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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위주로 뽑았다"는 윤 대통령 '검찰 만능' 인사의 허울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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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관계자 이미지. [연합뉴스]

검찰 관계자 이미지. [연합뉴스]

# 1 정부 고위직에 있는 A씨가 들려준 옛이야기 한 토막.
"꽤 오래전 대학 동창(서울대 경제과) 모임이 있었는 데 돈을 많이 번 친구 물주 A가 늦게 왔다. 아들과 함께였다. '아들과 낚시를 갔다 늦어서 같이 왔다'고 하더라. 이유가 걸작이었다. 며칠 전에 보신탕을 먹으러 갔다 주인장으로부터 '요즘 개를 구하지 못해 마음대로 내놓질 못한다'고 하더라. 근데 그날 낚시를 간 곳은 동네에 개 투성이었다고 한다. A는 낚시를 포기하고 아들과 함께 개를 여러 마리 잡은 뒤 트럭까지 빌려 인근 개장수에게 넘기니 다 빼고 7만원이 남았다. 아들에게 4만원을 주고 나머지 3만원을 챙겨왔으니 그만큼 신나게 먹자고 하더라. 그걸 보고 돈 버는 이는 다르다고 느꼈다. 아들에게 돈을 어떻게 버는지 몸으로 가르쳐준 것이다. 자녀에게 공부만 하라고 하는 우리와는 다른 능력이었다." (보신탕이 대중적이던 매우 오래전 이야기이니 감안해주시길!)

고 이건희 회장이 2003년 경기도 화성 삼성전자 메모리 연구동 전시관에서 당시 황창규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사장으로부터 차세대 메모리에 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고 이건희 회장이 2003년 경기도 화성 삼성전자 메모리 연구동 전시관에서 당시 황창규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사장으로부터 차세대 메모리에 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2 대기업도 그룹마다 문화가 다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영화 '대부' 3부작을 다 본 뒤 주인공 돈 꼴레오네(말론 브랜도, 로버트 드 니로)의 제스처에 꽂혔다. 예컨대 총격을 당한 말론 브랜도가 아들을 모두 불러모아 이야기를 나누던 중 밖으로 나가라는 듯한 손 제스처를 쓰는 걸 이 회장은 '복수를 묵인하니 공격하라'는 메시지로 해석했다. 주인공이 구사하는 짧게 압축된 표현에도 몰입했다. 삼성은 그냥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룹 차원에서 정제된 표현 한마디로 삼성의 메시지를 널리 세계에 전할 수 있어야 한다며 온갖 궁리를 했다. 그래서 나온 게 '삼성인의 용어'. 이때 나온 '0.01초론'은 바르셀로나 올림픽 100m 경기에서 우승한 영국 선수 린포드 크리스티의 기록은 2등과 불과 0.01초밖에 되지 않지만, 크리스티만 많은 사람들에 기억되는 걸 비유한 것. "1등만이 살아남는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뭐든지 파고드는 '공부'가 삼성의 능력이다. 반면 '아부'가 능력이 되는 대기업도 있다. 구성원들끼리 속고 속이며, 실력자와 오너를 자기편으로 만들기에 혈안이 된다. 기업은 속으로 곪아 썩어들어가지만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다. 그게 그 그룹에서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받은 반도체 포토마스크를 살펴보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받은 반도체 포토마스크를 살펴보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3 능력은 여러 가지다. 하나로 규정지을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주요 요직을 검찰 출신이 싹쓸이하고 있다는 비판에 '능력 중심'을 내세운다. 8일 오전에는 "선진국, 특히 미국 같은 나라를 보면 '거버넌트 어토니'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정관계에 아주 폭넓게 진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를 "(미국에는) 변호사 경력을 가진 사람 중에 정부 내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일단 틀렸다. 변호사가 정관계에 별로 없는 나라도 많다. 일본이 대표적이다. 정치는 정치인, 행정은 관료의 몫이다. 정치인·관료가 변호사 자격을 중간에 따는 경우는 있어도 검찰이나 변호사를 하다 정치인·관료로 변신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도쿄지검 특수부 출신 검사를 금융청 장관으로 앉힌다면 아마 일본 여론이 가만 안 있을 것이다.

서울시 서초구 대검찰청 전경. [중앙포토]

서울시 서초구 대검찰청 전경. [중앙포토]

또 하나 우리가 쉽게 빠지기 쉬운 오류는 뭐 있을 때마다 선진국, 선진 회사와 단순 비교하는 습관이다. 정관계 진출의 과정, 경로가 한국과 미국이 같을 수 없다. 기자 수 1500명의 닛케이신문사에 기자 200명이 채 안 되는 한국 신문사가 가서 열심히 벤치마킹해봐야 말짱 소용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미국의 로스쿨 수는 202곳, 한국은 25곳이다. 토대가 다르고 또 나라마다 요구되는 독특한 조건과 문화가 있는 법이다. '선진국도 그렇다"고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 돈을 잘 버는 능력, 공부를 잘하는 능력, 아부를 잘하는 능력 다 따로따로 있듯, 요구되는 능력은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검찰 출신 혹은 변호사가 '만능 자격자'란 오만은 위험하다. 사족 하나. "과거엔 민변 출신들이 도배하지 않았느냐"란 윤 대통령의 발언. 이랬으면 어땠을까.
"제가 볼 때는 그렇지 않지만 국민들이 느끼시기에 검찰 출신이 많게 느껴지셨다면 그 또한 새겨듣겠다. 민변 출신으로 도배된 전 정부의 사례를 제가 반복할 순 없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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