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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노래자랑으로 국민 MC…그걸 시작한 건 61세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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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중을 울리고 웃겨 온 영원한 딴따라의 웃음, 이른바 ‘송해표 웃음’이다.

대중을 울리고 웃겨 온 영원한 딴따라의 웃음, 이른바 ‘송해표 웃음’이다.

95세 평생 ‘딴따라’를 자처했다. ‘전국노래자랑’을 34년간 진행하며 서민들의 웃음과 눈물을 함께했다. 악극단부터 한류 열풍까지, 한국 대중문화의 변천사를 온몸으로 통과한 영원한 현역 MC 송해가 8일 별세했다. 고인은 이날 오전 서울 도곡동 자택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딸의 신고로 병원에 이송됐지만 깨어나지 못했다.

1960~70년대 한국 코미디계를 이끈 구봉서·송해·배삼룡(왼쪽부터). [사진 스튜디오 본프리]

1960~70년대 한국 코미디계를 이끈 구봉서·송해·배삼룡(왼쪽부터). [사진 스튜디오 본프리]

2012년 고인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방송 1505회를 앞둔 ‘전국노래자랑’이 자신의 전 재산이라고 했다. “매회 할 때마다 ‘이게 내 첫 프로’라는 기분으로 한다. 출연자 하나하나 긴장을 풀어드리고, 살아온 얘기를 꺼내는, 노래자랑이자 토크쇼”라고 소개했다. 이렇게도 덧붙였다. “힘들고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왜 없겠어요. 정이라며 배추김치를 싸서 내미는데 먹다가 목이 막힐 뻔도 하고. 그래도 그분들 무안하지 않게 하는 게 제 몫이죠. 제가 황해도 재령 출신인데, 남은 소원은 거기서 (전국노래자랑) 한번 해보는 겁니다.” 어머니를 재령에 두고 6·25전쟁 와중에 혈혈단신 남하할 땐 그게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 눈물짓던 어머니와 툇마루에 앉은 여동생이 23세 청년 송해의 뇌리에 남은 마지막 모습이다.

송해의 TBC 라디오 ‘가로수를 누비며’ 진행자 시절. [중앙포토]

송해의 TBC 라디오 ‘가로수를 누비며’ 진행자 시절.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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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11월 첫 전파를 탄 ‘전국노래자랑’ 마이크를 고인이 넘겨받은 게 61세였던 88년. 고인은 2년 전 교통사고로 20세 아들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있었다. 그런 그를 공개 무대로 이끈 이가 배우 안성기의 친형인 안인기 KBS PD다. 88년 5월 경북 성주 편을 시작으로 91년 몸이 좋지 않아 6개월 쉰 것과 말년을 제외하곤 녹화에 불참한 적이 없다. 타고난 성실성과 무서운 프로의식으로 방송 무대를 누볐다. 그걸 지켜준 건 꾸준한 체력 관리다. 하지만 2019년 말 폐렴으로 입원한 데 이어, 지난 3월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고향에서 ‘전국노래자랑’을 열어 진행하고 싶다던 소원은 분단 77년의 한으로 고인과 함께 스러졌다.

고인은 1927년 4월 27일 황해도 연백군 해월면 토현리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송복희. 초등학교 때부터 재령에 살았다. 송해라는 이름은 6·25전쟁 중 구사일생 탑승한 유엔군 상륙선에서 직접 지었다고 한다. 남하 후 군에 입대했다. 고인은 53년 7월 27일 모스 부호로 전군에 휴전협정 조인을 알린 군인 중 한 명이다. 군예대에서도 활동했다. 해주음악전문학교(성악과)에 다닌 게 도움이 됐다.

KBS ‘전국노래자랑’ 사회자 시절. [중앙포토]

KBS ‘전국노래자랑’ 사회자 시절. [중앙포토]

28세이던 55년, 고인은 창공악극단을 무작정 찾아가 입단했다. 버라이어티쇼를 공개 무대에서 펼치며 사회자(MC)로서 감을 익혔다. 대중문화의 중심이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으로 급격히 선회하던 60년대 초 방송계로 옮겼다. 데뷔는 동아방송의 ‘스무고개’다. 64년부터는 구봉서·배삼룡 등과 ‘웃으면 복이 와요’ 등 코미디 프로에서 끼를 발산했다. 전국구 스타가 된 건 74년 TBC(동양방송) 라디오 ‘가로수를 누비며’를 통해서다. 86년 하차 때까지 ‘송기사’라는 애칭 속에 운전자들의 애환을 전하며 구수한 입담을 자랑했다.

송해는 TV 최고령 진행자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됐다. [연합뉴스]

송해는 TV 최고령 진행자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됐다. [연합뉴스]

고인의 대표 무대는 역시 ‘전국노래자랑’이다. TV 출연이 처음인 출연자들이 고인의 주름진 웃음과 구성진 말솜씨에 끌려 끼를 풀어놓았다. 고인은 87년 ‘송해 옛노래 1집’ 등 6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84세인 2011년 ‘나팔꽃 인생 60년-송해 빅쇼’라는 투어 공연도 했다. 고인은 평생 대중문화예술인이라는 데 자부심을 가졌다. 2003년 보관문화훈장을 받았을 땐 “나는 딴따라다. 영원히 딴따라의 길을 가겠다”고, 2014년 은관문화훈장 수상 땐 “대한민국 대중문화 만세”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고인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또 조전을 통해 “반세기가 넘는 기간 가수이자 코미디언으로서, 그리고 국민 MC로 활동하면서 국민에게 큰 웃음과 감동을 선사해 줬다”고 추모의 뜻을 전했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장례는 코미디언협회장(희극인장)으로 치르며, 발인은 10일 오전 5시, 장지는 부인 석옥이 여사가 2018년 1월 먼저 묻힌 대구시 달성군 옥포리 묘역이다. 유족은 두 딸과 손주들이다.

송해가 남긴 말말말

“나는 딴따라다. 영원히 딴따라의 길을 가겠다”
2003년 보관문화훈장 수상 소감 중
“나는 무대에서 시작해 무대에서 죽을 사람입니다. 죽는 그 날까지 무대에서 사람들과 웃고 싶어요”
2008년 9월 언론 인터뷰 중
“저는 ‘사람을 많이 아는 게 부자다’라고 생각해요. 그게 바로 나거든요” 
2008년 9월 언론 인터뷰 중
“내 건강 비결은 BMW다. B는 버스(BUS), M(METRO)은 지하철, W는 워킹(Walking)을 한다는 뜻이다”
2014년 5월 KBS2 ‘밥상의 신’ 방송 중
“사람이 살아가는 데 ‘절망’이란 것은 필요 없어”
2019년 9월 MBN ‘송해야 고향가자’ 방송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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