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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 ‘억단위’로 여기 돈넣는다...‘최악 인플레’ 놀라운 역발상

중앙일보

입력

인플레 시대 재테크

긴축 공포에 10일 코스피가 2600선을 내주면서 코스피 대장주인 삼성전자도 52주 신저가인 6만3800원에 거래를 마쳤다. [뉴스1]

긴축 공포에 10일 코스피가 2600선을 내주면서 코스피 대장주인 삼성전자도 52주 신저가인 6만3800원에 거래를 마쳤다. [뉴스1]

“강남 빌딩의 월세 기대수익이 연 2% 안팎인데, 대출 금리가 4% 수준이면 이자는 어떻게 감당하나요?” “퇴직금 받아 주식과 코인에 넣었더니, 원금의 90%가 사라졌어요.”

금리가 뛰면서 투자 공포 시대가 열리고 있다. 주식·채권·원화 가치가 동반 하락하는 이른바 ‘트리플 약세’가 시장을 지배한다. 부동산 시장의 매수세도 ‘실종’ 국면이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주택담보 대출 평균 금리가 ‘마의 5%’에 육박하면 부동산시장이 급격히 위축될 것”이라며 “하반기 부동산 시장은 중대 고비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자산시장을 쑥대밭으로 만든 위기의 본질은 ‘미친 물가’에 있다. 세계 각국이 동병상련이다. 미국은 50년 만의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맞았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은 7일(현지시각) 상원 금융위원회에서 현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의 인플레이션”이라고 고백했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통계청에 따르면 5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5.4% 상승했다. 2008년 8월(5.6%) 이후 13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너무도 빠르고 급격한 물가 상승은 ‘1970년대 인플레 괴물’의 공포를 재현하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일 BOK 국제콘퍼런스 개회식 개회사 연설을 통해 “70년대식 고인플레가 부활했다”고 말했다. 70년대는 인플레가 세계 경제의 숨통을 조르던 시기였다. 73년 제4차 중동전쟁이 석유전쟁으로 비화하며 오일 쇼크가 일어났다. 연초 배럴당 2달러 59센트였던 중동산 기준 원유 값은 1년 만에 11달러 65센트로 무려 4배 가까이 올랐다. 미국 소비자물가는 73년 3.4%에서 이듬해 2월엔 10%대로 3배 이상 폭등했다.

“금리 인상만으로 물가 잡기 어려울 것”

신환종 NH투자증권 FICC리서치센터장은 “오일쇼크 당시처럼 심각한 수준의 인플레이션은 아니겠지만, 지난 10여 년간에 비해 상당한 물가 고통을 감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정학적 위기는 70년대와 유사하지만, 미 연방준비제도(Fed) 대처가 민첩해졌고 달러도 안정세”라고 당시와 차이점을 꼽았다. 염승환 이베스트투자증권 이사는 “현 인플레이션 국면은 에너지·농산물 가격이 급등하고, 항공 등 서비스 수요가 폭증하는 데다 임금 상승 요인이 맞물린 복합위기”라며 “금리 정책만으로 물가 급등 현상을 제압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2024년까지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이 이어질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어소시에이츠 설립자인 레이 달리오는 지난 8일 호주파이낸셜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긴축 고통은 더 커질 것이고 글로벌 중앙은행들은 2024년이 돼서야 다시 금리를 인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인플레이션을 잡는 정공법은 금리 인상이다. 각국 중앙은행들은 앞다퉈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고 있다. 인플레와 금리인상이 맞물리면 자산시장은 재편된다. 기대수익과 비용의 기준점도 송두리째 바뀐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70년대에는 원자재가 ‘왕’이었다. 도이체뱅크가 조사한 70년대 주요 자산의 10년간 연평균 실질 수익률을 살펴보면, 브렌트유가 24.4%로 가장 높았고 은(22.5%)과 금(21.7%), 서부택사스산원유(WTI, 19.2%) 등도 많이 올랐다. 반면 주식과 채권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1.4%)와 10년물 미국 국채(-1.2%)는 비실댔다. 실물자산 투자의 전성시대였던 셈이다. 그렇다면 40년 만에 부활한 역대급 인플레이션 앞에서 투자자들은 어떻게 생존법을 찾고 있을까. 중앙선데이가 은행 및 증권 PB 등 금융전문가 10여명을 통해 자산가들의 인플레 생존법을 알아봤다.

