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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딸에 쫓기는 친문…11년전 스스로 판 무덤에 갇혔다 [위기의 민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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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015년 12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 전신) 대표는 온라인당원제를 도입해 당원 숫자를 비약적으로 늘렸다. 며칠만에 당원이 6만명 이상 증가하는 등 폭증세였다. 문 대표는 신규당원을 국회로 초청해 "큰 힘이 되고 있다"며 이런 흐름을 이끌었다. 문 대표가 초청된 당원과 사진을 찍는 모습. 중앙포토.

2015년 12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 전신) 대표는 온라인당원제를 도입해 당원 숫자를 비약적으로 늘렸다. 며칠만에 당원이 6만명 이상 증가하는 등 폭증세였다. 문 대표는 신규당원을 국회로 초청해 "큰 힘이 되고 있다"며 이런 흐름을 이끌었다. 문 대표가 초청된 당원과 사진을 찍는 모습. 중앙포토.

지방선거 이후 민주당의 문자폭탄·전화테러를 주도하고 있는 개딸들의 주요 표적은 ‘이재명 책임론’을 들고나온 전해철·홍영표 의원 등 친문 핵심들이다. 지난 2일 “선거 패배에 책임이 있는 분들은 한발 물러서라”는 전 의원의 블로그 글에는 7일까지 비난 댓글 1436개가 달리고 홍 의원의 지역 사무실에 비난 대자보가 걸리는 식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실책으로 당의 인기가 떨어졌는데 왜 이재명 의원을 탓하느냐”는 등의 내용이다. 다른 친문 의원의 보좌진들도 “이재명 지지자들의 항의 전화에 업무가 마비되는 일이 다반사”라고 아우성이다.

그러나 역설적이지만 개딸들에 쫓기는 처지가 된 정치적 환경을 만든 것도 친문그룹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개딸로 대표되는 이재명 팬덤이 당의 주요 의사결정을 압박하는 수준에 이른 것은 친문그룹이 2011년부터 ‘열린정당’을 표방하면서 온라인 권리당원의 영향력을 제도적으로 키워왔기 때문이란 거다. 당 내에선 “친문그룹이 안방에서 적을 맞는 심정일 것”이란 말이 나온다.

친노 폐족이 연 ‘개방형 시민당원제’가 기원

“친문재인계가 지난 11년 동안 당원 권리는 극대화했지만, 책임은 지우지 않는 형태로 당을 변모시키면서 벌어진 참극”(당직자)이란 말도 나온다. 사실 당원들의 정치참여도를 높이고 권리를 강화하는 작업은 친문재인계의 원류인 친노무현계가 시작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팬덤인 '노사모' 모습. 2011년 혁신과 통합이 들고나온 '개방형 시민당원제'는 민주당 안으로 노무현 팬덤을 끌어들어 당 주도권을 잡기 위한 복안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앙포토

노무현 전 대통령 팬덤인 '노사모' 모습. 2011년 혁신과 통합이 들고나온 '개방형 시민당원제'는 민주당 안으로 노무현 팬덤을 끌어들어 당 주도권을 잡기 위한 복안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앙포토

이들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정치적 기반을 잃고 ‘폐족’으로 몰렸다. 친노 좌장인 이해찬 전 대표는 2011년 ‘혁신과 통합(이하 혁통)’을 구성해 손학규 대표가 이끌던 민주당과의 통합을 추진했다. 당시 혁통은 통합의 청사진으로 ‘개방형 시민당원제’를 표방했다. ▶당원 가입의 문턱을 낮추고 ▶SNS를 통해 소통하며 ▶공천 선출권을 시민·당원에 주는 형태였다.

혁통의 목적은 명확했다. 노사모 등 친노 팬덤을 민주당 내부로 끌고 들어가 손학규 대표를 누르려는 의도였다. 이 때문에 통합 직후인 2012년 열린 두 차례 전당대회에서 친노계인 한명숙, 이해찬 전 대표가 연이어 당권을 잡았고 2012년 대선 경선에선 대의원 투표에서 뒤진 문재인 후보가 모바일 투표에서 승리하며 손학규 후보를 눌렀다. 민주당 당직자는 “친노·친문계가 당을 장악하기 위해 팬덤을 당내로 끌어들였다”고 말했다.

‘문파’ 양산한 문재인의 ‘온라인 당원 입당’

문재인 전 대통령도 당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2015년 대표 시절 도입한 ‘온라인 당원제’는 ‘문파’(문재인 극성지지층)를 양산했다. 방문·우편·팩스로만 받았던 입당원서를 온라인으로 받은 것이 주효했다. 친문재인계 지원으로 당 대표가 된 추미애 전 대표는 2017년 ‘100만 권리당원 운동’까지 벌였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권리당원은 2015년 말 약 24만명에서 2017년 말 약 71만명까지로 늘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문파들은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서 당 안팎의 비판을 틀어막았다. 2018년 ‘조국 사태’가 절정이었다. 당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옹호하는 당 지도부에 쓴소리를 했던 ‘조금박해(조응천·금태섭·박용진·김해영)’ 멤버들은 문자폭탄 세례를 받았다. 친문재인계 민주당 지도부는 극성당원의 여론을 이용하기도 했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위성정당’을 창당할 때 전당원투표를 통해 찬반을 물은 것이다. 결과는 74.1%의 압도적 찬성이었다. 계파색이 옅은 수도권 중진 의원은 “당시 지도부가 결정의 책임을 당원에게 떠넘겼다”고 말했다.

친문재인계는 최근까지도 당원 참여도를 높이는 방안을 냈다. 친문계인 김종민 의원 등이 주축이 된 당 혁신위원회는 2020년 12월 “당원이 입법·정책·예산 수립에 직접 참여한다”는 혁신안을 발표했다. 당시 ‘당원의 권한이 너무 비대하다’는 지적에 김 의원은 “민주당 권리당원들은 중도층 개혁 민심을 정확히 대표하고 있다”며 애써 외면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국회 등원 첫날인 7일 국회 정문 앞 담장에 이재명 지지자들의 축하 화환이 놓여있다. 이들은 스스로를 '개딸' '양아들'이라고 지칭했다. 김경록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국회 등원 첫날인 7일 국회 정문 앞 담장에 이재명 지지자들의 축하 화환이 놓여있다. 이들은 스스로를 '개딸' '양아들'이라고 지칭했다. 김경록 기자

지난 3월 대선 이후 이재명계 지지자들이 당내 여론을 주도하자 오히려 이재명계가 당원 참여도를 높이자고 주장하고 친문계는 반대하는 상황이 됐다. 8월 전당대회를 앞둔 이재명계는 당규 상 ‘12개월 간 6회 이상 당비 납부’시 부여되는 전당대회 투표권을 ‘3회 이상’으로 완화하자고 주장한다. 대선 이후 입당해 투표권이 없는 개딸들을 위해 당규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범이재명계인 정청래 의원은 지난 5일 “민주당의 주권은 당원에 있다”는 글을 SNS에 올렸다.

조진만 덕성여대 교수는 “민주당 내 각 계파들은 당원을 자신들의 이익대로 활용하기 위해서 당원의 권한을 넓혀왔다. 그렇다보니 당이 소수의 극성 당원에 휘둘리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원로인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각한 참여민주주의는 권리와 책임이 함께하는 이상적 정당 정치였다”며 “선거공학적 이유로 익명의 대중들을 정당에 끌어들이다 보니 통제불능의 상황을 맞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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