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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구불 육십령 오르니, 돈가스가 맞이해 주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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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2호 24면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17〉 백두대간 80고개 와인딩(하)

해발 1172m로, 지리산에서 차로 다다랄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인 정령치. 김홍준 기자

해발 1172m로, 지리산에서 차로 다다랄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인 정령치. 김홍준 기자

고개에는 돈가스가 있다. 고개에는 후백제 왕을 ‘추앙’하는 마을이 있다. 고개에는 전쟁이 쉴 새 없이 벌어졌다.

백두대간 고개는 사정없이 몸을 낮춘다. 충북 보은과 경북 상주를 잇는 화령(320m)이다. 고개 이름은 문헌에서 화령(化寧)이 되기도 하고 화령(火嶺)이 되기도 한다.

고개애는 사람이 드나들고 삶이 깃들어 있다. 전남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에 사는 고복순(81) 할머니가 메주를 쑤기 위한 불쏘시개 낙엽을 긁어모은답시고 수레를 끌고 지리산 정령치 쪽으로 향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고개애는 사람이 드나들고 삶이 깃들어 있다. 전남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에 사는 고복순(81) 할머니가 메주를 쑤기 위한 불쏘시개 낙엽을 긁어모은답시고 수레를 끌고 지리산 정령치 쪽으로 향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그런데 고개 이름에 불 화(火)를 쓴 이유는 뭘까. 수많은 전투와 전쟁 때문이다. 1950년 7월 17일~21일 벌어진 화령장전투는 밀고 내려오는 북한 15사단을 저지, 낙동강 방어선을 펼칠 시간을 벌었다. 삼국시대에는 전쟁의 불이 그칠 새 없었으니, 국경이 수시로 바뀌었다.

부항령(680m, 전북 무주군 무풍면 어전리~금평리)에서 덕산재(금평리~덕산리)로 향하다 살짝 길을 서쪽으로 틀어 만난 나제통문(羅濟通門). 무풍면과 설천면의 경계에 암석을 뚫어 만든 굴로,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라고 전해진다. 김홍준 기자

부항령(680m, 전북 무주군 무풍면 어전리~금평리)에서 덕산재(금평리~덕산리)로 향하다 살짝 길을 서쪽으로 틀어 만난 나제통문(羅濟通門). 무풍면과 설천면의 경계에 암석을 뚫어 만든 굴로,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라고 전해진다. 김홍준 기자

경북 상주시 화동·화서·화남·화북 4개 면은 본래 조선시대까지 남아있던 화령현(化寧縣)에서, 모동·모서면은 중모현(中哞縣)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두 지역을 아울러 중화라고 했다. 대개 백두대간을 경계로 도와 도가 나뉘지만, 이 경상도 6개 고을은 대간 동쪽을 쑥 치고 넘어왔다. 삼국시대 하루 멀다하고 벌어진 격전의 결과로 자고 일어나면 경계가 바뀐 결과 아니었을까. 화령(化寧)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화령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박양선(52)·박은영(54, 경기도 화성)씨 부부가 비조령(343m)에서 봉황산(741m)을 넘어왔다. 아내 박은영씨는 이미 1년 전에 백두대간을 주파한 남편의 도움을 받으며 뒤따라 대간꾼으로 나섰다. 화령은 무수한 전장이 된 불의 고개(火嶺)이자 이 부부처럼 안녕히 지내고자 하는(化寧) 고개가 되는 것이다.

경북 상주시 화서면 상곡리와 신봉리를 잇는 화령. 삼국시대부터 한국전쟁까지, 요충지인 이 지역에 전쟁과 전투가 치열했기에 이름도 극단적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320m의 얌전한 화령을, 한 주민이 신봉리에서 상곡리 방향으로 자전거로 넘고 있다. 김홍준 기자

경북 상주시 화서면 상곡리와 신봉리를 잇는 화령. 삼국시대부터 한국전쟁까지, 요충지인 이 지역에 전쟁과 전투가 치열했기에 이름도 극단적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320m의 얌전한 화령을, 한 주민이 신봉리에서 상곡리 방향으로 자전거로 넘고 있다. 김홍준 기자

# 화령 밑에는 견훤 추앙하는 청계마을
“어디서 오셨소?”
경북 상주시 화서면 하송리 청계마을의 한 남성이 견훤 사당을 찾는 기자의 물음에 물음표로 답했다. 화령 밑 청계마을은 견훤의 땅이다. 후백제 왕 견훤(867~936)을 모시는 곳은 찾기 힘들다. 사당을 조선 헌종 9년(1843)에 지었다는 내력이 있다. 청계마을에서는 바위를 눈여겨볼 수밖에 없다. 누군가 툭툭 던져놓은 듯, 크고 작은 바위가 뜬금없이 논두렁 밭두렁 이곳저곳에 널려있다. 그 바위를 끼고 집도 들어섰다. 또 부도(浮屠) 2기도 벌판에 난데없이 나타나니, 꽤 호기심을 자극하는 마을이다.