자산가 김모(73)씨는 최근 5년짜리 은행채권(신종자본증권)에 5억원을 넣었다. 만기를 맞은 정기예금에서 갈아탄 것이다. 그는 “정기예금 금리가 올랐다고 해도 연 2%인데 채권에 투자하면 2배 이상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해 관심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김현섭 KB국민은행 한남PB센터장은“차주 발행 예정인 신종자본증권에 ‘억’단위 예약이 잇따르고 있다”며 “자산가들은 수십 년 만에 부활한 인플레이션 앞에서도 그저 관망하기보단 리스크를 최소화하며 수익을 만드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2022년 자산시장에선 ‘역설 투자’가 유행이다. 최근 부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긴축 국면의 주인공은 ‘채권’이다. 금리 인상기에는 채권의 가격이 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그럼에도 ‘큰손’들은 채권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김 센터장은 “금리가 무한정 오르기에는 우리나라 가계부채 문제가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고, 이미 이율이 크게 올라간 채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가 폭풍이 지나간 뒤까지 내다보고 ‘돈의 길목’을 지키는 장기적인 안목의 투자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으로 채권 가격은 크게 떨어지고, 대신 이율은 크게 높아졌다. 회사채, 공사채, 은행채권(신종자본증권)의 이율은 3~4%대에 이른다. 이율이 낮은 국고채 금리도 3%를  넘어섰다. 여기에 금리가 안정될 경우 채권 거래를 통한 매매차익까지 기대할 수 있다. 염승환 이사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앞으로 금리 상승 추세가 꺾인다면, 현재 3%가 넘는 채권 금리가 2%로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며 “이때는 채권 가격이 올라가기 때문에 이자 수익과 합하면 실질적으로 연 10% 수익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뭉칫돈은 주가연계증권(ELS)으로도 흘러들고 있다. 개별 주식 가격이나 주가지수와 연계해 투자수익이 결정되는 ELS는 특정 기준을 충족하면 수익을 얻는다. 최근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ELS의 목표 수익률을 10% 정도로 높인 상품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 유상훈 신한PWM압구정센터 팀장은 “국내 주식시장이 지난해 고점 대비 20% 정도 빠지면서 ELS를 가입하기에 적기라는 시각이 많다”며 “6개월 이내 조기 상환 가능성을 고려해 S&P500 등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연 10% 이내 ELS에 대한 문의가 많다”고 전했다.

금리가 오르면서 예금 선호도도 높아졌다. 그러나 예금의 경우 ‘방망이를 짧게’ 가져가라는 조언이다. 김인응 우리은행 영업본부장은 “연내 추가 금리 상승의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당장 예금에 가입한다면 3개월짜리 우대금리를 적용받고, 연말쯤 장기 상품으로 갈아타는 전략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대출 갈아타기는 ‘천천히’ 관망하는 자세를 추천한다. 금리 상승기다 보니 고정금리로 갈아타려는 문의가 잇따르지만, 내년이나 내후년 금리의 방향이 다시 바뀔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김 본부장은 “여유자금이 있다면 서둘러 대출을 상환하고, 장기 대출이라면 일단 관망하면서 내년 이후 금리 추이를 지켜보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신저가 우량주 속출, 반등 기다려볼 만

유가 등 원자재 관련 상품에 대한 관심은 낮았다. 박진석 하나은행 클럽원(한남) 센터장은 “이론적으로는 인플레이션에 대비해 원자재에 투자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변동성이 과도해 안전을 중시하는 자산가들의 관심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홍춘욱 리치고 인베스트먼트 대표는 “만일 돈을 수레에 담아 물건을 사러가야 하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초인플레이션)을 대비한다면 금(金)을 분산투자의 대상으로 고려하라”고 말했다.

코스피 하락에 동학개미(국내 증시 일반 투자자)들은 백기 투항 중이다. 지난달 동학개미는 국내 증시에서 1조원 넘게 팔아치웠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섣불리 ‘매도하지 마라’고 당부한다. 오히려 ‘신저가 우량주’가 속출하는 시기에 저가 매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삼성전자와 네이버, 카카오 등 565개 종목이 지난달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 염승환 이사는 “상반기에는 예측하기 어려웠던 전쟁이나 중국 봉쇄 등의 악재가 터지면서 충격이 컸는데, 이미 주가에 대부분 반영된 상태”라며 “유가 상승이 멈추는 등 물가 정점을 찍었다는 신호가 나오면 하반기 코스피지수가 2800~2900선으로 반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주가가 크게 떨어진 지금 손실을 확정 짓지 말고, 포트폴리오 조정을 기다리라는 충고다. 김현섭 센터장은 “지난해 10만전자를 바라보던 삼성전자가 6만 원대로 주저앉았고, 네이버나 카카오는 올해 들어서만 30% 정도 빠진 상태이기 때문에 조정이 올 때마다 자산가들의 분할 매수 문의가 많다”고 전했다. 염승환 이사는 “물가 상승기에는 미래 전망도 중요하지만 당장 실적을 내는 기업이 투자자들의 환호를 받는 가능성이 높다”며 ‘옥석 가리기’를 강조했다. 염 이사는 물가상승의 리스크를 전가할 수 있는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조선주, 정유주 등을 유망 섹터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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