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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윤석열 정부의 '사정'(司正)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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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논설위원

고정애 논설위원

 ‘관리자형 대통령’이란 개념이 있다. 제왕적·수사적(修辭的) 대통령과 달리 정부에 소속된 여러 기관의 역량과 한계를 훨씬 꿰뚫는 유형을 가리킨다. 『대통령은 왜 실패하는가』에서 저자는 “오늘날 대통령은 말하는 것을 일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일종의 ‘영원한 캠페인’에 빠져 있다. 대통령들이 자신이 이끌어가는 거대한 정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경우 실패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검찰 중용에 "초기 문제 도려내야" #문 정부 때 수사 안 했다는 주장도 #적정선 지켜고 진짜 실력 보여야

 이 기준에서 보면 윤석열 대통령은 수사를 통해서라곤 하나 대통령실부터 국가정보원까지 권력기관들을 들여다봤다. 이전 대통령들에 비해 이들 기관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볼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미 남다른 포석을 하고 있다. 신뢰하는 2인을 경찰의 행정안전부 장관(이상민)과 검찰의 법무부 장관(한동훈)으로 앉혔다. 국가정보원 기조실장에도 측근(조상준)을 배치했다. 최근엔 금융감독원장에도 ‘윤석열 사단의 막내’(이복현)로 꼽히는 인물을 임명했다. 대부분 엘리트 검찰 출신이다.

 연이은 '검(檢)·검·검' 발탁이 이어지던 7일 여권 인사와 이런 대화를 했다.
 -이복현 원장을 임명한 의도는 뭔가.
 “그동안 옵티머스라든지, 라임 사건이라든지 잘 안 해서…, (금감원) 내부적인 걸 잘하라는 취지로 알고 있다.”(※공교롭게 다음 날 이 원장이 기자들과 만나 라임·옵티머스 등 사건에 대해 “시스템을 통해 볼 여지가 있는지 점검하겠다”고 했다.)
 -검찰공화국이란 비판이 나온다.
 “초기니까 각종 문제 있는 걸 도려내겠다는 것 아니겠느냐. 국정에 부담이 있어서 가장 신뢰하는 사람을 쓰는 차원으로 이해해 달라.”

 ‘초기에 문제 있는 걸 도려낸다’는 말이 귀에 꽂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기말에 “역대 정권과 달리 문재인 정권에서 권력형 비리가 없지 않았느냐”고 했지만 실상은 ‘꾹 덮어뒀다’고 보는 게 맞다. 그 사이 수사하다 좌천되거나 옷 벗은 검사가 한둘이 아니다. 증권범죄합수단을 별다른 이유 없이 없앤 일도 있다. 2020년엔가 제대로 수사 안 한다 싶은 사건들을 적어본 적이 있는데 10건이 넘었다. 지금은 더 늘었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권력기관 라인업을 보면 한 방향을 가리킨다. ‘도려냄’, 바로 사정(司正)이다. 문재인 정부가 검찰에 어설프게 채워둔 족쇄가 풀리고, 덜 주목받고 있지만 이상민 장관 체제에서 경찰이 수사 역량을 키우고도 있다. 환매 중단으로 2500억원대 피해를 일으킨 디스커버리펀드자산운용 장하원(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동생) 대표가 최근 구속된 게 달라진 시대를 대변한다. 한 사정기관 인사는 “사정이란 게 억지로 하면 문제지만 문재인 정부는 지난 5년간 (권력비리) 수사를 안 했다. 아무도 (수사기관에) 적발 안 될 거라고 생각하고 마구 (잘못을) 했다. 그냥 수사하면 된다”고 했다. 억지로 안 해도 수사할 게 많다는 의미다. 일단 범죄가 드러나면 제대로 처벌받아야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는 건 맞다.

 그러나 그림자도 의식해야 한다. 사회를 위축시킬 수 있고 정치적 논란을 낳을 수도 있다.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 165석의 거야(巨野)였던 한나라당이 139석으로 쪼그라들자 이회창 당시 총재가 “들이닥친 사정의 칼”에 분개하며 장외투쟁을 시작했다. 지금껏 한국 사회에 깊은 골을 만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불행한 죽음도 있다.

 검찰을 잘 아는 지인은 이런 우려를 했다. “사정기관에 검사 파견이 늘던 추세였는데 문재인 정권에서 줄였다. 윤석열 정부는 되돌리는 것에서 더 나아가 장(長)을 시켰다. 검사가 일을 잘한다는 건 잘 때려잡는다는 것인데, 그게 국정 운영에 꼭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수사는 불가피할 것이다. 기대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가 사정의 효능감보다 피로감이 높아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윤 대통령과 일군의 사정 라인이 미묘한 선을 지켜낼 것인가. 진짜 실력을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