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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현기의 시시각각

신임 주일대사가 해야 할 일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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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현기 기자 중앙일보 도쿄 총국장 兼 순회특파원

친한파보다 '반한파' 많이 만나고
서로 다름 넘어 서로 모순 인정해야
SNS외교로 일 국민을 우리 편으로

김현기 순회특파원 겸 도쿄총국장

김현기 순회특파원 겸 도쿄총국장

7일 신임 주일본대사에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이 지명됐다. 지난해 1월 부임한 강창일 주일대사는 조만간 한국으로 귀임한다. 강 대사는 약 1년 반 재임 기간 중 총리, 외상을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이유는 뭘까. '죽창가'로 대표되는 문재인 정부의 반일 노선과 영토분쟁 지역인 북방 영토(쿠릴 열도)를 방문했던 강 대사에 대한 개인적 불만이 깔려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일 정부의 이런 대응은 유치했다. 이웃 국가가 보낸 특명전권대사에게 취할 자세가 아니었다. 우리는 주한 일본대사에게 그렇게 대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 출범을 계기로 일본 내 기대감은 커졌다. 윤 신임대사에 대한 평도 좋다. 하지만 이런 기대감은 역으로 그에게 큰 짐이다. 강제징용자 배상문제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한 일 정부의 강경 입장은 단 하나도 바뀐 게 없기 때문이다. 아니 역사문제를 두곤 오히려 한·일의 공수가 뒤바뀌었다. 자민당 의원들은 공공연히 '한국과의 역사전(歷史戰)'이란 표현을 쓴다. 이런 상황에서 윤 신임대사가 염두에 뒀으면 하는 몇 가지를 제언해 본다.

지난 4월 26일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후미오 일 총리를 만난 한국 측 정책협의대표단.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윤덕민 신임 주일대사 지명자.

지난 4월 26일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후미오 일 총리를 만난 한국 측 정책협의대표단.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윤덕민 신임 주일대사 지명자.

#1 집토끼보다 산토끼 잡기 

일본 내에는 이른바 '친한파'들이 있다. 한국 관련 행사 때마다 거의 고정으로 초대하는 정치인, 시민단체다. 고마운 존재다. 하지만 반작용도 있다. 이런 식이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는 대표적인 지한파 정치인이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도 참석했다. 일본의 역사반성을 촉구하며 각종 현안에 '일본 무한책임론'을 주장한다. 우리 입맛에는 딱이다. 한국 언론들도 '일본의 양심세력'이라 치켜세운다. 문제는 그 부메랑이다. 일본 주류 정치권에서 하토야마는 아웃사이더다. 하토야마가 등장할수록 일본 내 반한 분위기는 커진다. 꺼내기 힘든, 고통스러운 이야기지만 현실이다. 결국은 강약조절이다. 그래서 윤 신임대사는 '편한 집토끼'보다 '힘든 산토끼'를 더 많이 만나야 한다. 그들을 설득하고 또 그들 주장을 경청해줘야 한다. 그게 지금 해야 할 일이다.

#2 모순을 인정하자 

한일 간 현안은 모순 투성이다. 한국 사법부가 판결한 징용자 배상 문제를 양국 행정부가 해결해야 한다. "사법부 판결을 존중한다"면서 "(사법부 권한인) 현금화는 바라지 않는다"고 우리 입으로 말한다. 다 모순이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국가안보상 이유' 때문에 한국에 수출규제를 가해놓곤 "한미일 안보협력이 절실하다"고 한다. 하지만 서로의 모순만 부각시키면 아무것도 해결이 안 된다. 비행기가 그랬다. 공기저항을 줄이려면 바퀴가 있으면 안 됐다. 하지만 착륙하려면 반드시 필요했다. 이 모순은 비행 중에는 동체로 접혀 들어가고, 착륙할 때만 바퀴를 꺼내는 '접이식 바퀴'로 말끔히 해결됐다. 이 모순의 덫을 해결하는 데 20년이 걸렸다. 한·일 관계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의 모순을 배제하는 게 아니라 나의 모순과 결합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창의적 발상이 절실하다.

람 이매뉴얼 주일미국대사의 개인 트위터.야구 관전을 한 모습을 트위터에 올렸다. [이매뉴얼 대사 트위터 캡처]

람 이매뉴얼 주일미국대사의 개인 트위터.야구 관전을 한 모습을 트위터에 올렸다. [이매뉴얼 대사 트위터 캡처]

#3 일본 국민을 우리 편으로

그동안 주일한국대사가 일본에서 뭘 하는지 일 국민들은 알 도리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대사관도 신경을 안 썼다. 그저 주일 한국특파원들에게 부탁해 한국 언론에 나가게 하는 데 몰두했다. 일본에서 한국을 바라봤다. 올 1월 주일미국대사로 부임한 람 이매뉴얼 대사의 경우를 보자. 부임 직후 그가 쓰는 트위터는 일본 외교가 보다 오히려 보통 일본 국민들에게 큰 화제다. 팔로어가 10만 명에 육박한다. 거의 매일 갱신한다. 가벼운 주제다. 하지만 뉴스가 된다. 이런 식이다. "처음으로 요코하마 방문. 언제나 정확한 기차시간! 역시!" "폭신폭신한 한큐(阪急·긴키 지방 민간 전철회사) 좌석이 너무나 맘에 들었다. 한큐 베리머치!" "오늘 밤은 한신 타이거스 시합 관전. 오사카 야구팬 최고!"
근엄한 학자 출신인 윤덕민 대사라고 이런 감성외교를 못할 법도 없다.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