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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피크로 연봉 -10%? 따져보니 -20%! 이중삭감 숨어있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임금피크제와 관련한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 삭감률을 둘러싸고 노조에 근로자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시내 거리의 중년 남성. 연합뉴스

임금피크제와 관련한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 삭감률을 둘러싸고 노조에 근로자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시내 거리의 중년 남성. 연합뉴스

대기업 간부인 김모(58)씨는 올해 연봉이 10% 깎였다. 임금피크제가 적용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그보다 더 삭감됐다"고 주장한다. 이 회사는 올해 노사 합의로 10%대 수준의 임금인상을 단행했다. "모든 직원에게 적용되는 노사 간 임금협상 결과를 임금피크제에 진입한 직원에게는 적용하지 않더라. 그것까지 따져보니 실제는 20% 가까이 임금이 줄었다"는 게 김씨의 해석이다. 김씨는 노조를 찾아 이런 사실을 설명하고 대응책 수립을 촉구했다.

대법원의 임금피크제 관련 판결(5월 26일)이 나온 뒤 임금피크제 운용을 둘러싼 근로자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일선 기업 노조에는 임금피크제 관련 문의와 회사와의 협상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봇물이 터지듯 하고 있다.

그렇다고 임금피크제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큰 것은 아니다. 익명을 요구한 모 기업 노조 간부는 "임금피크제 대상이거나 몇 년 뒤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장기근속자"라며 "회사의 문화와 기업 경영을 걱정하고 배려를 할 줄 아는 분들이어서 임금의 일정 부분 삭감은 감수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는 "대신 이분들은 삭감률에 관심을 나타내고, 대법원 판결 이후 삭감 액수를 계산해보고, 부당성을 성토하고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일선 노조에 접수되는 불만 중 두드러진 사안은 '이중 삭감'이다. 임금피크제 적용으로 연봉이 일률적으로 깎이는 데 이어 노사합의로 채택하는 임금인상률 적용해서도 제외돼 사실상 이중으로 연봉이 감액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월 100만원을 받던 사람이 임금피크제 20% 감액 적용을 받으면 80만원으로 줄어든다. 그런데 올해 노사합의 임금인상률이 10%였다고 치자. 이에 따라 조합원은 물론 일반 직원들은 110만원으로 월급이 오른다. 반면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 직원은 역으로 깎이고, 임금인상률 적용에서도 배제되기 때문에 그해 한 해 동안에만 다른 직원 대비 28%나 깎이는 셈이 된다. 이런 식으로 매년 임금인상률에서 배제되면 누적적으로 삭감 효과가 나타나 감액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감액률 또한 높이는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모 대기업 직원(57)은 "우리가 촉탁직이냐. 임금피크제 적용 연령이 되면 사실상 퇴직한 뒤 촉탁으로 재입사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우리를 뒷방 늙은이로 만들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유준환 LG전자 사무직 노조위원장은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는 직원들도 모두 정규직인데, 임협 결과를 적용하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회사와 이에 대해 협의를 신속하게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형태의 임금피크제 운용은 향후 큰 논란을 일으킬 전망이다. 법적 분쟁으로 비화할 경우 회사에 크게 불리할 것이라 게 학계와 법조계의 분석이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특정 집단에 불이익을 가하는 행위를 금지한 균등대우의 원칙(근로기준법 제6조) 위반 소지가 다분하다"며 "노사가 합의한 임금협약(임금인상률)을 적용하지 않는 것은 법적으로 매우 위험하다. 법적 다툼이 생기면 회사가 패소할 확률이 아주 높다. 서둘러 정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시장에서의 최소한의 기준을 정한 것으로 무조건 지켜야 하는 강행법이다. 노사가 합의하더라도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것보다 낮은 근로조건을 적용하면 법을 위반한 것으로 간주해 무효가 된다.

이같은 해석이 나오는 이유는 임·단협은 모든 직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일반적 효력을 지니기 때문이다. 노조에 속한 조합원이 아닌 일반 직원에게도 확장, 적용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정규직인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 직원에게만 이 협약을 적용하지 않고 배제하는 것은 연령에 따른 차별로 볼 근거가 될 수 있다.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위반 논란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김용문 글로벌 법률사무소 덴톤스리 변호사는 "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차이여서 ▶국적▶신앙▶사회적 신분▶성별을 이유로 차별을 금지한 균등대우 원칙을 적용하는 데 논란이 있을 수 있다"며 "그러나 동일한 정규직임에도 누적적 임금 격차가 커지는 임금체계라면, 고령자고용촉진법을 적용하더라도 합리성을 결여한 연령 차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이런 형태의 임금피크제는 정년이 가까울수록 연봉과 퇴직금 등 금액 격차가 커지기 때문에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상당히 높고, 그 결과는 회사에 불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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