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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가 동쪽으로 간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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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혜란 기자 중앙일보 국제부장
강혜란 국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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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해 유럽 주요국(영국·프랑스·독일)과 당사국인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주한 대사들을 차례로 인터뷰했다. 가장 껄끄러웠던 건 역시 러시아였다. 안드레이 쿨릭 대사는 “역사적 과정을 이해하지 않으면 현재 상황을 제대로 알 수 없다”면서 이번 침공의 명분을 ‘훈계조로’ 설명했다. 흥미로웠던 건 그가 이번 ‘특수군사작전’(러시아식 표현)을 우크라이나의 탈나치화와 함께 더 큰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서”라고 한 점이다. 미국이 이라크 침공 때 사용했던 ‘예방 전쟁’이란 명분을 그대로 되치기하는 듯한 발언이었다.

벨기에 브뤼셀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본부에 휘날리는 30개 회원국 깃발들. [로이터=연합뉴스]

벨기에 브뤼셀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본부에 휘날리는 30개 회원국 깃발들. [로이터=연합뉴스]

쿨릭 대사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동진에 대한 불만도 털어놓았다. “냉전이 끝났는데 왜 해체는커녕 계속 동유럽 국가를 받아들였느냐”다. 실제로 나토 동진의 문제점에 대해선 미어샤이머를 비롯한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들이 수차례 지적한 바 있다. 미국 안에서 이를 대표적 외교적 실수로 꼽는 이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나토가 점진적 팽창을 해온 것만은 아니다. 1949년 나토 창립 멤버였던 프랑스는 1966년 드골 정권 때 미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독자 외교노선을 추구한다는 명분으로 탈퇴했다. 복귀는 43년 만인 2009년이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EU 가입도 반대하지만,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가 보여주듯 EU도 언제나 일심동체였던 건 아니다.

동맹이나 연합은 생명체처럼 수시로 변하고 주권국가는 그 틈에서 독자생존을 모색할 권리가 있다. 돌이켜보면 바르샤바조약기구가 해체됐을 때 나토의 문을 열어달라고 한 쪽은 동유럽 국가들이었다. 당시 그들이 무엇을 두려워했는지는 지금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 안다. 그런 점에서 러시아가 벌인 ‘예방 전쟁’의 아이러니는 중립국이었던 핀란드·스웨덴을 나토 쪽으로 밀어냈단 점이다. 무엇을 예방하려 했든지 간에 나토의 동진은 주변 국가에 대한 러시아 영향력의 후퇴를 수반한다.

더 큰 아이러니는 나토가 이제 동진을 넘어 러시아·중국의 동쪽까지 엿본다는 점이다. 오는 29일 스페인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엔 한국을 포함해 일본·호주·뉴질랜드 등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도 초청됐다. 앞서 나토 측은 2010년 이후 처음으로 ‘전략개념’ 재정비를 예고하면서 러시아 외에 중국까지 겨냥하겠단 뜻을 분명히 했다. 러시아·중국이라는 권위주의 체제 국가들을 미국·유럽 중심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인도·태평양의 파트너와 함께 ‘거대한 포위망’으로 둘러싸는 모양새다.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 및 일본 순방 때 가장 강조된 게 ‘경제 안보’였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지정학과 지경학이 숨 가쁘게 교차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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