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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능력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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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주영 기자 중앙일보 기자
장주영 사회에디터

장주영 사회에디터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공정하다는 착각』(2021)에서 능력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능력주의가 시장경제에서 효율성이라는 긍정적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성공은 모두 능력과 우수성 때문이며 실패는 부족함과 태만 탓이라는 생각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음에도, 성공하면 ‘잘나서’고 실패하면 ‘못나서’라는 믿음을 진리로 여긴다는 비판이다.

가령 비싼 돈 내고 과외를 받거나 유학 컨설팅을 받은 학생은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괜찮은 직업을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모두 이럴 수는 없다. 부모가 능력이 있어야 한다. 샌델 교수와 더불어 대표적인 능력주의 비판론자인 대니얼 마코비츠 예일대 교수는 『엘리트 세습』(2020)에서 현대 사회에서 능력은 아이의 재능과 노력의 결과라기보다 부모의 능력에 의존해 만들어진다고 비판했다.

능력주의 비판론자의 이야기를 능력주의 무용론으로 떠받들 필요는 없지만, 능력주의 맹신에 대한 경고로는 새겨들을 만하다. 그런 측면에서 ‘철저한 능력주의’만 강조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인사 원칙은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 실제로 내각과 차관급 초기 인사에서 ‘서오남(서울대, 50대 이상 남성)’에 편중됐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내세운 능력주의가 실상은 선민주의 혹은 엘리트주의라는 것이다.

최근엔 검찰 출신이 주요 보직을 줄줄이 꿰차면서 비판이 더 커졌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시작으로 국정원 기조실장, 국무총리 비서실장, 법제처장, 대통령실 공직기강·법률·총무·인사비서관까지 모두 검찰 출신이다. 7일에는 이복현 전 서울북부지방검찰청 부장검사를 금융감독원장으로 임명했다. 금감원 설립(1999년) 이래 첫 검찰 출신 원장이다. 검찰 출신 편중 인사 지적에 윤 대통령은 “우리 인사 원칙은 적재적소에 유능한 인물을 쓰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을 쓸 때, 주변부터 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문제는 검찰 밖 다양한 분야의 유능한 인사, 정부 내 견제와 균형을 위한 인사, 사회통합을 고려한 상징적 인사 등 다양한 인재를 찾으려는 노력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능력뿐 아니라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적재적소의 인재가 검찰에, 유독 윤 대통령 주변에만 몰려있었다고 믿어야 할까. 그 믿음이 곧 공정하다는 착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