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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은 멋만 부린다? 무조건 국익이 최우선” 뚝심외교 44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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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이준규 한국외교협회장. 신인섭 기자

이준규 한국외교협회장. 신인섭 기자

외교관 이준규를 묘사하는 단어 중 하나는 ‘뚝심’이다. 1978년 외교부에 입부해 평생 외교관으로 살아온 이준규(68) 전 대사는 특유의 추진력과 소탈함으로 주일대사 및 주인도대사 등 요직을 두루 거쳤고, 2020년 한국외교협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전현직 외교관들 약 2000 여명의 모임인 이 협회가 8일 50주년을 맞는다. 반세기 동안 한국 외교의 사랑방 역할을 해온 셈이다. 8일엔 시내 모 호텔에서 50주년 리셉션도 연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축사를 하고, 외교계 대선배인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도 자리를 빛낸다. 뚝심의 외교관, 이준규 회장을 만나 한국 외교를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한국의 위상이 성장한만큼 외교의 역할도 진화해야 할텐데.  
“국가 위상은 달라졌지만 외교의 원칙은 그대로이다. 외교란 내가 만나는 모든 이들을 내 편으로 만든다는 원칙이다. 한국은 이제 글로벌 중추 국가를 지향할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고, 과거 개발도상국 시절 외교관들이 겪었던 것과는 외교의 환경이 달라졌다. 일선에서 뛰는 외교관들은 선진국 외교관들을 만나서는 당당하고, 개도국 외교관들을 만나서는 겸손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모두를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다. 국가 발전을 위해 외교가 중요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외교관에 대한 특정 고정관념이 존재하는 게 사실인데.  
“두 가지 편견이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첫째 외교관들이 외양만 그럴듯하고 진실하지 못할 것 같다는 편견인데, 아마도 영화나 글에서의 이미지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외교관의 기본은 사람을 만나 신뢰를 얻는 것이므로 호감을 받을 수 있는 외양과 태도는 필수이고, 그래서 그런 고정관념이 생겨난 건 아닐까 싶다. 대부분 외교관들을 실제로 만나보시면 상상과는 달리 꽤 괜찮은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한다(웃음). 두번째 편견은 아마도 외교관과 나아가 외교부가 타국과 우호적 관계 유지를 위해 실질적 국익을 도외시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인데, 단언하건대 외교관들은 국익을 최우선으로 한다. 특정 협상에서 외교부가 타 부처와 비교해 상대국의 입장을 배려하는 듯 보이는 것은 종합적으로 그 국가와의 장기적 관계에서의 국익을 추구하기 때문일뿐, 상대국의 이익을 위해서가 절대 아니라고 말씀 드리고 싶다.”
덕수궁 중명전. 일본이 조선을 강제합방하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외교권 박탈이었다. 그만큼 외교는 중요하다. 외교권 박탈을 골자로 한 을사늑약이 체결된 장소가 중명전이다. [중앙포토]

덕수궁 중명전. 일본이 조선을 강제합방하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외교권 박탈이었다. 그만큼 외교는 중요하다. 외교권 박탈을 골자로 한 을사늑약이 체결된 장소가 중명전이다. [중앙포토]

새 정부 출범과 함께 한반도에 필요한 외교 및 외교관의 역할을 짚어본다면.  
“한국은 강대국에 둘러싸인 데다,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성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한국의 외교관은 누구보다도 더 많이 공부하고 활동해야 한다. 북한에 대해서도 당당히 할 말은 하되 인도적 견지에서 포용하는 아량도 베풀 줄 알아야 한다고 본다.”  
주일대사를 지냈는데, 한ㆍ일관계 실마리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가장 큰 문제는 상호 신뢰가 바닥났고 대화 통로도 단절됐다는 것이다. 관계개선의 실마리는 신뢰 회복이 첫걸음이다. 우리로서는 우리 대통령과 새 정부의 대일관계 개선 의지가 확고하다는 다짐을 전해줄 필요가, 일본 측은 ‘해결책은 한국이 가져와야 한다’는 식의 방관자적 자세에서 벗어나 한국의 선의를 적극 수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또, 정부가 한ㆍ일관계 개선 노력을 하게 되면 국내 일각의 반대에 직면하게 될 텐데, 이를 잘 극복하여야 하며 따라서 집권 초반기에 신속히 초석을 다질 필요가 있다.” 
미ㆍ중 갈등 국면에서 한국 외교의 길은.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격화하는 국면에서 우리만 피해 없이 이익을 취할 수 있는 묘책은 있을 수 없다. 우리가 미국의 동맹국이라는 변하지 않는 사실을 상수로 두고, 중국과의 관계를 잘 관리해나간다는 기본 원칙을 세우고 구체적 정책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최적의 균형점을 찾는 노력을 하는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각오를 갖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외교부 청사 입구. 연합뉴스

외교부 청사 입구. 연합뉴스

한국외교협회 지난 50년의 성과와 앞으로의 포부를 들려달라.  
“협회가 50주년을 맞았다는 것은 그만큼 대한민국 외교의 연륜과 경험이 쌓였다는 의미다. 이런 무형의 자산을 바탕으로 우리 협회는 한국 외교 발전을 위해 적극 기여해 나가고 싶다. 정부 외교활동 지원은 물론, 국민께도 외교 현안을 알리고 외교에 친근함을 더하는 일을 해나가고 싶다. 장기적으로는 외교안보 분야의 권위있는 연구소를 설립하고 싶다는 포부도 갖고 있다. 외교협회는 50년이지만 한국의 외교는 1948년이후 74년의 연륜을 갖고 있다. 외교관들의 경험과 지혜를 소중한 자산으로 삼고 적극 활용했으면 한다. 외교관들의 저하된 사기를 진작시키는 데도 정부가 신경을 써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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