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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감시하는 거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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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염태정 기자 중앙일보
염태정 경제에디터

염태정 경제에디터

재택근무는 한때 실패한 제도였다. 적어도 미국 IBM에선 그랬다. IBM은 20년 넘게 시행했던 재택근무를 2017년 폐지했다. 해보니 사무실 근무가 더 효율적이라 판단했다. 2013년 당시 야후 최고경영자(CEO) 마리사 메이어는 목표의식도 없고 관료적 사고에 사로잡힌 ‘야후병’의 주원인으로 재택근무를 꼽으며 폐지하기도 했다. 물론 재택근무를 성공적으로 시행하는 기업도 있었지만 대세는 아니었다.

재택근무 활성화의 1등 공신은 단연 코로나19다. 기업들이 속속 도입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렇게 늘어나던 재택근무는 지금 논란의 중심에 섰다. 코로나19가 잦아들면서다. 폐지와 유지, 구체적 시행 방법을 둘러싼 논쟁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생산성과 삶의 질, 자율과 통제의 균형점을 두고서다.

코로나19 줄며 출근 vs 재택 갈등
카카오 메타버스근무 감시 논란도
일하는 방식에 거대한 변화 물결
삶의 질, 생산성 균형 방안 찾아야

코로나19가 잦아들면서 재택 유지와 출근, 혼합근무 방식을 둘러싼 논란이 곳곳서 벌어진다. 사진은 지난해 재택근무로 텅 빈 사무실. [연합뉴스]

코로나19가 잦아들면서 재택 유지와 출근, 혼합근무 방식을 둘러싼 논란이 곳곳서 벌어진다. 사진은 지난해 재택근무로 텅 빈 사무실. [연합뉴스]

재택근무가 탐탁지 않았던지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는 얼마 전 “원격근무는 더는 허용되지 않는다”며 임원들에게 사무실로 나와 일하라 했다. 그게 싫으면 떠나야 한다고 했다. 인공지능(AI) 분야의 세계적 개발자인 미국 애플의 이언 굿펠로는 사무실 출근 확대 정책에 반발하며 구글로 옮겨가기도 했다. 이런 종류의 반발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카카오는 7월부터 ‘메타버스 근무제’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가 하루 만에 재검토 의사를 밝혔다. 직원들의 거센 반발 때문이었다. 메타버스 근무제는 가상 공간에서 동료와 상시 협업하는 방식인데 기존 재택근무와 달리 음성 채널에 실시간 연결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 두고 ‘감시하는 거냐’ ‘5분 대기조냐’ 같은 반발이 나왔다. 집중근무 시간 확대 등을 두고도 자율성 침해 논란이 일었다.

한국에서 재택근무는 매우 예외적 형태였다. 한국정보화진흥원 조사를 보면 2019년 기준 재택근무 제도를 운용한 사업체는 9.7%에 불과했다. 지금은 100대 기업을 기준으로 73%가 하고 있다. 코로나19로 갑자기 하게 되고, 코로나19가 잦아들면서 다시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혼란이 생긴다. 업무성과에 대한 평가도 박해지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8일 발표한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에 따른 재택근무 현황’를 보면, 인사담당자에게 재택근무의 체감 업무 생산성을 물었더니 ‘정상근무 대비 90% 이상’이라고 답한 비율이 29%로 가장 많긴 했지만, 지난해 응답 비율(40.9%)보다는 크게 낮아졌다.

재택근무는 디지털 경제를 배경으로 여성의 사회진출, 저출산·고령화 등 인구 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1990년대 이후 미국과 유럽 등 서구 선진국을 중심으로 시행됐다. 코로나19 이후 일하는 방식의 새로운 표준이 되고 있다. 이른바 ‘뉴 노멀’이다. 코로나19 이전 근무 형태로 그대로 돌아가기는 이젠 어렵다. 경총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절반가량(48.5%)이 코로나19 해소 이후에도 재택근무가 활용·확산할 것이라 봤다.

재택이 새로운 근무방식이 되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준비는 부족하다.  대기업은 그나마 낫지만, 중소기업은 재택근무 시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 제대로 된 지침도 없다. 업무 효율성뿐 아니라 육체적·정신적 건강 문제도 있다. 프랑스의 경우를 보면 재택근무로 인한 수면장애와 우울증 등이 상당하다.(국제노동브리프, 2022)

유럽은 상대적으로 재택근무의 제도적 준비에서 한국보다 앞서가고 있다. 스페인은 ‘자동화 장비를 통한 업무 관리는 근로자의 사생활 및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범위 내에서 수행 가능하다’는 내용 등을 담은 ‘원격근로에 관한 긴급 입법’을 마련했다. 독일은 원격근무에 관한 기존 법률을 개정했다. (입법조사처, ‘재택근무제에 관한 해외입법·정책 사례 연구’) 한국은 재택근무나 원격근로에 대한 법률 규정이 미흡하다. 고용노동부가 발간한 200쪽 분량의 『재택근로 종합 매뉴얼』이 있을 뿐이다.

재택뿐 아니라 주4일제 등 새로운 근무 방식이 속속 도입되고 있다. 영국의 70여개 기업은 옥스포드 대학 등과 함께 대대적인 주4일제 실험에 착수했다. 다양한 업종의 근로자 3000여명이 6개월간 주4일제를 실험하며 생산성, 복지여건, 임금 유지 등을 살필 것이라 한다. ‘역사적 실험’이란 평가다. 일하는 방식과 근로 시간에 거대한 변화가 일고 있는데 우리는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어느 방식이 더 효율적인가, 어떻게 하는 게 삶의 질을 더 향상할 수 있는가. 금방 답을 찾기도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손 놓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