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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역대 경제 사령탑의 쓴소리 새겨들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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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9일 전경련회관 콘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역대 기재부 장관 초청 특별대담'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권태신 전경련 부회장,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 강만수 전 기재부 장관,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 박재완 전 장관. [사진 전경련]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9일 전경련회관 콘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역대 기재부 장관 초청 특별대담'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권태신 전경련 부회장,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 강만수 전 기재부 장관,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 박재완 전 장관. [사진 전경련]

“총체적 복합위기” “포퓰리즘 가장 경계를”

재정의 지속가능성 확보 약속 꼭 지켜야

‘한국 경제는 총체적 위기 국면이다. 포퓰리즘을 가장 경계해야 하며, 취약해진 재정건전성을 회복해야 한다.’ 어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최한 행사에서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 역대 경제부총리와 기획재정부 장관의 고언이다. 경제정책의 사령탑이자 나라의 곳간지기 역할을 했던 이들의 고민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윤증현 전 장관은 현재 경제 상황을 저성장, 고실업, 양극화, 사회갈등 모두 심각해진 ‘총체적 복합위기’로 진단했다. 그는 “금리·환율·물가의 3고(高) 현상, 재정·무역 분야의 쌍둥이적자, 가계부채 증가, 부동산가격 폭등이 위기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우려했다.

강만수 전 장관은 엔화 환율 흐름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과거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모두 엔화 환율이 1000원 아래로 떨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100엔당 원화 환율은 요즘 940원 선까지 떨어졌다. 해외에서 일본 기업과 경쟁하는 한국 기업의 가격경쟁력이 그만큼 떨어졌다는 의미다. 원화가치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는 금리 인상에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주문도 같은 맥락이다. 강 전 장관은 “법인세 수준이 투자지역 결정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에 경쟁국과 형평을 맞춰야 한다”며 법인세 인하론을 폈다.

유일호 전 부총리는 포퓰리즘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퍼주기’ 지출을 폐지해 재정 여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새 정부에 주문했다. 박재완 전 장관은 재정개혁을 강조했다. 그는 “복지지출 등 의무지출 비중이 꾸준히 상승해 과감한 구조개혁 없이는 부채를 통제하기 어렵다”며 “2025년으로 미뤄둔 재정준칙을 앞당겨 시행할 것”을 권고했다. 선출직 정치인 등이 재정준칙을 우회할 수 없도록 금융통화위원회에 버금가는 수준의 독립성을 갖춘 국가재정위원회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오석 전 부총리는 경제개혁의 성공 조건으로 ▶정책의 일관성 유지 ▶말 없는 다수의 장기적 편익 우선시 ▶경제팀의 역할 분담과 명확한 책임소재 규정 등을 조언했다.

현직인 추경호 경제부총리의 축사도 의미심장했다. 그는 “빚을 내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은 정책이 아니다”며 재정건전성 기조를 지키지 못한 지난 정부를 꼬집었다. “국제 신용평가사들도 그동안 우리 경제의 강점으로 평가했던 재정건전성에 대해 경계감을 갖고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발언까지 나왔다. 어려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재정이 국가 운영의 근간이자 최후 보루라는 곳간지기의 기본을 되살린 건 잘한 일이다. 지난 정권의 실책과 부실을 한꺼번에 털어내는 ‘빅배스(Big Bath)’에 그치지 말고 포퓰리즘적 재정만능주의에서 벗어나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겠다는 약속을 추 부총리가 꼭 지켰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