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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출신 첫 이복현 금감원장…'검찰공화국'에도 못 웃는 검찰

중앙일보

입력

윤석열 대통령의 잇따라 정부 요직에 검사 출신을 앉힌 데 대해 ‘검찰 공화국’ 인사 비판론이 거세지자 친정인 검찰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취임으로 사상 첫 검사 출신 금감원장이 탄생했지만 전·현직 검사들은 “이 원장 개인의 능력을 떠나 금융 감독 기구까지 검사 출신을 임명하면서 다시 검찰이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섰다”는 걱정 때문이다. 게다가 중용된 인사는 대개 윤 대통령과 사적 인연이 깊은 ‘윤석열 사단’이란 점을 두고서도 불만이 나왔다.

윤 대통령이 ‘법치’를 강조하면서 인사에 문제가 없다고 해명한 데 대해서도 법조계에선 “법치가 법률가의 통치라거나 공직에 검사만 중용하는 걸로 생각하면 오해”라는 지적이 나왔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尹 “이복현, 수사 과정에서 금감원 협업 경험 많은 적임자”   

윤 대통령이 지난 7일 새 정부 초대 금융감독원장에 이복현(50·사법연수원 32기) 전 서울북부지검 형사2부장을 임명한 것을 두고 “검찰 편중 인사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커졌지만, 윤 대통령은 “이 원장이 적임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8일 대통령실 청사 출근길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원장에 대해 “경제학과 회계학을 전공한 사람이고, 오랜 세월 금융수사 활동 과정에서 금감원과의 협업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어 “금감원이나 공정거래위원회와 같은 곳은 규제·감독기관이고 적법한 절차와 법적 기준을 가지고 예측 가능하게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법 집행을 다루는 사람들이 역량을 발휘하기에 아주 적절한 자리라고 생각해 왔다”라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98년 공인회계사(CPA) 시험과 2000년 사법시험에 동시 합격했다. 검사 시절 경제 관련 수사를 많이 했다. 2006년 현대차 비자금 사건, 론스타 외환은행 매각 사건 수사에 참여했다. 2019년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조작 사건을 맡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자본시장법 위반과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불구속기소 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검찰 편중 인사 논란'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검찰 편중 인사 논란'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檢 내부도 “대통령실 몰라도 금감원장은 의외…권력 집단 이미지 우려” 

검찰에서도 이 원장의 능력 자체에는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많다. 한 중앙지검 소속 검사는 “이 원장이 일을 잘하고 최고의 능력을 보유했다는 것에 대해선 검찰 내부에서도 다들 인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금감원장이 ‘검사 자리’인지에 대해선 검찰 내에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이 많다. 한 부장 검사는 “대통령실 등에 검사 출신이 포진한 것은 과거에도 사례가 있으니 이해가 되지만 금감원장 자리는 의외라는 반응이 많다”며 “금융감독 기구에 검사 출신이 수장이 되는 게 맞는 지 모르겠다”라고 했다. 특수부장 출신 변호사는 “이 원장이 회계사 자격을 가지고 있고 기업 수사를 했다고는 하지만 금융‧증권 분야의 경력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안 그래도 대통령실과 정부 요직에 검사 출신이 배치된 상황에서 초유의 검사 출신 금융감독원 수장으로 ‘검찰 공화국’이란 용어가 다시 회자하는 데 대한 검찰 내부의 부담감도 배여 나온다. 한 현직 고검장은 “이번 인사로 검찰이 정치적 쟁점의 중심으로 다시 떠오르고, 언론에 오르내리는 게 검찰 조직 입장에서 좋은 상황은 아니다”라고 했다. 다른 검찰 간부는 “검찰 조직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의 폐해를 국민에게 호소하면서 검찰도 달라지겠다는 약속했는데, 편중 인사 논란으로 ‘검찰이 권력 집단’이라는 이미지가 강화되는 것은 아닌가”라고 우려했다.

