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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우주시대 본격 개막]우리별 1호 띄운 최순달, 무궁화 위성 개발 황보한, 기술 연구 선봉 홍용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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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2호 10면

SPECIAL REPORT

최순달

최순달

한국이 달 탐사선 다누리호를 만들고, 우리 기술로 로켓을 쏘아 올리기까지 수많은 항공우주 과학자들의 역할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고(故) 최순달 전 체신부 장관은 불모지였던 한국의 항공우주 분야를 개척한 선구자다. 그는 미국 스탠퍼드대 공학박사 학위를 마친 뒤 NASA(미 항공우주국) 제트추진연구소에서 근무하다 1976년 귀국해 한국전기통신연구소(ETRI) 초대 소장, 한국과학기술원(현 카이스트) 초대 학장, 체신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한국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1호’도 그의 업적이란 게 과학기술계의 평가다. 1989년에는 카이스트에 인공위성연구소를 설립했고, 카이스트 학생 10명을 영국 서리대에 유학 보내 인공위성 개발에 매진하게 했다. 당시 영국 유학생들은 한국 인공위성 산업의 1세대 원로가 됐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미래전략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한 박성동 전 쎄트렉아이 의장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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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한

황보한

대한항공기술연구소·한국항공우주학회 등에서 항공우주 연구의 선봉에 섰던 홍용식 인하대 항공우주공학과 명예교수, 무궁화 위성 1~3호를 개발한 황보한 박사 등도 한국의 항공우주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아폴로 박사’로 유명한 고 조경철 박사는 우주항공 분야 저변 확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경희대 부총장을 맡았던 1984년 조 박사는 천문학과를 신설하기도 했다.

조광래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은 발사체의 선구자로 꼽힌다. 조 전 원장은 1989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설립 때부터 참여해 1990년 한국의 첫 고체연료 로켓인 ‘KSR-1’을 개발했다. 조 전 원장은 “로켓 개발을 위해 미국에 교육을 받으러 갔는데, 노란선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게 하고 화장실까지 따라와 감시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미국과 러시아 등 기술 선진국들의 견제가 심했던 것이다. 조 전 원장은 “원자력만 해도 1950년대부터 연구가 진행됐지만, 로켓 등 항공우주 분야는 정말 불모지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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