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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전을 기회로…미·러 양보 끌어내려는 터키, 또다른 타깃

중앙일보

입력

식량 위기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전쟁발 세계적 위기를 기회로 삼고 있는 두 지도자가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과 벨라루스의 알렉산더 루카센코 대통령이다. 두 정상 모두 자국의 이득을 위해 이 위기를 이용하는 모양새이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는 서방은 고민하는 모습이다. 

우크라전 틈타 '시리아 공격' 터키..."내정 혼란도 무마"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터키와 러시아 국방부는 7일(현지시간) 양국 국방장관이 흑해를 이용한 우크라이나 곡물 수송 방안에 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흑해를 통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길은 막힌 상태다. 러시아·우크라이나와 흑해 해상 국경을 접하고 있는 터키는 식량 수출 문제를 포함해 중재를 자처하고 있다. 

동시에 훌루시 아카르 터키 국방장관은 이날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에게 '시리아 북부 지역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대응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시리아 내전에서 러시아는 정부군을, 터키는 반군을 지원한 바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둘러싼 세계적 위기를 자국의 목표에 대한 서방과 러시아의 양보를 이끌어내는 순간이자, 내정 혼란을 무마하는 기회로 이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에르도안은 내부 정치적으로 2016년 자신의 축출을 노린 쿠데타 시도 이후 가장 큰 위기를 겪고 있다는 평가다. 터키의 최근 물가 상승률은 약 70%로, 주요 20개국(G20) 중 가장 높다. 이로 인해 수백만 명의 터키 국민이 빈곤 위기에 직면해 에르도안은 내년 6월 선거에서 재선이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에르도안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있는 지도자로 부상했다. 터키는 우크라이나에 무장 드론을 지원하는 한편 러시아 군함의 흑해 진입을 막았으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평화협상을 중재했다. 그러나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엔 동참하지 않아 '줄타기 외교'란 분석이 나왔다. 

우크라이나·러시아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터키와 벨라루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세계적 위기를 기회로 삼는 모양새다. 구글 지도 캡처

우크라이나·러시아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터키와 벨라루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세계적 위기를 기회로 삼는 모양새다. 구글 지도 캡처

"친구·적 모두로부터 양보 얻어내려는 에르도안"  

에르도안은 최근 스웨덴·핀란드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결정하는 '키맨'으로도 떠올랐다. 터키는 스웨덴·핀란드가 자국이 테러 단체로 간주한 쿠르드 민병대(YPG)를 지원한다고 주장하며 두 나라의 나토 가입을 반대하고 있다.  

에르도안은 이를 계기로 미국 주도의 이슬람국가(IS) 소탕 작전에 참여한 쿠르드 민병대를 서방이 지원하는 데 대한 해묵은 불만을 다시 꺼내고 있다. 최근엔 미국의 반대에도 시리아에서 쿠르드 민병대를 겨냥한 군사 작전을 재개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존재감을 키운 터키가 시리아에서 영향력 확장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WSJ은 전문가들의 견해를 인용해 "에르도안은 지난 수십 년간 위기를 기회로 바꿔온 자신의 정치 방식을 반복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의 방식은 친구와 적 모두로부터 양보를 얻어내는 것이 핵심으로, 국제 문제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국내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활용한다고 매체는 전했다.

분석가들은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에르도안은 스웨덴· 핀란드의 나토 가입도 정치적 이득을 얻어내는 대신 결국 용인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3월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논의를 위해 벨기에에 모인 나토 회원국의 정상들. 왼쪽부터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EPA=연합뉴스

지난 3월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논의를 위해 벨기에에 모인 나토 회원국의 정상들. 왼쪽부터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EPA=연합뉴스

루카센코 "곡물 수송 도울테니 제재 풀어 달라"   

WSJ은 7일 우크라이나 전쟁발 세계 식량 위기에 대한 '벨라루스 해법'을 놓고 미 행정부 내 의견이 나뉘고 있다고 보도했다.  

루카센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지난 3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에게 "벨라루스가 철도 등을 개방해 우크라이나산 곡물을 발트해 연안의 항구로 운송할 수 있게 도울 수 있다"고 밝혔다.  

벨라루스의 알렉산더 루카센코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벨라루스의 알렉산더 루카센코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대신 루카센코 대통령은 벨라루스도 독일·폴란드, 발트해 등의 항구를 자국 제품 수출에 이용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조건을 제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역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문제에 대한 가장 좋은 해결책은 벨라루스에 대한 (서방의) 제재를 풀고 벨라루스를 통과하는 것"이라며 역성을 들고 나섰다.

세계 주요 칼륨 비료 생산국인 벨라루스는 루카센코 정권의 가혹한 반대파 탄압으로 인한 서방의 제재로 발트해 항구를 이용하지 못해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WSJ에 따르면 미 행정부 관리들은 벨라루스의 이런 제안을 받아들여 벨라루스의 칼륨 비료 산업에 대한 제재를 6개월 면제하는 방안을 두고 고심 중이다. 

고심에 빠진 美정부...우크라 난색  

백악관 내에서 찬성하는 쪽은 이를 유일한 대안 중 하나라고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 곡물을 기차에 실어 벨라루스를 관통해 리투아니아의 항구로 이동할 경우 폴란드를 경유했을 때 생기는 상당한 시간 지연을 피할 수 있다는 평가다.  

반면 반대하는 쪽은 루카센코가 푸틴과 긴밀한 사이이며 러시아가 벨라루스를 우크라이나 침공의 집결지로 사용할 수 있게 허용한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미 국무부의 한 고위 관리는 "미국이 벨라루스에 대한 제재를 완화할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 5월 만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루카센코 벨라루스 대통령. EPA=연합뉴스

지난 5월 만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루카센코 벨라루스 대통령. EPA=연합뉴스

우크라이나는 식량 수출 문제에 대한 벨라루스와 터키의 개입에 난색을 표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에게 "키이우는 서방이 루카센코 대통령에게 양보(제재 완화)하는 걸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또 우크라이나 외무부는 성명을 통해 "우크라이나 항구의 봉쇄를 해제하려는 터키의 노력에 감사하다"면서도 "우크라이나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은 어떤 합의도 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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