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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운전자 마음 읽는다” 팀장 없이 일하는 정의선 비밀병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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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현대차 선행기술원은 매달 자유 주제로 ‘응원 데이(Buck up Day)’를 연다. 각기 분야의 아이디어를 공유하면서 프로젝트를 한층 발전시키기 위해서다. [사진 현대차]

현대차 선행기술원은 매달 자유 주제로 ‘응원 데이(Buck up Day)’를 연다. 각기 분야의 아이디어를 공유하면서 프로젝트를 한층 발전시키기 위해서다. [사진 현대차]

경기도 성남시 판교 크래프톤타워 12층에는 현대차그룹의 신기술 연구개발(R&D) 조직인 ‘선행기술원(IATD)’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해 1월 설립됐지만 1년여 넘게 외부에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는 곳이다.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현대차그룹의 남양연구소가 ‘네 바퀴로 달리는 자동차’ 연구에 몰두한다면, IATD는 보다 폭넓은 미래 모빌리티(이동수단) 신기술 개발에 도전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직속으로 편제돼 있어, 그룹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엿볼 수 있다. 글로벌 미래 모빌리티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꾸려진 ‘현대차의 비밀병기’인 셈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미래차 매진’ 선행기술원 가보니 

지난 3일 찾은 IATD는 마치 스타트업 사무실 같았다. 자동차 관련 부품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사무실 한 켠은 배트맨 포스터와 각종 피규어·레고 등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종수(59) 현대차 IATD원장(부사장)은 “기존 조직과 달리 팀·실, 팀장·팀원이 따로 없고, 프로젝트별로 구성원이 꾸려진다”며 “자리 배치도 프로젝트에 따라 매번 달라진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기술이 빠른 속도로 등장하고 있고, 패러다임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면 조직 구성과 운영이 파격적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원장은 남양연구소에서 파워트레인 담당 부사장, 성능개발센터장 등을 지냈다.

이종수 현대차 선행기술원장(부사장).

이종수 현대차 선행기술원장(부사장).

‘정의선식 미래 모빌리티’는 자율주행차나 도심항공모빌리티(UAM)를 뛰어넘는다. 이미 이런 기술은 일부 현실화해 있어서다. 이 원장은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이동수단이 무엇인지, 그 원천 기술을 찾고 상용화 여부를 앞당기는 게 IATD에 주어진 임무”라고 설명했다.

이 원장에 따르면 미래 모빌리티는 기술 융합이 핵심인 만큼 다양한 분야의 R&D 인력이 시너지를 내는 게 관건이다. IATD가 정보기술(IT) 기업이 밀집한 판교에 자리 잡은 이유다. 실제로 현대차는 자동차뿐 아니라 IT·화학공학·바이오분야 연구원을 지속해서 채용 중이다. 현재 100명 수준인 R&D 전담 인력을 내년 말까지 30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세상에 없는 모빌리티 찾는 게 임무”

지난 1년여 간 현대차 IATD는 ‘고객의 경험 가치 증대’에 주목해왔다. 여기에 부응할 수 있는 구체적인 개발 과제로 ▶운전자의 신체·감정을 파악하는 개인화 ▶모듈형 조립차량 ▶탄소중립 등을 설정했다.

앞으론 차량이 운전자의 신체·감정 상태를 인지해, 여기에 맞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원장은 “예컨대 현재 제네시스 G90은 운전자가 기분에 따라 네 가지 모드를 선택할 수 있고, 이에 맞춰 차가 조명·음악·향·시트 상태를 바꾼다”고 말했다. 운전자의 뇌파·호흡 변화량을 측정해 감정 개선 효과를 검증한 뒤 적용한 시스템이다.

지금은 고객이 스스로 상태를 선택해야 하지만 향후엔 차량이 운전자의 심박 수·호흡·얼굴 표정 등을 파악해 차량 환경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데까지 기술이 발전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운전자에게 심정지 같은 위급 상황이 발생할 경우 차량이 속도를 줄이는 등 어느 정도 충돌 위험에 대처할 수도 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난 1월 5일(현지시간) 2022 세계 최대 전자·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CES)에서 삼성전자 부스를 관람하고 있다. 한종희 삼성전자 DX부문장(부회장)이 뒤에 서 있다. [뉴스1]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난 1월 5일(현지시간) 2022 세계 최대 전자·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CES)에서 삼성전자 부스를 관람하고 있다. 한종희 삼성전자 DX부문장(부회장)이 뒤에 서 있다. [뉴스1]

“커피숍·의료용·배달용…맞춤 제작” 

차량을 용도와 취향에 맞게 주문 제작하는 시대도 열린다. 이 원장은 “지금은 소비자가 양산 차량을 선택하지만, 미래엔 고객이 내 목적에 맞춰 차량을 주문 제작할 것”이라며 “다양한 형태 차량의 주문 제작이 가능하려면 섀시·배터리·모터 등 핵심 부품을 표준화·모듈화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2020년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CES)에서 목적기반모빌리티(PBV)를 선보인 바 있다. 스케이트보드 형태의 차량이 모듈화한 부품 조립에 따라 화물·레저·배달·병원 전용 차량 등으로 활용이 가능해지는 식이다.

현대차그룹이 2020년 CES에서 선보인 목적기반모빌리티(PBV) 영상 중 한 장면. 모듈화된 차체에 다양한 용도의 공간을 앉힌 형태다. [사진 현대차]

현대차그룹이 2020년 CES에서 선보인 목적기반모빌리티(PBV) 영상 중 한 장면. 모듈화된 차체에 다양한 용도의 공간을 앉힌 형태다. [사진 현대차]

IATD는 매년 4~6개의 프로젝트를 추진할 방침이다. 이 부사장은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실패해도 괜찮다고 본다”며 “빠른 시도와 실패를 통해 미래 모빌리티에 더 근접해 가는 게 IATD의 목표다. 실패를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의미 있는 실패’가 반복돼야 미래 모빌리티를 앞당길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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