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한지원이 고발한다

盧·文비판이 금기인 정의당...민주당 종속 벗고 '뇌' 찾아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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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영국 정의당 대표 등이 지난 2일 중앙선대위 해단식에서 선거 패배에 대해 사과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여영국 정의당 대표 등이 지난 2일 중앙선대위 해단식에서 선거 패배에 대해 사과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2022년 3월 대선과 6월 지방선거를 놓고 "진보의 패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다. 가파른 내리막길에 접어들어 몰락의 위기를 맞은 건 진보 그 자체가 아니라 진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특정 잔재, 그러니까 20세기 말 민주화 운동의 결함이 극대화한 끝에 팬덤 정치라는 막장에 다다른 더불어민주당의 포퓰리즘 정치다. 이 잔재는 촛불 집회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라는 상징을 앞세워 진보적 가치에 우호적인 시민을 한동안 사로잡았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민주당이 사회의 진보에 역행한다는 생각이 시민들 사이에 점점 퍼졌다. 그 결과가 올해의 두 선거, 특히 최근의 지방선거에서의 민주당 참패로 이어졌다.

앞으로 진보가 재건된다면, 민주당식 정치와 완전히 결별해야 비로소 진보의 이상을 추구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은 덕분일 것이다. 정의당 사례를 통해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자 한다. ‘보수에 맞서 민주당과 연합’하는 전략이 아니라 ‘포퓰리즘에 맞서 진보를 재구성’하는 노력만이 정의당의 활로라는 얘기다.

정의당 여영국 대표가 2일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해단식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정의당 여영국 대표가 2일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해단식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6·1 지방선거 결과부터 보자. 정의당 성적은 초라하다. 광역의원 2명, 기초의원 7명이 전부다. 2018년에는 광역·기초의회에서 37명을 확보했다. 같은 기간 서울 비례대표 득표율은 9.7%에서 4%로 약 60%가 줄었다. 울산이나 창원 같은 노동자 도시에서도 단 한 명의 의원을 배출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결과가 전혀 놀랍지 않다. 사실 정의당은 민주당과의 연대나 제휴 없이 제힘으로 날아오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10석을 차지한 것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여당인 열린우리당(민주당 전신)의 압승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전통적 민주당 지지자들이 비례 투표에서 민주노동당에 표를 나눠줬기 때문이었다. 2012년 총선에서 13석을 얻은 것도 민주통합당(민주당)이 야권 연대 전략에 따라 일부 선거구에 후보를 내지 않아 가능했다. 반면 민주당이 제 살길 찾기 바빴던 2008년에는 민주노동당 의석수가 5석으로 급감했다. 선거연대가 없었던 2016년, 2020년에도 정의당 의석수는 6석에 그쳤다. 2022년 지방선거 결과가 절대 특별하지 않은 이유다.

지난 2018년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왼쪽부터)가 야3당 연동형 비례대표제 촉구 시위에 참석했다. [중앙포토]

지난 2018년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왼쪽부터)가 야3당 연동형 비례대표제 촉구 시위에 참석했다. [중앙포토]

정의당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오랫동안 선거제도 개혁을 요구했다.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되는 의석이 많아질수록, 양당 독점을 완화할 수 있다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이 요구는 점진적으로 실현되기도 했다. 2004년 총선에서 정당 비례 투표제(1인 2표)가 실시됐고,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소수 정당에 유리한 중선거구제와 기초단체 비례대표제가 도입됐다. 2020년 총선에선 연동형 비례대표제까지 도입됐다. 하지만 비례제 확대가 정의당의 성장으로 귀결되지는 않았다. 선거제도가 어떠했든, 정의당의 선거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건 민주당과의 연대 여부였다.

정의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오직 민생을 위해 양당 말고 다당제로 정치교체!'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앞에서도 확인했듯 정의당이 비상하지 못한 이유는 양당제나 선거제도 탓이 아니다. ‘민주당 2중대’라는 경멸적 표현으로 표상되는, 당의 본질적 결함이 바로 그 이유다. 민주당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오히려 다당제에 역행하는 민주당에 대한 인적·사상적 종속이 문제다.

