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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에 베이징대 합격…시진핑 책사, 총만큼 센 '붓대' 잡았다 [후후월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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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후월드]는 세계적 이슈가 되는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을 파헤쳐 보는 중앙일보 국제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리수레이(李書磊·58)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 상무부부장이 지난 5일 랴오닝성 선양에서 열린 6·5 중국 생태환경의 날 기념 포럼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중국 생태환경부 웨이신]

리수레이(李書磊·58)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 상무부부장이 지난 5일 랴오닝성 선양에서 열린 6·5 중국 생태환경의 날 기념 포럼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중국 생태환경부 웨이신]

[중국 20대 정치국열전② 리수레이]

지난 5일 중국 랴오닝성 선양에서 열린 6·5 중국 생태환경의 날 기념 포럼에서 눈길을 끈 인물이 있다. 중국공산당(중공)의 요직 중의 요직인 중앙선전부(이하 중선부) 상무부부장 직함으로 참석한 리수레이(李書磊·58) 중앙당교 상무부교장이다. 중앙당교는 중국 유력 정치인의 필수 코스로 알려져 있고 리수레이는 이곳에서만 26년간 잔뼈가 굵었다. 시진핑(習近平·69) 중국 국가주석의 최측근이자 숨은 책사로 알려진 그가 중선부 2인자 직함으로 공개석상에 나타난 것이다. 지난 4월 22일 전임자 왕샤오후이(王曉暉·60)가 쓰촨 당서기에 임명된 지 한 달 보름여 만이었다.

이번 인사는 의미심장하다. 올 하반기 3연임을 노리는 시진핑 진영과 이를 저지하려는 장쩌민(江澤民·96) 세력의 치열한 다툼 속에서 시진핑이 거둔 첫 승리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중공 20차 전국대표대회(전당대회·20大) 싸움의 핵심은 권력 서열 25위권인 정치국에 자기 진영 사람 심기다. 장관급인 중선부 상무부부장은 전전임과 현임인 류윈산(劉雲山·75)·황쿤밍(黃坤明·66)의 전례에서 보듯 정치국원 당연직인 중선부장으로 가는 필수코스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쩌둥의 발언을 신봉하는 중국에서 문화·예술·선전 정책을 총괄하는 붓대(筆杆子·비간쯔)는 총대(槍杆子·촹간쯔)와 대등한 힘을 갖는 핵심 요직이다. 중선부는 문화산업과 관광을 총괄하는 문화관광부, 방송을 감독하는 광전총국, 중국중앙방송(CC-TV) 사장, 국정홍보처 격인 국무원신문판공실 주임, 인터넷 검열과 정책을 책임지는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 주임 등 10명의 장관급 부부장을 거느린 메머드 조직이다.

리수레이의 전임 왕샤오후이는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발탁한 왕후닝(王滬寧·67)의 조수로 차기 중선부장 0순위로 꼽혔다. 그 같은 이가 쓰촨으로 빠져나간 자리를 시진핑의 브레인으로 통하는 리가 접수했다. 리를 가리켜 넓적다리·팔뚝과 같은 충신을 뜻하는 고굉지신(股肱之臣)으로 부르기도 한다. 지난해 말 20대 정치국을 처음으로 예약한 마싱루이(馬興瑞·63) 신장(新疆) 당 서기에 이어 두 번째로 리수레이에 주목하는 이유다.

리수레이(李書磊·58·왼쪽 두번째)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 상무부부장이 지난 5월 27일 오후 중난하이에서 열린 정치국 집단학습에 참석했다. [중국중앙방송(CC-TV) 캡처]

리수레이(李書磊·58·왼쪽 두번째)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 상무부부장이 지난 5월 27일 오후 중난하이에서 열린 정치국 집단학습에 참석했다. [중국중앙방송(CC-TV) 캡처]

14세에 명문 베이징대 합격한 ‘신동’

리수레이는 ‘신동(神童)’이다. 1964년 1월 허난(河南)의 위안양(原陽)에서 태어났다. 1978년 문혁(文革)으로 10년간 중단됐던 중국의 대입 시험 가오카오(高考)를 봤다. 열네 살로 중국 최고 명문인 베이징대 도서관학과에 합격했다. 스물한 살에 베이징대 중문학 석사, 스물네 살에 박사 학위를 땄다. 1984년 스무살 나이로 중앙당교 조교로 공직에 발을 디뎠다. 스물다섯에 중앙당교 부교수, 서른두 살에 정교수에 임용됐다.