경북 상주시 화서면 상곡리와 신봉리를 잇는 화령(火嶺) 밑 하송리에는 청계마을이 있다. 이 마을에서는 후백제 세운 견훤이 성을 쌓고 군사를 훈련시켰다고 한다. 19세기 초반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당인 '후백제견훤왕묘'에서 매년 정월대보름에 견훤을 기리는 제를 올린다.김홍준 기자

경북 상주시 화서면 상곡리와 신봉리를 잇는 화령(火嶺) 밑 하송리에는 청계마을이 있다. 이 마을에서는 후백제 세운 견훤이 성을 쌓고 군사를 훈련시켰다고 한다. 19세기 초반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당인 '후백제견훤왕묘'에서 매년 정월대보름에 견훤을 기리는 제를 올린다.김홍준 기자

신의터재·지기재·개머리재·큰재·작점고개를 넘어 만난 추풍령(221m, 충북 영동~경북 김천)도 전쟁을 피할 수 없는 곳이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왜군 9개 번대 중 3번대가 이곳을 지나갔다. 한국전쟁 때도 북한군이 이곳을 거쳐 낙동강까지 진격했다. 그런데, 왜군과 북한군은 진격할 때 추풍령을 넘고 퇴각 때는 이웃한 괘방령(掛榜嶺·300m)을 이용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추풍낙엽’을 연상케 하는 고개 이름 때문이었다.

고개가 소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은 우두령(575m, 경북 김천시 대덕면~경남 거창군 웅양면)의 표지석. 김홍준 기자

고개가 소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은 우두령(575m, 경북 김천시 대덕면~경남 거창군 웅양면)의 표지석. 김홍준 기자

하지만 이상훈 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 교수는 “왜군과 북한군이 두 고개를 모두 넘나들었지만, 진격과 퇴각을 구분해서 고개를 이용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추풍령은 한양에 과거를 보러 가는 유생들도 피해 갔으니, 그 이유 또한 '추풍낙엽'에서 비롯됐다. 대신 합격을 알리는 방을 붙인다고 해서 이름 붙은 괘방령을 넘었다고 한다.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은 일제 강점기 때 황금면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추풍낙엽에 대한 악감정 때문인지도 모른다. 추풍령이란 이름은 1991년에야 다시 찾아왔다. 추풍령에는 고속도로(경부)·철도(경부)·국도(4호선)이 모두 지난다. 은근슬쩍 넘어갈 정도로 낮지만, 위상이 높은 고개임이 분명하다.

백두대간 80고개 와인딩

백두대간 80고개 와인딩

명성이야 육십령(전북 장수~경남 함양)도 못지않다. 육십령은 산적이 들끓어 60명은 모여야 넘어갈 수 있는 고개라고 널리 알려졌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온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육’자가 고기 육(肉)이 아닌가 싶다.

사연은 이렇다. 대간꾼들이 육십령휴게소에 찾아오면서 “고기라도 있어야 힘을 낼 텐데, 좀 주시라”고 했단다. 그래서 최기숙(63) 주인장은 돈가스를 내놓기로 했다. 그는 “요리사(현재는 독립)를 고용해 스파게티도 내놨다가, 지금은 스파게티 대신 만두까지 직접 빚어 선보인다”고 말했다. 수제(手製)가 범람하는 지금, 전북 장수에서 나는 고기를 저미고 채소를 버무려 그것들의 속을 꼭꼭 채운다. 그래서인지, 점심이면 빠르고 쉬운 육십령터널을 마다하고 구불구불 해발 734m까지 올라와 점심을 먹고 가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이 사람들은 여기까지 올라오는 수고를 감안하면, 빠르고 쉬운 인스턴트 음식을 찾는 게 아까울 테다. 전주에서 왔다는 50대 남성이 만두를 한가득 사고 함양 쪽으로 내려갔다.