반면 로펌들은 검사 출신 금감원장 취임에 발빠르게 대응에 나서고 있다. 법무법인 율촌의 경우 라임자산운용 환매중단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김락현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장검사를 영입했다. 율촌은 지난달 ‘금융자산 규제수사 대응센터’를 출범시켰다. 세종도 금융·증권범죄 수사대응센터를 최근 발족했다. 광장, 태평양, 화우 등 역시 이 비슷한 시기에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이복현 금감원장 내정자. 사진은 이복현 내정자가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 부장검사이던 2020년 9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기자실에서 삼성 경영권 승계 의혹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모습. 뉴스1

이복현 금감원장 내정자. 사진은 이복현 내정자가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 부장검사이던 2020년 9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기자실에서 삼성 경영권 승계 의혹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모습. 뉴스1

“尹과 ‘카풀 인연’이라도 없으면 중요 보직 못 맡는게 공정인가”

대통령실‧정부 보직 인사에서도 ‘윤 사단’, ‘특수통’이 대거 중용되는 데 대한 반감도 읽힌다. 실제 요직에 앉은 검사 출신들은 모두 윤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된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대검 부장단에 있던 인사 중 한동훈 법무부 장관, 조상준 국가정보원 기조실장, 이원석 대검 차장검사(총장직무대행) 은 장‧차관급에 자리했다. 당시 복두규 대검 사무국장, 윤재순 운영지원과장, 강의구 총장 비서관은 각각 정부 인사를 총괄하는 대통령실 인사기획관, 대통령실 살림을 맡는 총무비서관, 대통령 부부를 보좌하는 부속실장에 올랐다.

이노공 법무부 차관, 공정거래위원장 후보로 오르내리는 강수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경우 윤 대통령과 함께 성남지청 근무 당시 ‘카풀’을 한 멤버이기도 했다. 이복현 금감원장 역시 ‘윤 사단의 막내’라는 이름표가 붙는다. 국정원 댓글 수사팀,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특검팀 등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경력이 있어서다.

한 고검장급 검사는 “검찰 인사에서도 윤 대통령과 개인적인 인연이 없다면 중요 보직에서 제외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다른 검찰 간부는 “소위 ‘윤 사단’이 끼리끼리 아무런 경쟁도 없이 검찰이든 외부든 요직 앉히는 분위기”라며  “윤 대통령의 검찰총장 시절 인사에도 ‘특수통’ 편향 논란이 있었는데, 지금도 거의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尹 “미국도 법조인…그게 법치국가”에 “검사만 법률가? 기재부 장관도 검사?”

이런 검찰 안팎의 우려에도 윤 대통령은 현 인사 방식을 이어나갈 것임을 시사했다. 이날 편중 인사 논란에 대해 적극 해명하면서다. 윤 대통령은 “과거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출신들이 아주 뭐 도배를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진국, 특히 미국 같은 나라를 보면 ‘거버먼트 어토니(government attorney·정부 소속 법조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정·관계에 아주 폭넓게 진출하고 있다”며 “그게 법치국가 아니겠냐”고 말했다.

이를 두고 지은석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는 “과거 정부도 ‘민변’ 편중 인사를 했으니 현 정부도 검사 중심으로 편중 인사를 해도 된다는 식의 오해 소지가 있을 수 있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 등에도 법률가 출신이 정계에 많이 진출한 건 사실이지만, 배출 제도 등이 달라 수평적으로 비교하기 어려운 데다, 법률가가 검사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이 직접 인사 방향에 관해 설명한 것 자체는 바람직하다”라고 전제했다. 그러면서도 “모든 정부 부처는 법을 집행한다. 윤 대통령이 말하는 법치라면 기획재정부 장관도 검사가 해야 하는가”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검사라는 직역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행정 기관의 수장이 될만한 경험을 갖춘 것이 중요한데 일부 인사를 보면 그런 경험이 미흡해 보인다”고 짚었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나치게 측근 중심의 인사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향후 인재 풀을 넓히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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