시진핑 중앙당교 교장과의 만남은 그의 인생을 바꿨다. 2007년의 일이다. 2008년 6월 교무부 주임(교육 담당 부교장)으로 승진했다. 시진핑 교장이 지휘하는 간부 교육을 도왔다. 중앙당교 교장은 최고 권력자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장관급 육성이 예정된 젊은 간부는 중앙당교 교육이 필수다. 차기 권력자는 당교에서 이들과 사제(師弟) 관계를 맺는다. 전통시대 스승과 제자, 천거한 관리와 추천받은 관리의 끈끈한 관계를 일컫는 문생고리(門生故吏) 관계의 현대적 부활이다. 당교는 황태자와 스킨십과 로열티를 나눈는 장이다.

시진핑은 당교에서 ‘학자형 관리’ 리수레이를 얻었다. 2012년 18대에서 최고 권좌에 오른 시진핑은 리수레이의 경력 관리를 시작했다. 18대 중앙기율위 위원 당선이 시작이었다. 당 중앙위원·후보위원·중앙기율위 위원은 권력의 상층부로 올라가는 자격증이다. 2014년 리수레이는 푸젠(福建)성 선전부장에 임명된다. 2015년 말 베이징 시 상무위원 겸 기율위 서기, 19대 직전인 2017년 1월 중앙기율위 상무위원 겸 부서기에 오른다. 해외로 도주한 부패 관리를 잡는 판공실 주임도 맡았다. 2018년 신설 국가감찰위원회 부주임을 겸임한다. 2020년 12월 다시 중앙당교의 장관급인 넘버2 상무부교장에 취임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990년 지은 한시 ‘염노교-자오위루를 추모하며’가 지난해 6월 개관한 베이징 중국공산당 역사전람관에 전시되어 있다. 신경진 기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990년 지은 한시 ‘염노교-자오위루를 추모하며’가 지난해 6월 개관한 베이징 중국공산당 역사전람관에 전시되어 있다. 신경진 기자

푸젠에서 시인 시진핑을 알리다

시진핑은 제2의 마오쩌둥을 꿈꾼다. 마오는 정치가이자 시인이다. 시 주석은 시인의 이미지가 필요하다. 리수레이가 이를 알렸다.
2014년 4월 15일 푸젠성 당 기관지 복건일보 1면에 ‘간과 쓸개를 씻듯이(肝膽長如洗·간담장여세)’라는 평론을 썼다. 부제는 ‘시진핑 동지의 염노교-자오위루를 기리며(念奴嬌·追思焦裕祿)를 다시 읽다’.

“‘의연하게 밝은 달은 예전과 같다. 밤마다 그대를 생각하니 간과 쓸개를 물로 깨끗이 씻는 듯하다(依然月明如昔 思君夜夜 肝膽長如洗·의연월명여석 사군야야 간담장여세).’
간과 쓸개를 씻어내듯, 겉과 속이 모두 깨끗하다. 말은 안에서 나온다. 마치 하늘의 소리와 같다. 자오위루를 거울로 삼아 몸과 행동을 바로잡고, 자오위루를 샘물로 삼아 영혼을 정화한다. 작가는 공산당인의 진실된 정신 수련을 경험했다.”

자오위루(焦裕祿, 1922~64)는 시진핑의 1950년대 말 허난성 란카오(蘭考) 현 당 서기로 요절한 기층 지도자의 표상이다. 시 주석이 1990년 푸젠성 푸저우(福州)시 서기 시절 그의 헌신적인 태도를 배우자며 한시 ‘염노교-자오위루를 기리며’를 지었다. 100자에 맞춰 짓는 한시 ‘염노교’는 당(唐) 나라의 명창 염노를 기념해 송(宋)의 문장가 소동파(蘇東坡)가 즐겨 지은 한시 장르다. 마오쩌둥도 1935년 장정 막바지 ‘염노교·곤륜(崑崙)’을 지었다.호평이 줄을 이었다. “시진핑 총서기도 시를 짓는구나” “시진핑의 염노교 작품이 좋다. 리수레이의 평론 역시 훌륭하다. 시야를 넓혀주는 글이다.” “시 총서기를 가장 잘 이해하는 베이징대 신동”이란 꼬리표가 리수레이에게 붙었다.

