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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앨범 사려고 오픈런 해놓고…곧장 쓰레기통 버린다,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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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K팝 팬이 아이돌 몬스타엑스의 앨범을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판매하고 있다. [사진 당근마켓 캡처]

한 K팝 팬이 아이돌 몬스타엑스의 앨범을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판매하고 있다. [사진 당근마켓 캡처]

“요즘 CD를 누가 산다고?” 기성세대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K팝 가수들의 앨범 판매량은 매년 신기록을 세울 정도로 늘어나고 있다. 방탄소년단(BTS), 세븐틴 등은 앨범 발매 첫날에만 100만장을 판매하고, 초동(발매 후 일주일 집계)은 200만장을 가뿐히 넘길 정도다.

지금도 인기 아이돌이 컴백하는 날이면 새벽부터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 긴 줄이 늘어서며 ‘오픈런’(매장 오픈과 동시에 달려가기)이 벌어진다. 스트리밍과 디지털 기기로 음악을 즐기는 시대에 팬들이 굳이 CD를 사려는 이유는 뭘까.

이들이 원하는 건 CD가 아니다. 패키지 속 팬 사인회 응모권과 포토 카드를 얻는 게 목적이다. 사인회 당첨 또는 원하는 멤버의 사진을 얻기 위해 최소 수십에서 최대 수백장의 앨범을 사기도 한다. 이를 두고 ‘앨범깡’ 또는 ‘탑꾸(사진첩 꾸미기)’라는 신조어도 나왔다. 각종 국내외 차트에 실물 앨범 판매량이 반영되기 때문에 좋아하는 아이돌을 ‘응원’하기 위한 구매 행위도 빈번하다. 결국 CD와 포장지는 그 자리에서 버리고 갈 정도로 처치 곤란이 된다. 한 팬(26)은 “(중고거래 플랫폼)당근 마켓에 내놓아도 파는 이들이 워낙에 많아서 거래가 잘 안 된다”고 말했다.

CD 자연 분해에 100년 걸려  

사인회 당첨 또는 포토 카드 수집을 위해 앨범을 무더기로 구매하는 '앨범깡' 소비가 유행하고 있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사인회 당첨 또는 포토 카드 수집을 위해 앨범을 무더기로 구매하는 '앨범깡' 소비가 유행하고 있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문제는 늘어나는 음반 판매량만큼 버려지는 물량도 많다는 점이다. 실물 앨범의 화려한 패키지는 재활용 시 신경 써야 할 점이 많다. 포장 박스와 염색 용지는 골판지류, 책자나 인쇄용지는 책자류로 분리해야 한다. CD 제작에 사용되는 폴리카보네이트 플라스틱은 자연 분해되는데 100년 이상이 걸린다. 결국 태워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상당한 수준의 유독가스가 발생한다.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 K팝 팬들이 결성한 단체인 ‘K팝포플래닛’(지구를 위한 K팝)에 따르면, 지난해 1~5월 동안 많이 팔린 K팝 앨범은 400여종, 총 판매량은 2600만장이다. 무려 488t이 넘는 폴리카보네이트 플라스틱이 사용됐다. 이 단체가 한 달 동안 수거한 폐앨범만 8000장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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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앨범 발매 관행은 이중적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K팝 아티스트는 환경 단체를 홍보하거나 지속가능한 소재의 옷을 입는 등 친환경적 행보를 보이는 경우가 늘고 있다. 걸그룹 블랙핑크는 지난해부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홍보대사로 활동 중이다. 지난해 미국 뉴욕에서 열린 UN 총회에서 BTS는 코오롱 FnC의 업사이클링(재활용에 가치를 더한 제품) 브랜드 래코드의 옷을 입어 화제가 됐다. 아티스트 영향을 받아 BTS 팬클럽 아미는 멤버의 생일마다 환경이나 동물 보호 단체에 기부를 한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얄팍한 상술로 포장된 실물 앨범 판매는 계속되고 있다.

포토 카드만 포함된 플랫폼 앨범 등장  

팬들 사이에서는 앨범에 포함된 포토 카드를 따로 모아 꾸미는 '탑꾸'가 유행이다. 인스타그랩에서 탑꾸를 검색하면 4만여건의 게시물이 나온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팬들 사이에서는 앨범에 포함된 포토 카드를 따로 모아 꾸미는 '탑꾸'가 유행이다. 인스타그랩에서 탑꾸를 검색하면 4만여건의 게시물이 나온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K팝 산업 내에서도 환경을 생각하는 움직임이 있긴 하다. SM은 지난 3월 발매된 NCT 드림의 두 번째 정규앨범 ‘글리치 모드’에서 처음 친환경 소재를 도입했다. 지난달 30일 나온 NCT 드림의 정규 2집 리패키지 ‘비트박스’에서는 더 적극적인 실험에 나섰다. 국제산림관리협의회(FSC) 인증을 받은 용지, 쉽게 자연분해 되는 콩기름 잉크, 휘발성 유기 화합물 배출이 없는 환경친화적인 자외선(UV) 코팅을 사용했다.

YG는 친환경 소재로 앨범과 굿즈를 제작했다. 지난해 12월 발매된 위너 송민호의 솔로 정규 3집 ‘투 인피니티’ 의 인쇄물은 FSC 인증을 받은 용지와 저염소 표백펄프로 만든 저탄소 용지 및 수성 코팅으로 제작됐다. 포장 비닐 역시 옥수수 전분에서 추출한 원료로 만든 친환경 수지가 적용됐다. 블랙핑크 역시 지난해 데뷔 일을 기념해 열가소성 폴리우레탄(TPU) 소재로 만든 소파 등 친환경 소재 굿즈를 제작했다.

IST엔터테인먼트는 새로운 형태의 음반을 선보였다. 지난달 31일 발매된 빅톤의 미니 7집 ‘카오스’에는 실물 CD 대신, 실물 포토 카드만 들어 있는 플랫폼 앨범이 포함됐다. 이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들을 수 있는 앨범이다. 팬들의 소장 욕구가 큰 포토 카드는 실물로 유지하되, 실물 CD는 생략해 플라스틱 소재 사용을 최소화했다. 빅톤은 지난 2월 발매한 세 번째 싱글 ‘크로노그래프’부터 이러한 플랫폼 앨범 형태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K팝포플래닛의 이다연 활동가는 “최근 K팝 팬들 사이에서도 앨범을 무더기로 구입하는 관행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며 “엔터사는 디지털 앨범 다운로드나 재활용 재질로 제작된 앨범 같은 ‘그린 옵션(친환경 선택지)’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K팝의 주요 소비자는 팬이고, 팬이 없으면 K팝 산업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엔터사는 앨범 문제 개선을 바라는 팬의 요구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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