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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시설 안에서? 밖으로? 부모회-전장연 엇갈린 목소리

중앙일보

입력

8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서울 중구 일대에서 나흘째 도로점거 시위를 벌였다. ‘서울시 장애인 탈시설 지원조례’의 통과를 촉구하면서다. 장애인이 집단 거주시설에서 벗어나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취지의 조례다.

반면 지난달 28일엔 상반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이 서울시청 광장 앞에 모여 탈시설 문제점을 지적하는 집회를 열었다. ‘장애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 탈시설 적용은 폭력’이란 취지의 주장을 했다. “탈시설을 바라보는 엇갈린 시선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대표를 비롯한 회원들이 7일 오전 서울 중구 숭례문오거리 인근에서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촉구하는 집회 행진을 하고있다. [뉴시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대표를 비롯한 회원들이 7일 오전 서울 중구 숭례문오거리 인근에서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촉구하는 집회 행진을 하고있다. [뉴시스]

전국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부모회)가 거주시설 증설 등 정부의 대책마련을 촉구하면서 탈시설 논란이 재점화되는 모양새다. 올 들어 부모가 발달장애인 자녀를 살해하고, 본인은 극단 선택을 시도한 사건이 지난 3~5월에만 3건 발생했다.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은 "독박돌봄"에 대한 부담을 호소하지만, 발달장애인을 24시간 돌볼 수 있는 장애인 거주시설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지난달 28일 ‘탈시설 반대’ 집회에 참여한 발달장애인 부모 박모(66)씨는 “발달장애인인 아이를 24시간 돌볼 여력이 안 돼 전국 20곳 시설을 돌아다녔지만 대기자마저 다 차 보낼 수 없었다”며 “한 때 아이를 정신병원에 보낸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시위 주최 측은 오세훈 서울시장 측에 ‘(서울시의회의) 탈시설 조례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해달라’는 정책 요구서를 제출했다.

서울시 탈시설 조례안은 지난달 27일 서울시의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상정된 상태다. 오는 13일 상임위 논의를 앞두고 있지만 탈시설을 둘러싼 주요 쟁점이 부딪히는 모양새다.

지난 28일 오전 서울시청 광장에서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가 '탈시설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이수민 기자

지난 28일 오전 서울시청 광장에서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가 '탈시설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이수민 기자

쟁점①선택할 권리

탈시설은 생활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생활 지원 서비스를 받으며 자율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과거 석암베데스다 등 장애인 요양 시설에서 장애인을 학대, 사망에 이르게 하는 사건이 발생하며 자립생활 지원이 화두로 떠올랐다. 2006년 UN 총회에서 192개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채택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UN CRPD)도 탈시설이 국내에서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는 데 힘을 실었다.

CRPD 19조에 따르면 협약 당사국의 ‘모든 장애인은 다른 사람과 동등한 선택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 하지만 문제는 장애인 중 일부가 스스로 자립여부를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는 점이다. 의사소통조차 불가능한 발달장애인들에게 선택을 강요한다는 건 또다른 인권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탈시설 반대 측의 주장이다.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장애인권리보장 및 탈시설 지원 관련 법률안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김상선 기자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장애인권리보장 및 탈시설 지원 관련 법률안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김상선 기자

부모회의 김현아 대표는 지난 4월 탈시설 법률안 공청회에서 “탈시설을 일률적으로 적용할 게 아니라 각 개인의 상황에 맞는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거주시설 입소 장애인 중 발달장애인 비율이 80.1%에 이르는 상황에서 장애 정도에 따라 요양시설·그룹홈·공동 생활가정 등 다른 형태의 주거 형태를 지원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김신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중복장애특별위원장은 “중증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격리돼 살아갈 필요는 없다”며 “무조건 어렵다고만 할 게 아니라 이제는 장애인 한 사람 한 사람 어떤 것이 필요할까 하는 식의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쟁점② 한정된 예산 놓고 갈등

‘선택권’에 대한 상반된 해석은 ‘예산 분배’ 갈등으로 이어진다. 정부는 현재 장애인 탈시설 사업보단 거주시설 지원에 예산을 우선 편성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거주시설 지원에 책정된 예산 6624억 원 중 탈시설과 관련된 예산은 22억 원 수준이다.

김기룡(오른쪽) 중부대 특수교육과 교수가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장애인권리보장 및 탈시설 지원 관련 법률안 공청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김기룡(오른쪽) 중부대 특수교육과 교수가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장애인권리보장 및 탈시설 지원 관련 법률안 공청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이에 대해 김기룡 중부대(특수교육과) 교수는 “(탈 시설을 위한) 24시간 돌봄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라며 “그러다 보니 시설을 옹호하는 분들이 생기고 정부는 그 핑계로 ‘못한다’고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월 전장연은 기재부에 내년도 탈시설 지원 대상 1000명에 대한 예산으로 788억 원을 요구한 상태다.

탈시설 반대 측은 “현행 거주시설 예산으로는 충분한 시설 확보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반박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총 1539개의 전국 장애인시설에 거주하는 2만9000여명 대부분이 중증장애인이다. 하지만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서울 중증발달장애인 5명 중 2명은 서비스 부족 등으로 장애인 복지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수요에 비해 맞춤형 지원 시설과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독박돌봄에 지친 부모들은 “거주시설 입소는 ‘바늘구멍’과 같다”고 입을 모은다.

쟁점③ 해외 탈시설 정책 

양측이 각자 참고하는 해외 선진국의 정책적 롤모델도 정반대다. 탈시설 찬성 측은 스웨덴, 미국과 같은 ‘자립생활 지향 정책’을 근거로 든다. 스웨덴은 1997년 시설폐지법을 제정하고 50년에 걸쳐 모든 시설을 폐지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 미국 역시 ‘지역사회와 분리된 불평등한 환경에서는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없다’고 판단한 ‘펜허스트판결(1978년)’을 시작으로 지역사회 기반 서비스에 초점을 두고 있다.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소규모 성인 지적장애인 거주시설. 자원봉사자를 포함해 10명 이상의 직원이 총 26명의 장애인을 돌본다. [사진 둘다섯해누리]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소규모 성인 지적장애인 거주시설. 자원봉사자를 포함해 10명 이상의 직원이 총 26명의 장애인을 돌본다. [사진 둘다섯해누리]

반면, 탈시설 반대 측은 탈시설이 정착된 유럽 국가 중에서도 ‘30인 이상 거주시설’을 유지하는 국가를 근거로 든다. 해외 선진 거주시설을 방문·연구해온 둘다섯해누리에 따르면 독일의 경우 ‘탈시설’ 대신 ‘지역 분산화’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모든 사람이 시설 밖으로 나가는 것보단 주거형태의 다양화를 목표로 한다는 취지에서다. 둘다섯해누리의 이기수 신부는 “외국의 경우 시설에 의료진을 필수로 둬 장애인이 지역사회로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객관적인 의료적 판단을 내린다”며 “시설을 무조건 없앨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선진화할 수 있는지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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