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한은화의 생활건축

미래건축의 끝판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한은화 기자 중앙일보 기자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미래 건축은 어떤 모습일까. 최첨단 디지털 기술로 구현한 건축을 상상했다가 뜻밖에 자연이라는 오랜 화두를 만났다. 12일까지 서울 평창동 토탈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미래 건축’에서다. 전시는 장윤규·신창훈 건축가를 주축으로 한 건축문화 플랫폼 ‘스페이스 코디네이터’가 기획했다. 5개국 10개 팀이 참여했다.

눈길을 사로잡은 작품은 남정민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OA-Lab건축연구소 대표)의 ‘식물의 귀환’이다. 건물이 자연을 입었다. 실제로 남 교수가 설계 중인 건물로, 성북구 안암동 성북천 인근에 있다. 5층 규모의 근린생활시설로 계획 중인데 층마다 용적률(대지면적 대비 연면적의 비율)에 포함되지 않는 1.2m 발코니를 만들어 최대 깊이 60㎝의 화단을 설치했다. 어지간한 키 작은 나무도 심을 수 있는 깊이다. 이렇게 수직으로 올린 자연의 면적을 다 합하니 대지면적(131.9㎡)의 56%가량 된다. 성북천을 따라 이런 건물이 쭉 들어선다면 도시 밀도를 높이면서도 그나마 자연과 공존할 수 있을 터다.

테라스 정원을 두른 건물 투시도. [사진 남정민 OA-Lab건축연구소 대표]

테라스 정원을 두른 건물 투시도. [사진 남정민 OA-Lab건축연구소 대표]

사실 도시 녹지공간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심해지고 있다. 잘 사는 동네일수록 녹지가 많고, 못 사는 동네일수록 녹지가 부족하다. 일례로 건물을 신축할 때 대지면적이 200㎡ 미만일 경우 법적으로 조경의 의무가 없다. 따라서 작은 필지가 많은 강북의 동네일수록 마당 있는 단층집을 허문 자리에 용적률만 꽉 채운 빌라가 우후죽순 들어선다. 필지가 큰 강남과 비교하면 강북은 개발할수록 녹지 공간이 더 없어진다.

아파트 단지 안과 밖의 격차도 심해지고 있다. 단지 안은 녹지공간이 잘 조성되어 있지만, 외부인 출입이 다소 어렵다. 반면 아파트 밖 녹지 공간은 이러저러한 개발로 점점 줄어든다. 자연이 사라진 도시의 기온은 올라가고,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많아진다. 남 교수는 “미국의 도시 데이터를 살펴보니 질병 많고 가난한 동네와 GIS(지리정보시스템) 상의 녹지 없는 동네가 겹쳐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부자 동네일수록 녹지가 많고 온도도 2~3도가량 낮다고 한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도시의 자연을 살리는 건축을 고민해야 한다. 틈새 공간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남 교수는 민법의 반 미터 규정을 활용해보자고 제안한다. 건물을 신축할 때 옆집과의 대지 경계선에서 반 미터씩 떨어져서 집을 지어야 한다. 일종의 분쟁지역으로 비워두는 공간인데 다 합치면 면적이 꽤 된다. 양쪽 집에서 반 미터씩 떼면 집과 집 사이에 1m의 빈 곳이 발생한다. 결국 잡동사니나 쓰레기만 쌓이게 된다. 이 방치된 공간을 녹지로 바꿀 경우 다양한 혜택을 주면 어떨까. 물론 공공에서 제대로 된 도시의 숲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녹지는 도시민의 건강과 직결된 만큼 복지 차원에서 관리해 나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