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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누명 쓰고 쫓겨났지만 모두를 용서한 이유

중앙일보

입력 2022.06.10 06:00

업데이트 2022.06.10 09:08

윌리엄 스타이그의 『진짜 도둑』 표지. 사진=비룡소, 변소라 디자이너 byun.sora@joongang.co.kr

윌리엄 스타이그의 『진짜 도둑』 표지. 사진=비룡소, 변소라 디자이너 byun.sora@joongang.co.kr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러시아 시인 알렉산드르 푸슈키 시의 한 구절입니다. 인생의 쓴맛을 느낄 때면 떠오르는 구절 중 하나인데요. 오늘 소개할 동화책 『진짜 도둑』을 읽고 이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아이들이 알기에 너무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작가 윌리엄 스타이그만의 단도직입적인 상황·심리 묘사 덕분에 초등학교 고학년 어린이라면 충분히 고개를 끄덕이며 읽을 법합니다. 스타이그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많은 사랑을 받은 『슈렉』의 원작자이기도 한데요. 그의 작품을 읽으면 인생의 희로애락을 느끼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진짜 도둑』도 그런 책입니다.

윌리엄 스타버그의 『진짜 도둑』. 주인공 수문장 거위 가위. [사진=비룡소]

윌리엄 스타버그의 『진짜 도둑』. 주인공 수문장 거위 가위. [사진=비룡소]

주인공 가윈은 왕실 보물 창고를 지키는 수문장 거위입니다. 가윈의 정직한 성품을 믿은 배질 왕이 가윈에게만 보물 창고 열쇠를 맡겼죠. 사실 가윈의 꿈은 건축설계사였습니다. 하지만 왕에 대한 충성심에 수문장 제안을 거절하지 못합니다. 왕이 즐겁다면 자신도 행복하다고 믿었죠. 안타깝게도 신의는 배신으로 돌아옵니다. 보물 창고에 보관된 보석들이 하나둘 사라진 게 발단이었습니다. 평소 가윈을 눈엣가시로 여긴 총리는 가윈을 도둑으로 몰았습니다. 유일하게 창고 열쇠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요. 끝까지 가윈을 믿었던 배질 왕조차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넌 이 왕국의 수치야!”  
왕은 결국 가윈을 죄인으로 낙인찍습니다. 왕의 결정에 평소 믿었던 친구들도 등을 돌리고요. 왕의 요청으로 꿈까지 접어가며 성실하게 일했는데, 그 결과가 누명이라뇨. 배신감과 분노에 가득 찬 가윈은 재판을 받던 중 창문으로 도망칩니다.

여기까지 읽으면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정말 가윈이 보석을 훔친 걸까? 그렇지 않다면, 진짜 도둑은 누구일까? 감쪽같이 사라진 보물의 행방은? 아마 흔한 스토리였다면 도망친 가윈이 진짜 도둑을 찾는 여정이 펼쳐졌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스타이그는 달랐습니다. 곧바로 진짜 도둑의 정체를 밝힙니다. 생쥐 데릭. 그가 진짜 도둑이었습니다.

윌리엄 스타버그의 『진짜 도둑』. 재판 받는 가윈. [사진=비룡소]

윌리엄 스타버그의 『진짜 도둑』. 재판 받는 가윈. [사진=비룡소]

이 책은 짧지만 세 개의 플롯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플롯이 도둑 누명을 쓰고 힘들어하는 가윈의 이야기라면, 두 번째 플롯은 진짜 도둑 데릭의 이야기입니다. 플롯 구성 덕분에 한 사건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것. 이게 제가 꼽은 이 책의 첫 번째 매력입니다.

데릭의 사연은 이렇습니다. 땅굴을 파다가 우연히 보물 창고로 연결되는 틈을 발견했고, 보물이 예뻐서 자기 방으로 옮겨옵니다. 데릭은 나쁜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도둑질인지 몰랐다고 합니다. 가윈이 누명을 쓴 것을 뒤늦게 알게 됐고, 줄곧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죠.

