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독재자는 못 와" 방침에 멕시코도 불참…반쪽 된 미주 정상회의

중앙일보

입력

미국이 28년 만에 개최국 자격으로 여는 미주 정상회의에 중남미 국가들이 줄줄이 불참하면서 반쪽짜리 행사에 그칠 형국이다. 반미(反美) 3개국인 쿠바·니카라과·베네수엘라 정상을 독재자라는 이유로 초청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멕시코 등이 '연대' 행동에 나선 것인데, 미국의 앞마당에서 미국 정부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 독재자 국가 초청 안 해…미주 정상회의 잇단 불참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이 6일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주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이 6일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주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6일(현지시간) AP 통신에 따르면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미 대륙의 모든 국가가 참가하지 않는다면 미주 정상회의는 의미가 없다"며 불참을 선언했다. 앞서 미국은 미주 정상회의에 비민주적인 조치와 인권 탄압 등으로 비판을 받은 쿠바·니카라과·베네수엘라 등 3국의 정상들을 초청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중도좌파 성향의 오브라도르 대통령도 지난달 자신도 가지 않겠다는 뜻을 보였고, 이날 확실히 쐐기를 박았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독재자들이 초청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조 바이든 대통령의 원칙적인 입장"이라면서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오는 7월 워싱턴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만날 예정"이라고 전했다. 미주 정상회의에는 마르셀로 에브라르드 멕시코 외교부 장관이 대리 참석한다.

미주 정상회의는 미주 대륙 35개국이 3년에 한 번씩 모이는 자리다. 코로나19 확산으로 1년 연기돼 2018년 이후 4년 만에 열린다. 미국은 1994년 1차 회의 이후 28년 만에 개최국이 됐다. 정상회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서 8~10일 열린다. '지속 가능하고 탄력적이며 평등한 미래 건설'을 주제로 8일에는 미주 지역 경제 어젠다 및 보건 안보 문제, 9일에는 기후 위기 및 식량 안보 문제, 10일에는 이주 문제 등 5가지 주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백악관에 따르면 브라질·아르헨티나·칠레·페루 정상 등 최소 23명의 정부 수반이 참석한다. 그러나 미국의 가장 중요한 교역 파트너인 멕시코를 비롯해 비슷한 입장인 온두라스·볼리비아와 일부 카리브해 국가 정상은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이와는 별도로 알레한드로 잠마테이 과테말라 대통령은 미국의 검찰총장 제재로, 루이스 라카예 포우 우루과이 대통령은 코로나19 확진으로 불참하는 등 10여명의 정상이 빠지게 됐다.

중남미에서 중국 뜨는데…미국 영향력 줄어드나 우려 

한 브라질 아이가 지난 1월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중국 코로나19 백신 시노백을 맞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한 브라질 아이가 지난 1월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중국 코로나19 백신 시노백을 맞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남미 국가가 대거 불참을 선언하면서 중남미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재확인하려는 바이든 정부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특히 미국이 중남미에서 확대되고 있는 중국의 영향력에 맞서야 하는데 정상들이 많이 빠지면서 바이든 대통령에게 당혹스러운 상황이 됐다고 AP는 전했다.

반면 중국은 반쪽이 된 미주 정상회의에 기뻐하고 있다고 폴리티코가 전했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라틴 아메리카는 결코 특정 국가(미국)의 '앞마당'이나 '뒤뜰'이 아니다. 미국이 미주 정상회의 개최국 지위를 이용해 다른 나라의 내정을 간섭하려는 계획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중남미와 카리브해 지역에서 적극적인 지원과 투자로 영향력을 빠르게 확대해 왔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중국은 이 지역에 지난 15년간 1300억 달러(약 164조원)의 차관을 제공하고, 이 지역의 최소 20개 국가에서 일대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에선 미국에 앞서 마스크와 백신을 발 빠르게 지원해 환심을 샀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해 1월 취임하고 이민자 포용 정책을 펼치는 등 중남미 지역을 챙기고 있지만, 중국의 영향력을 약화하는 건 쉽지 않은 과제다. 폴리티코는 "중국은 현재 라틴 아메리카 전체에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교역 파트너"라면서 "바이든 대통령이 강력한 무역 거래 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중국 영향력을 억누르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FT는 "LA에서 미주 정상회의가 성공적으로 끝나도 미국이 중남미에서 중국의 거침없는 행보를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