육십령(해발 734m)은 경남 함양과 전북 장수를 잇는 백두대간 고개다. 육십령휴게소에서는 장수에서 나는 흑돼지와 채소로 돈가스와 만두를 직접 만들어 판다. 김홍준 기자

육십령(해발 734m)은 경남 함양과 전북 장수를 잇는 백두대간 고개다. 육십령휴게소에서는 장수에서 나는 흑돼지와 채소로 돈가스와 만두를 직접 만들어 판다. 김홍준 기자

『신증동국여지승람』은 또 육십령을 '신라 적부터 요해지'라고 했으니 주변의 산성들이 그 말을 뒷받침한다. 오동산성·육십령성·방지산성이 있다. 1597년 8월, 정유재란 황석산성전투는 황석산(1190m)에서 육십령으로 향하는 요충지에서 벌어졌다. 대부분이 백성인 7000명이 7만5000명 왜군을 상대했단다. 성을 에워싼 일본군이 성을 비우면 모두 살려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끈질긴 수성전(守城戰)으로 왜군의 호남 진출을 늦추며 정유재란 종식에 큰 공헌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북 상주시 화서면 화령 밑 청계마을의 밭에 ‘춘파대선사탑(春坡大禪師塔. 앞)’ ‘영일선사탑(影日禪師塔)’이라고 새겨진 부도. 김홍준 기자

경북 상주시 화서면 화령 밑 청계마을의 밭에 ‘춘파대선사탑(春坡大禪師塔. 앞)’ ‘영일선사탑(影日禪師塔)’이라고 새겨진 부도. 김홍준 기자

# 무룡고개 동화분교엔 TV 나온 유기견 두 마리
육십령이 백두대간을 동서로 가로지른다면, 전북 장수 장계면과 번암면을 잇는 무룡고개(930m)는 남북으로 가로지른다. 무룡고개도 여느 고개처럼 비슷한 발음의 여러 이름을 갖고 있다. 백두대간 안내소에 있는 노순채(71)씨는 “무릉·무령이라고도 합디다”고 말했다. 번암에서 나고 자라 번암초등학교 동화분교에서 근무하는 임병대(56) 선생님도 “어릴 때부터 마을 사람들이 무릉·무령이라고 하는 걸 들었다”고 밝혔다. 표지판에는 ‘무룡’이라고 박혔다. 아무래도 낙동강·금강·섬진강을 거느린 영취산(1076m)의 기세를 고려해, 무룡(舞龍)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저마다 발음 가는 대로 무릉 또는 무령·무룡이라고 부르니, 외지인만 하나의 이름에 연연하는 건지도 모른다.

육십령과 무룡고개 사이에 있는 논개 생가의 논개 동상. 김홍준 기자

육십령과 무룡고개 사이에 있는 논개 생가의 논개 동상. 김홍준 기자

임 선생님이 있는 동화분교는 장수군 유일의 분교다. 주민들이 솟은산이라고 부르는 속금산(907m)을 뒤로 두고, 지지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앞에 품은 아담하고 산뜻한 학교다. 개들이 손님 마중 나오는 학교이기도 하다. 동이와 산이. 열 살쯤 된 이 개들은 근처 '동산'에 유기됐다가 학교에서 기르게 됐다. '동산'을 사이좋게 이름으로 나눠가진 이 개들을 보기 위해 아이들은 등교를 기다린단다. 동이와 산이는 미술시간 모델로 활약하고, 이 학교 아이들이 만든 동요 주인공이 됐으며, 방송에도 나온 제법 유명한 개들이다.

전북 장수군 무룡고개 밑 번암초등학교 동화분교의 동이(왼쪽)과 산이는 2017년 학교 인근 동산에 버려진 유기견이었다. 그래서 이름을 동이와 산이로 지었다. 미술시간 모델이 되기도 하고 학교에서 지은 동요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방송에도 뜬 '스타'다. 김홍준 기자

전북 장수군 무룡고개 밑 번암초등학교 동화분교의 동이(왼쪽)과 산이는 2017년 학교 인근 동산에 버려진 유기견이었다. 그래서 이름을 동이와 산이로 지었다. 미술시간 모델이 되기도 하고 학교에서 지은 동요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방송에도 뜬 '스타'다. 김홍준 기자