노동자운동연구소에 몸담고 있던 2018년 가을 나는 정의당 간부를 상대로 한국 경제에 대한 전국 순회 교육을 했다. 당 교육담당자는 진보의 역사나 이념을 포함해 뭐든 자유롭게 비판해도 괜찮지만, 노무현·문재인 대통령 비판은 조심해 달라고 요청했다. 실제로 한 곳에서 포퓰리즘 정책의 시작과 정점에 두 전·현직 대통령이 있다고 말하자, 교육장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이 당의 뿌리 중 하나가 친노·친문 세력이란 사실을 모르진 않았지만, 그 정도인 줄은 몰랐다. 소수 야당, 그것도 사회적으로 좌파를 대변한다는 정당이 정부 비판을 주저하는 것은 물론이요 심지어 내부 토론에서조차 금기시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런 정의당의 태도는 일차적으로는 인적 종속에서 비롯됐다. 정의당 대표를 지낸 천호선씨는 노무현 청와대 비서실 출신이다. 두 번의 재보궐 선거에서 반(反)보수를 명분으로 후보를 사퇴하고 민주당을 지지하기도 했다.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도 노무현 정부 출신이다. 2017년부터 2년간 사무총장을 역임한 신장식씨는 친민주당 미디어에 출현해 민주당 강경파와 유사한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상당수 정의당 당원들이 친노‧친문의 본진 민주당을 직계 가족까지는 아니어도 가까운 인척이나 친한 이웃 정도로는 여긴다.

정의당이 ‘2중대’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더욱 근본적인 원인은 사상적 종속이다. 집권을 꿈꾸는 정당이라면 사법·경제·외교 등 국가 핵심 기능에 관한 지향이 분명해야 한다. 즉, 자신만의 정부론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의당은 나라가 지향할 근본적 방향과 당면한 문제의 해결책은 민주당에 손쉽게 위탁한 채 인권과 소수자 문제 등 소위 틈새시장만 노렸다.

정의당 이은주 원내대표(가운데)와 장혜영 원내수석부대표(오른쪽), 류호정 원내대변인이 원내 지도부 선출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양당 말고 다당제로 정치교체!'라는 문구가 배경으로 걸려 있다. [뉴시스]

정의당 이은주 원내대표(가운데)와 장혜영 원내수석부대표(오른쪽), 류호정 원내대변인이 원내 지도부 선출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양당 말고 다당제로 정치교체!'라는 문구가 배경으로 걸려 있다. [뉴시스]

최근 사례를 보자. 정의당은 검찰개혁 이슈에 대해 그저 민주당 입장을 추종했다. 거대의석의 민주당이 야당을 배제하고 밀어붙인 공수처법에 대해서는 패스트트랙으로 공조했고, 배진교·강은미 두 의원은 위헌 소지가 있는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당의 싱크탱크인 정의정책연구소는 검찰개혁에 관해 단 하나의 보고서도 내지 않았고, 언론 주목도가 큰 장혜영·류호정 두 의원은 검찰개혁에 관해 제대로 분석하거나 비판하지 않았다. 정의의 핵심이 법치인데, 정의당에는 이와 관련한 정확한 입장이 없다.

경제 분야에서도 정의당은 그저 ‘매운맛 민주당’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부동산 대책, 재정적자 확대 등 주요 쟁점에서 민주당과 다른 목소리가 아니라 더 강한 목소리를 내려고 애썼다. 외교도 마찬가지다. 문 정부의 북핵 문제에 안일했던 대북 정책과 비이성적인 반일 정책의 강력한 지지자였다. 이렇듯 정부의 핵심 기능과 의제에 관해 민주당만 따랐으니, 사실상 당의 두뇌, 더 나아가 집권 가능성까지 민주당에 맡긴 셈이다. 유권자 눈에 이런 모습이 보이지 않을 리 없다.

지난 2018년 당시 김동연 경제부총리(왼쪽)가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를 방문해 정부 예산안 국회 처리 협조를 구했다. [중앙포토]

지난 2018년 당시 김동연 경제부총리(왼쪽)가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를 방문해 정부 예산안 국회 처리 협조를 구했다. [중앙포토]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보수가 집권했으니 다시 야권연대 깃발을 올려야 할까? 정의당은 민주당의 무엇을, 어떻게 비판할지 고민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민주당의 발언과 입법은 일단 의심부터 해야 하고, 입만 열면 민주당을 비판해야 한다. 정의당이 그들과 공유해온 모든 걸 버려야 한다. 집권을 꿈꾸는 정당이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정부 핵심 기능에 관련한 정책도 확립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향후 선거에서 의석수가 0으로 수렴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사족을 하나 덧붙인다. 20세기 초 영국 노동당은 200년 역사의 휘그당(자유당)을 약 20년 만에 대체했다. 노동당이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제자리를 굳건히 지키니 자유당이 갈라져 보수당과 노동당으로 흡수돼버렸다. 만약 노동당이 ‘보수당이 최악, 자유당이 차선’이라며 반 보수당 연합을 결성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영국의 경험은 민주당 내분이 점점 커가는 지금 정의당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