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철의 CAR&] 車 브랜드는 죽지 않는다. 잠시 사라질 뿐

중앙일보

입력 2022.06.07 16:23

업데이트 2022.06.07 16:27

GM이 10년 만에 부활시킨 험머에 시승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 GM]

GM이 10년 만에 부활시킨 험머에 시승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 GM]

자동차 브랜드의 흥망성쇠는 한순간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판매량이 급감하고 회사 자체가 망하거나, 해당 브랜드가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이미지를 풍겨 버려지는 경우다. 그런데 ‘인천상륙작전의 영웅’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명언 “노병은 절대 죽지 않는다. 잠시 사라질 뿐”처럼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가 부활하는 사례가 최근 늘어나고 있다.

부활하는 자동차 브랜드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기업이나 소비자 모두 미래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라며 “기업은 과거 성공했던 브랜드를 부활시켜 신규 출시보다 비용을 줄이면서 소비자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브랜드 부활 전략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2010년 단종된 GM 험머의 H3. [사진 GM]

2010년 단종된 GM 험머의 H3. [사진 GM]

대표적 사례가 험머와 스카우트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1992년 군용 차량 험비의 민수용 브랜드로 험머를 시장에 선보였다. 덩치 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픽업 차량을 내놓았다. 픽업 시장의 기존 강자인 포드 F-시리즈와 SUV의 대명사인 크라이슬러 지프와 한판 대결을 위한 브랜드로 앞세운 것이다.

다시 살아난 험머

험머는 군용 차량 특유의 튼튼한 차체로 매니어 층의 인기를 얻었다. 상시 사륜구동 차량으로 일반 도로보다는 오프로드(험지)에서 탁월한 성능을 뽐냈다. 어떤 경로를 통해 들어갔는지 알 수 없지만, 북한의 도로에서 달리는 모습이 포착돼 눈길을 끌기도 했다.

부활한 GM의 험머 브랜드.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부활한 GM의 험머 브랜드.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러나 경쟁 차량보다 연비 효율성이 떨어지고, 편의 장치가 부족해 시장에서 나쁜 평가를 받았다. 특히 넓은 차폭 때문에 주차장의 두 면과 도로의 두 차로를 잡아먹는 문제로 일부 국가에서 수입이 금지되기까지 했다. 결국 GM의 파산보호 신청에 따른 후속 절차인 구조조정으로 2010년 폰티액·새턴 등과 함께 브랜드가 사라지는 아픔을 겪었다.

지난해 11월 GM의 전기차 공장 ‘팩토리 제로’에서 다시 생산된 첫 험머. [사진 GM]

지난해 11월 GM의 전기차 공장 ‘팩토리 제로’에서 다시 생산된 첫 험머. [사진 GM]

그러나 험머의 부활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GM은 2020년 험머를 순수전기차(BEV) 픽업·SUV로 부활시킨다고 선언했다. 특히 지난해 11월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전기차 공장 ‘팩토리 제로’ 준공식과 험머 픽업 첫 생산 행사에 현직 미국 대통령인 조 바이든을 초청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험머 픽업 전기차에 시승한 뒤 “지옥에서 온 차(대단한 차란 의미)야. 이 녀석은 뭔가 특별해”라고 극찬했다. 최근 고객 인도가 이뤄지고 있는 픽업 차량에 이어 SUV는 2024년쯤 시판할 예정이다.

GM이 순수전기차 픽업·SUV로 다시 부활시킨 험머. [사진 GM]

GM이 순수전기차 픽업·SUV로 다시 부활시킨 험머. [사진 GM]

타사가 폐지한 브랜드를 재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폴크스바겐이 택한 스카우트다. 군용 정찰 차량을 뜻하는 스카우트는 1960년 첫선을 보인 오프로드 주행 전문 브랜드다. 그러나 두 차례 석유 파동을 겪으면서 판매량이 급락했고, 1980년 브랜드 자체가 사라졌다.

그런데 40여 년 만에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폴크스바겐이 트럭 등을 생산하는 나비스타를 인수해 스카우트 브랜드 사용권을 획득하면서다.

폴크스바겐그룹이 지난달 부활을 발표한 스카우트의 렌더링 이미지(예상 완성도). [사진 폴크스바겐그룹]

폴크스바겐그룹이 지난달 부활을 발표한 스카우트의 렌더링 이미지(예상 완성도). [사진 폴크스바겐그룹]

헤르베르트 디스 폴크스바겐그룹 회장은 지난달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픽업·SUV 부문에 진입하기 위해 스카우트 브랜드를 사용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동시에 차량 렌더링 이미지(예상 완성도)를 공개했다. 스카우트 브랜드의 과거 명성을 활용해 픽업·SUV 전기차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하겠다는 복안이다. 이에 따라 올해 미국에 별도의 독립 법인을 세우고, 브랜드 구축을 위해 1억 유로(약 1300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후광 효과 노린 스카우트

내년 시제품을 공개하고, 2026년 첫 생산에 들어가 연간 25만 대를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전향란 HMG경영연구원 경제산업연구센터 연구위원은 “한때 시대를 대표하던 브랜드를 부활시켜 초기 시장 진입에 성공한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닷선은 ‘다또산’으로 불리며 일본 뿐만 아니라 호주·인도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사진 닛산]

닷선은 ‘다또산’으로 불리며 일본 뿐만 아니라 호주·인도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사진 닛산]

반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운명을 두 차례나 맞이하는 브랜드가 있다. 불운의 주인공은 닷선이다. 일본 닛산은 지난 4월 닷선 차종을 생산하는 인도 첸나이 공장을 닫으면서 브랜드를 폐지키로 결정했다.

닷선은 1914년 탄생한 닛산의 원조 이름이다. 설립자 세 명의 영문 이름 앞글자(D·A·T)에 자신의 아들(son) 같은 존재라는 의미를 담아 브랜드명을 지었다. 이후 아들(son)과 발음이 비슷한 태양(sun)의 영문명을 뒤에 붙이는 게 좋겠다는 의견에 따라 닷선(DATSUN)으로 바꿨다.

닷선의 기구한 운명

닷선은 1930년대 회사가 커지자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는데 지주사 명인 닛산(Nissan)과 브랜드명을 병행해 사용했다. 한반도에서 일본식 발음인 ‘다또산’으로 불리며 승합차와 트럭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다. 인도와 호주 등에서도 브랜드 인지도를 높게 쌓았다. 닛산은 1981년 국내·외 브랜드명을 통일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닷선 브랜드를 폐지했다.

카를로스 곤 닛산 회장이 부활시킨 닷선 브랜드. [사진 닛산]

카를로스 곤 닛산 회장이 부활시킨 닷선 브랜드. [사진 닛산]

닷선은 이후 30여 년 만에 부활했다. 공교롭게도 차종 단순화 등 구조조정에 나섰던 카를로스 곤 닛산 회장이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닷선을 다시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2012년 브랜드 부활을 발표했고, 2014년 인도를 중심으로 차량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2016년 10개국에 수출하며 판매량(8만7000대)이 정점을 찍었다.

닷선 연도별 글로벌 판매량.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닷선 연도별 글로벌 판매량.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러나 곤 회장이 2018년 일본 검찰에 비리 혐의로 체포된 뒤 닷선 역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곤은 이후 체포-구속-보석의 과정을 몇 차례 거친 뒤 2019년 가택연금 상태에서 탈주에 성공해 레바논으로 도피했다. 일부 일본 언론은 닷선 브랜드 폐지가 ‘카를로스 곤 지우기’의 일환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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