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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철의 CAR&] 자동차 브랜드는 죽지 않는다…잠시 사라질 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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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자동차 브랜드의 흥망성쇠는 한순간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판매량이 급감하고 회사 자체가 망하거나, 해당 브랜드가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이미지를 풍겨 버려지는 경우다. 그런데 ‘인천상륙작전의 영웅’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명언 “노병은 절대 죽지 않는다. 잠시 사라질 뿐”처럼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가 부활하는 사례가 최근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험머와 스카우트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1992년 군용 차량 험비의 민수용 브랜드로 험머를 시장에 선보였다. 픽업 시장의 기존 강자인 포드 F-시리즈와 SUV의 대명사인 크라이슬러 지프와 한판 대결을 위한 브랜드로 앞세운 것이다.

험머는 군용 차량 특유의 튼튼한 차체로 매니어 층의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연비 효율성이 떨어지고, 편의 장치가 부족해 시장의 평가가 좋지 않았다. 결국 GM의 파산보호 신청에 따른 후속 절차인 구조조정으로 2010년 폰티액·새턴 등과 함께 브랜드가 사라졌다.

GM이 10년 만에 부활시킨 험머에 시승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 GM]

GM이 10년 만에 부활시킨 험머에 시승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 GM]

그러나 험머의 부활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GM은 2020년 험머를 순수전기차(BEV) 픽업·SUV로 부활시킨다고 선언했다. 특히 지난해 11월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전기차 공장 ‘팩토리 제로’ 준공식과 험머 픽업 첫 생산 행사에 현직 미국 대통령인 조 바이든을 초청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험머 픽업 전기차에 시승한 뒤 “지옥에서 온 차(대단한 차란 의미)야. 이 녀석은 뭔가 특별해”라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타사가 폐지한 브랜드를 재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폴크스바겐이 택한 스카우트다. 스카우트는 1960년 첫선을 보인 오프로드 주행 전문 브랜드다. 그러나 두 차례 석유 파동을 겪으면서 판매량이 급락했고, 1980년 브랜드 자체가 사라졌다. 그런데 40여 년 만에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폴크스바겐이 트럭 등을 생산하는 나비스타를 인수해 스카우트 브랜드 사용권을 획득하면서다. 헤르베르트 디스 폴크스바겐그룹 회장은 지난달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픽업·SUV 부문에 진입하기 위해 스카우트 브랜드를 사용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내년 시제품을 공개하고, 2026년 첫 생산에 들어가 연간 25만 대를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과거 성공했던 브랜드를 부활시켜 신규 출시보다 비용을 줄이면서 소비자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브랜드 부활 전략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닷선은 ‘다또산’으로 불리며 일본뿐만 아니라 호주·인도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사진 닛산]

닷선은 ‘다또산’으로 불리며 일본뿐만 아니라 호주·인도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사진 닛산]

반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운명을 두 차례나 맞은 브랜드도 있다. 불운의 주인공은 닷선이다. 일본 닛산은 지난 4월 닷선 차종을 생산하는 인도 첸나이 공장을 닫으면서 브랜드를 폐지키로 결정했다. 닷선은 1914년 탄생한 닛산의 원조 이름이다. 닷선은 1930년대 회사가 커지자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는데 지주사 명인 닛산(Nissan)과 브랜드명을 병행해 사용했다. 인도와 호주 등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게 쌓았다. 닛산은 1981년 국내·외 브랜드명을 통일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닷선 브랜드를 폐지했다. 닷선은 이후 30여 년 만에 부활했다. 공교롭게도 차종 단순화 등 구조조정에 나섰던 카를로스 곤 닛산 회장이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닷선을 다시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곤 회장이 2018년 일본 검찰에 비리 혐의로 체포된 뒤 닷선도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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