전북 장수군 무룡고개 밑 번암초등학교 동화분교. 전교생 12명의 작은 학교다. 부속 유치원에는 3명의 어린이가 다닌다. 김홍준 기자

전북 장수군 무룡고개 밑 번암초등학교 동화분교. 전교생 12명의 작은 학교다. 부속 유치원에는 3명의 어린이가 다닌다. 김홍준 기자

동화분교를 지나 만나는 복성이재(550m, 전북 장수~전북 남원)는 변사정(1529~1596)이 임진왜란의 징후를 포착하고 피난처로 삼은 곳이다. 북두칠성의 복성을 따라 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니, 전쟁의 수난은 곧 고개 명칭으로 되새겨지고 있다. 복성이재 밑 성암(星巖)마을. 도로 한복판에 누운 고양이 두 마리가 게으른 하품을 한다. 모든 게 느리게 가는 듯한, 깊게 파인 계곡에 은둔하듯 자리 잡은 성암마을은 아궁이와 재래식 화장실이 아직도 남아있다. 마을 정자인 성암정에서 강복이(75)씨가 “드셔”라며 건넨 진한 커피 한잔을 마셨다. 이렇게 저렇게 ‘백두대간 취재원’들에게 하루에 얻어 마신 커피만 5잔. 각성을 넘어 곡성이 들려오는 듯했다.

전북 남원시의 복성이재 밑 성암마을 길에서 한가롭게 볕을 쬐는 고양이들. 김홍준 기자

전북 남원시의 복성이재 밑 성암마을 길에서 한가롭게 볕을 쬐는 고양이들. 김홍준 기자

전북 남원시의 복성이재 밑 성암마을의 정자에서 마을 노인들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김홍준 기자

전북 남원시의 복성이재 밑 성암마을의 정자에서 마을 노인들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김홍준 기자

여원재에서 만난 벅수(돌장승). 1990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한다. 김홍준 기자

여원재에서 만난 벅수(돌장승). 1990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한다. 김홍준 기자

차는 너른 운봉 고원을 펼치는 여원재(447m, 전북 남원시 이백면)를 넘었다. 벅수로 부르는 돌장승이 눈을 부라리며 쳐다보고 있었다. 남원은 벅수의 고장이다. 운봉은 삼한시대부터 군사요충지였고 내륙을 노리던 왜구들이 넘어오던 길목이었다. 이성계도 이곳에서 왜구와 싸웠다. 전쟁에 지친 운봉 사람들은 수호신이 필요했다. 그게 벅수다. 남원의 벅수 16기 대부분이 운봉읍을 중심으로 인월·아영·산내면에 몰려 있다.

지안재는 경남 함양군 함양읍 구룡리와 함향군 휴천면 월평리로 잇는 고개다. 월평리에는 또다른 고개인 오도재가 있다. 두 고개는 백두대간에 속해 있지는 않지만 오토바이, 자전거 라이더들은 백두대간 고개와 한묶음으로 간주하고 라이딩에 나선다. 김홍준 기자

지안재는 경남 함양군 함양읍 구룡리와 함향군 휴천면 월평리로 잇는 고개다. 월평리에는 또다른 고개인 오도재가 있다. 두 고개는 백두대간에 속해 있지는 않지만 오토바이, 자전거 라이더들은 백두대간 고개와 한묶음으로 간주하고 라이딩에 나선다. 김홍준 기자

백두대간 80고개 와인딩은 막판으로 달린다. 정령치(1172m, 전북 남원 주천면~산내면)는 마한의 왕이 진한과 변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정(鄭)씨 성을 가진 장군을 보낸 곳이라 붙은 이름이다. 이렇게 내륙의 백두대간 고개들은 전쟁으로 얼룩져 있다.

전북 남원시 고리봉에서 바라본 정령치. 해발 1172m에 있는 정령치는 지리산에서 차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다. 김홍준 기자

전북 남원시 고리봉에서 바라본 정령치. 해발 1172m에 있는 정령치는 지리산에서 차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다. 김홍준 기자

고복순(81) 할머니도 정령치로 향한다. 작은 수레를 밀다 멈추기를 반복한다. 할머니는 “아, 낙엽 주워 불쏘시개로 쓰려고”라며 웃는다. 기자와 나란히 길에 앉아 초콜릿을 나눠 먹는다. “달곰하니 힘이 나네”라던 할머니는 다시 힘겹게 걸음을 옮긴다. 그러고는 도로 한 쪽에서 맨손으로 낙엽을 쓸어 모은다. 저기 피어나는 굴뚝 연기처럼, 한 끼니 차려낼 불을 지필 것이다. 전쟁 연기 숱하게 피어났던 곳인 만큼, 백두대간 고개에는 이렇게 진득한 삶이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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