배가 적지 않았다”며 “우주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해 더 많은 우주키즈가 나오고, 이들이 안정적으로 연구를 이어갈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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