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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스태그플레이션 위험 커졌다”는 세계은행 경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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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일 '2022 BOK 국제컨퍼런스'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일 '2022 BOK 국제컨퍼런스'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70년대 오일쇼크와 닮아, 신흥국 금융위기 우려

저성장·고물가 위기의식 갖고 규제 혁신 나서야

세계은행이 1970년대 오일쇼크 때와 비슷한 스태그플레이션(저성장+고물가)이 재발할 위험이 커졌다고 경고했다. 세계 경제 전반에 걸쳐 물가는 치솟는데 성장은 부진한 상황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세계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이 2.9%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1월 보고서(4.1%)에 비해 큰 폭으로 낮췄다. 지난해 성장률(5.7%)과 비교하면 반 토막 수준이다.

한국 경제는 이미 저성장과 고물가로 비상이 걸린 상태다. 어제 한국은행은 지난 1분기 경제성장률을 0.6%(전 분기 대비)로 수정해 발표했다. 지난 4월 말에 발표한 성장률 속보치(0.7%)와 비교하면 0.1%포인트 낮아졌다. 당초 한은이 계산했던 것보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다는 의미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 5.4%)은 월간 기준으로 13년9개월 만에 최고치로 뛰어올랐다.

세계은행은 일부 신흥국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상황이 70년대 오일쇼크와 닮은 점으로는 ▶공급망 교란으로 인한 물가 급등 ▶신흥시장과 개발도상국의 취약성 등을 들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원자재 가격 급등, 선진국의 지속적인 금리 인상 등으로 신흥국이 선진국보다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런 외부 요인에 의한 스태그플레이션은 일반적인 경기 불황에 비해 훨씬 대처하기가 까다롭다. 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겪었던 한국으로선 각별한 경계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외환위기의 재발까지는 아니더라도 글로벌 경제위기의 파고가 몰려오면 한국도 상당한 충격을 피하기 어렵다.

정부는 조만간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할 예정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처음 내놓는 경제정책의 청사진이다. “경제위기를 비롯한 태풍의 권역에 들어가 있다”는 윤 대통령의 언급처럼 엄중한 현실 인식을 기초로 경제정책의 기초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전임 정부처럼 재정지출을 대폭 늘리고 금리를 내리는 방식의 경기부양이 통하지 않는다. 국가부채 비율이 과도하게 높아진 상황에서 재정지출을 추가로 많이 늘리기는 어렵다. 경제성장률에 대한 정부의 기여도는 지난 1분기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지난해 4분기와 비교하면 정부가 오히려 성장률을 끌어내리는 역할을 했다는 뜻이다.

단기적으로는 물가 급등으로 인한 서민 생활의 어려움을 덜어주면서 중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의 미래성장 동력을 찾는 일이 절실하다. 한국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처럼 장기 침체에 빠지느냐, 구조개혁으로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위기 극복의 열쇠는 민간 경제 주체의 경쟁력과 활력 회복에 달려 있다. 새 정부가 과감한 규제 혁신으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