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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대북정보 낱낱이 까자...北이 꺼낸 카드 '침묵의 교란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6일 북한 매체는 전날 쏘아올린 여덟 발의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 미사일을 쏘고도 입을 다무는 북한의 최근 행보는 손에 쥔 대북 정보를 낱낱이 밝히며 공개 압박하는 한ㆍ미의 전략과 대비된다.

6일 오전 한ㆍ미가 전날(5일)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8발 도발에 비례해 지대지 미사일 8발을 대응 사격하는 모습. 합동참모본부.

6일 오전 한ㆍ미가 전날(5일)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8발 도발에 비례해 지대지 미사일 8발을 대응 사격하는 모습. 합동참모본부.

미사일 쏘고도 입 다무는 北

북한은 지난달 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추정 미사일 발사 때부터 이날까지 다섯 차례에 걸친 미사일 발사에 대해 아무런 보도를 하지 않았다.

과거 북한은 미사일 도발 이튿날 관영 매체를 통해 구체적 제원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참관 여부 등을 밝히고, 대남ㆍ대미 메시지까지 '패키지'로 공개하는 게 관행이었다.

일례로 북한이 4년여만에 '모라토리엄'(핵실험ㆍ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유예)를 깼던 3월 24일 ICBM '화성-17형' 발사 때만 해도 이튿날 관영 매체는 김 위원장의 현지 지도 모습을 뮤직비디오처럼 만들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미 제국주의와의 장기적 대결을 철저히 준비해나갈 것"이라는 김 위원장의 발언도 전했다.

이처럼 쏘아올린 미사일마다 각주를 달듯 정치적 의도를 설명하며 대내외에 선전하던 북한이 돌연 '침묵 모드'로 돌아선 건 지난달부터다. 앞서 지난 3월 16일 화성-17형을 쐈다가 공중 폭발하자 보도를 생략하거나, 지난 1월 이틀 간격으로 이뤄진 두 차례의 시험 발사를 묶어서 한꺼번에 보도한 적은 있어도 요새처럼 통째로 보도를 뛰어넘는 건 이례적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쿨하게 다 밝히는 한ㆍ미

반면 최근 한ㆍ미는 입수한 대북 정보를 지속적으로 밝히고 있다. 사실상 '북한은 한ㆍ미 손바닥 위에 있다'는 경고다.

대표적인 게 핵실험 관련 동향이다. 김태효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1차장은 북한이 ICBM과 SRBM을 섞어 쐈던 지난달 25일 브리핑에서 "북한이 7차 핵실험 준비를 위해 (풍계리 핵실험장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핵 기폭 장치 작동 시험을 하는 게 탐지됐다"고 말했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 안보 보좌관도 한ㆍ미 정상회담을 사흘 앞둔 18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한ㆍ일 방문 중 혹은 이후에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이나 핵 실험에 나설 거란 분명한 가능성에 대한 정보가 있다"고 말했다. 방한 기간 실제 북한의 도발은 없었지만, 이후에도 설리번 보좌관은 "앞으로 핵실험은 있을 것"(지난달 22일)이라는 기조를 유지했다.

정보 자산으로 획득한 정보를 이처럼 대놓고 밝히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한·미는 최근 잇따르는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에 대한 평가도 구체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탄도미사일을 '미상의 발사체'로 부르던 문재인 정부 때와는 달라진 기조다.

한ㆍ미 국방부는 북한이 정찰 위성이라고 주장했던 2월 27일, 3월 5일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에 대해 3월 11일 공동 입장문을 통해 "2020년 10월 열병식에서 처음 공개해 개발 중인 신형 ICBM 체계와 관련된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이전까지는 전문가들이 준중거리 미사일로 추정할 뿐이었는데, 한·미 당국이 ICBM이라고 실체를 확인한 것이다.

지난 3월 16일 북한이 평양에서 ICBM을 쐈다가 공중 폭파했을 때도 합동참모본부(합참)는 곧바로 실패 사실을 알렸다. 지난달 25일 북한이 ICBM 한 발과 SRBM 두 발을 섞어 쏜 데 대해서도 합참은 "두 번째 미사일은 고도 약 20㎞에서 소실됐다"고 공개했다.

일본 오키나와 동남방 공해상에서 한ㆍ미 해군의 연합 훈련이 벌어진 지난 2일 미국 핵추진 항모 로널드레이건호를 향해 미국 해상작전헬기 MH-60이 비행하는 모습. 합동참보본부.

일본 오키나와 동남방 공해상에서 한ㆍ미 해군의 연합 훈련이 벌어진 지난 2일 미국 핵추진 항모 로널드레이건호를 향해 미국 해상작전헬기 MH-60이 비행하는 모습. 합동참보본부.

정반대 전략, 이유는?

미국은 이런 접근법을 러시아에도 썼다. 바이든 행정부는 앞서 지난 2월 초 우크라이나 침공을 앞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허를 찌르기 위해 러시아 관련 기밀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개하는 심리전을 펼쳤다. 예상 침공 날짜까지 못박아서 사실상 언론에 흘리거나 러시아가 침공을 정당화할 자작극을 준비하는 동향이 있다며 선제적으로 푸틴을 수세에 모는 식이었다.

이런 전술을 모를 리 없는 북한은 굳이 개발 중인 미사일의 세세한 정보를 노출하는 대신, 예상치 못한 도발을 감행해 한ㆍ미 공조를 무력화하겠단 접근법을 구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핵 교리까지 바꾸며 큰 틀에서 핵 선제 타격 가능성을 열어둔 만큼, 전술핵 탑재가 가능한 무기 도발을 계속하면서도 정확한 의도나 타깃에 대해서는 입을 꾹 다물며 모호성을 유지하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또 한ㆍ미가 4년 7개월만에 핵 항모를 동원한 연합훈련을 재개하는 등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를 본격화하려는 가운데, 이에 비례하는 대응을 못할 바에야 아예 침묵의 교란술 쓰는 게 낫다는 판단일 수 있다.

김인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지난 4월 열병식 등을 통해 핵ㆍ미사일 강국의 면모를 과시한 북한은 단거리 탄도미사일 등에 대한 시험 발사까지 일일이 보도하면 오히려 대내외적 신용도가 떨어진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또한 코로나19 상황과 맞물린 '수령 결사옹위' 정신의 일환으로 김정은 위원장이 미사일 시험 발사를 직접 참관하는 것도 최근 들어선 자제하는 듯 하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9일 당중앙위 본부청사에서 정치국 협의회를 소집해 코로나19 방역 상황을 논의하는 모습. 조선중앙TV.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9일 당중앙위 본부청사에서 정치국 협의회를 소집해 코로나19 방역 상황을 논의하는 모습. 조선중앙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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