그런데 여기서 또 한 번 이야기가 의아하게 흘러갑니다. 죄책감을 느낀다면서도 데릭은 자백하지 않거든요. 감옥에 갇히는 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대신 아무도 모르게 보물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가윈이 범인이 아니라는 걸 우회적으로 드러냅니다. 덕분에 배질 왕은 가윈을 오해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 역시 미안함에 괴로워하고요. 이 책의 두 번째 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식의 직접적인 교훈을 주기보다 해서는 안 될 일을 했을 때 겪는 두려움과 죄책감 같은 심리 변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거든요. 결과보다 과정을 통해 간접적으로 배우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다 싶은 장면입니다.

마지막 플롯은 홀로 숨어 사는 가윈과 가윈을 찾아간 데릭의 이야기입니다. 데릭의 마음은 여전히 편치 않습니다. 자신의 죄를 공개적으로 밝힐 용기도 없고요. 결국 가윈을 찾아내 잘못을 털어놓습니다. 이때 잘못을 고백하는 데릭과 가윈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흐느껴 우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누군가는 가윈이 화를 낼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가윈의 감정을 일일이 나열해 눈물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혐의가 벗겨졌다는 안도감, 지금까지 일어난 일에 대한 분노, 신의를 저버린 친구와 의지했던 왕에 대한 씁쓸함, 안락한 삶에 대한 그리움 등등…. 가윈의 눈물에는 그간 마음고생 하며 쌓인 온갖 감정이 뒤섞여 있다는 얘기죠.

“날 용서할 수 있겠나?”  
가윈은 데릭은 용서하지만, 배질 왕과 친구들은 절대 용서 못 한다고 합니다. 마음의 상처가 깊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곧바로 가윈의 마음이 열립니다. 데릭이 건넨 손길이 열쇠였습니다. 살아있는 생명체의 온기가 그동안 억눌러왔던 그리움을 자극한 겁니다. 상대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마음이 오히려 자신을 힘들게 한다는 걸 데릭을 통해 깨달은 거죠.

윌리엄 스타버그의 『진짜 도둑』. 홀로 은둔 생활하며 눈물 짓는 가윈. [사진=비룡소]

윌리엄 스타버그의 『진짜 도둑』. 홀로 은둔 생활하며 눈물 짓는 가윈. [사진=비룡소]

이 책의 결말은 해피엔딩입니다. 가윈은 왕국으로 돌아오고, 왕과 친구들은 그에게 용서를 빕니다. 가윈은 그 사과를 받아들이고요. 다만 가윈이 이들을 무조건 용서한 건 아닙니다. 가윈은 데릭에게 자백하지 말고 도둑의 정체를 수수께끼로 남겨두라고 하는데요. 왕도 신의가 없었으니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자신도 반성합니다. 그동안 왕에 충성한다는 이유로 왕이 원하는 삶을 살아온 자신을요. 그리고는 수문장이 아닌 건축설계사로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모두가 상처를 입었지만, 그 안에서 성장의 기회를 얻게 된다는 것, 이게 제가 찾은 이 책의 마지막 매력입니다.

이 책은 아이들이 혼자 읽기에는 다소 어려울 수 있습니다. 사랑하지만 섭섭하고, 밉지만 그리운 마음 같은 복잡 미묘한 양가 감정을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거든요. 양육자가 함께 읽는 걸 추천합니다. 가윈, 데릭, 배질 왕의 입장이 되어 그들이 느낀 감정의 의미를 되새겨 봤으면 합니다. 그중 아이와 함께 곰곰이 생각해 봤으면 하는 마지막 구절을 남깁니다.

“가윈은 다시 친구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이제 그들의 나약함을 알았기에 더욱 현명한 방법으로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 한 줄 평  우정과 배신, 거짓과 진실, 상처와 용서, 그리고 성장.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긴 책

· 함께 읽으면 좋을 윌리엄 스타이그의 다른 책
『치과 의사 드소토 선생님』 친절한 생쥐 치과 의사 드소토 선생님은 생쥐를 잡아먹는 여우의 이를 어떻게 치료해줄까? 위기에 맞서는 용기, 자신을 지키면서도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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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연령  『진짜 도둑』은 글밥도 많고 내용도 깊이가 있어 초등 고학년 이상에게 추천합니다. 『치과 의사 드소토 선생님』과 『당나귀 실베스터와 요술 조약돌』도 글밥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카투니스트 출신 작가의 귀여운 삽화 덕분에 그림만 봐도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으니 초등 1학년도 무난히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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