리수레이의 새로운 전략…장쩌민 세력의 영향력 청산

리수레이의 약진에는 시진핑 진영의 큰 그림이 담겼다. 호주로 망명한 민주화 운동가 위안훙빙(袁紅冰·70)은 올 초 인터뷰에서 리수레이가 장쩌민 세력의 영향력을 청산하는 새로운 전략을 시진핑에게 보고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의 실패를 거울로 삼았다. 시진핑 진영은 지난해 제3차 역사결의에 성공하지 못했다. 덩샤오핑 노선과 장쩌민 노선의 동시 청산을 노렸지만 덩샤오핑 옹호 세력의 반대가 발목을 잡았다. 차기 지도부 자리싸움까지 실패하면 안 된다. 리수레이는 전략을 바꿨다. 덩샤오핑과 장쩌민의 유산을 정치적으로 구분했다. 장쩌민에 집중했다. 부패로부터 당을 구하는 ‘구세주’ 시진핑의 이미지를 만든다는 노림수다. 마오쩌둥에 비견되는 장기집권을 따라오게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학자형 관리’ 리수레이가 꿈꾸는 소프트파워 강국

리수레이는 중앙당교 시절 인기 교수였다. 강좌도 다양하게 개설했다. ‘당대 영화 뉴웨이브 리뷰’ ‘당대 유행 문화 연구’ ‘서방 문화 사조와 문화 클래식 리뷰’ ‘성경에서 프로이트까지’ 등등. ‘현대화 과정에서의 문화 이해’ ‘매스 미디어의 문화적 기능’ 과목은 강의 평가에서 만족도 94%, 97%를 받았다.

관료 능력도 인정받았다. 20대 후반이던 1991년 말부터 1993년 초까지 허베이(河北) 친황다오(秦皇島)시의 칭룽(靑龍)현 부서기로 근무했다. 공업·교통·재무·무역·농촌·기층 조직 건설 등을 맡았다. 평가가 좋았다. 2004년 2월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시 부서기로 근무했다. 이때 시 주석을 처음 만났다는 설도 전해진다.

중앙당교는 중공의 싱크탱크다. 중공은 자문 기구가 풍부하다. 핵심은 당 중앙정책연구실이다. 당 중앙의 문건과 주요 지도자의 연설문을 작성한다. 중앙당교는 사회 관리, 외교를 자문한다. 중앙당교 교수 리수레이는 시진핑 비서실(판공실)의 정치 비서를 맡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리수레이의 취미는 독서와 등산이다. 현대적인 오락과 거리가 멀다. 리수레이의 문장에는 사대부의 향기가 넘친다. 현대판 ‘어용 문인(御用文人)’인 셈이다. 그는 “중국 문화사에서 관리는 종종 문화 영웅이었다”고 적었다. 학자형 관리 리수레이는 소프트웨어 강국 중국을 꿈꾼다. 미·중 패권 경쟁 시대 새로운 중국 특색 소프트파워를 기대한다.


“중국 주류문화는 관리가 창조했다”

리수레이는 학자형 관리다. 현대판 사대부(士大夫)로 불린다. 독서광인 그는 지난 2015년 3월 ‘환독인생(宦讀人生)’글에 공직관을 담았다.

“증국번(曾國藩·1811~1872, 청 후기 태평천국의 난을 평정한 군인이자 정치가)은 평생 하루를 반으로 나눠 일과 독서를 병행했다. 격렬한 전쟁터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전범으로 삼을 만하다. 증국번의 독서는 치국과 병법에 그치지 않았다. 철학과 사랑을 읊은 시도 가리지 않았다. 증국번은 숨진 동생을 추모하며 대련(對聯)을 지었다.

‘돌아 오시게, 밤하늘 달빛이 누대의 꽃받침 그림자로 내린다.
가지 마시게, 하늘 가득한 비바람이 마치 자고새 울음 같구나
(歸去來兮 夜月樓台花萼影; 行不得也 滿天風雨鷓鴣聲
·귀거래혜 야월루대화악영; 행부득야 만천풍우자고성)’.

중국의 고전 문학과 철학을 읽을수록 중국의 주류 문화는 관리들이 창조했음을 발견하게 된다. 관직 생활은 일종의 큰 속됨(大俗·대속)이며, 독서는 일종의 커다란 우아함(大雅·대아)이다. 속된 관리 입장에서 보면 대아는 대속에 대한 구원이다. 우아한 학자 입장에서 보면 대속은 대아에 대한 일종의 성취다.

대형 호텔의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은 럭셔리하다. 존경심을 품기 어렵다. 책이 없어서다. 아무리 높은 지위의 공직자라도 책을 읽지 않는다면 천박한 관리일 뿐이다. 반대로 책을 읽고 사색하며 지혜의 뿌리를 품으면 관직의 높고 낮음과 있고 없음을 가릴 필요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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