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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너는 장미보다 아름답지 않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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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전상직 서울대 음대 교수

전상직 서울대 음대 교수

‘너는 장미보다 아름답지 않지만, 그보다 더 진한 향기가…. 너는 별빛보다 환하지 않지만, 그보다 더 따사로워.’ 1991년 아름다운 노랫말상(한국 노랫말 연구회)을 받은 ‘미소 속에 비친 그대’(신승훈)의 첫 두 구절이다. 비록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은 덜하지만, 내면에서 피어나는 향기로움이 장미의 그것보다 더하고 따뜻한 마음이 별빛보다 더하다는, 그래서 너무도 사랑했다는 말일 게다. ‘꽃 같다’, 더 나아가 ‘꽃보다 아름답다’라는 흔하디흔한 찬사는 왠지 진부하고 때로는 아부성 발언이라는 의심을 수반한다.

반면 ‘장미보다 못한 외모’와 ‘별빛에 견줄 수 없는 스펙’이라는 팩폭(fact暴)은 연인을 갈라놓을 수 있을 만큼 매우 위험한(?) 사실 적시지만, 그것을 통해 ‘그보다 더 진한 향기’와 ‘그보다 더 따사롭다’라는 표현의 진실성을 배가한다. 그리고 그 사랑의 이유가 외모(=장미)나 스펙(=별빛)이 아니라 그(녀) 자체임을, 그래서 그 사랑이 진실한 것임을 한층 더 분명하게 드러낸다. 첫 구절의 ‘향기’와 둘째 구절의 ‘따사로워’. 대구를 이루는 이 둘은 각기 ‘향(香)’과 ‘온(溫)’ 한 글자로 충분할 법도 한데 거기에 ‘기(氣)’를 더해 향기(香氣)와 온기(溫氣)라고 하는 이유가 무언지 궁금하다.

마음에서 피어난 사랑의 향기
몸밖에만 뿌리는 향수와 달라
외적 치장은 실체 가리는 허상

만물을 생성·소멸시키는 물질적 시원(始原), 즉 기운을 의미하는 글자를 더했으니 향기와 온기는 좋은 냄새와 따뜻함을 넘어 그것을 퍼뜨리는 기운인가? 맞다. 향기와 온기는 그 발원처에 머물지 않고 퍼져나가 그 주변을 향기롭고 따뜻하게 하는 기운(energy)이다.

이 노랫말의 ‘향기’가 내면의 반영이라면 ‘향수’는 후각적 측면의 외형적 치장을 위한 수단이다. 5000여 년 전 고대문명으로 거슬러 오를 만큼 그 뿌리가 깊음에도 향수를 널리 사용하기 시작한 이유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공중목욕탕이 발달했던 로마제국과 달리 목욕을 자주 못(안)한 16~17세기 유럽인들이 몸에서 나는 악취를 감추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는 것쯤은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향수의 가치나 향수 애호가를 폄하할 의도는 눈곱만큼도 없지만, 기분 좋은 냄새라는 공통점에도 향기와 향수는 ‘절로 피어나는 것’과 ‘몸 밖에 뿌리는 것’이라는 정반대 속성을 지닌다.

파트리크 쥐스킨트(1949~)의 장편소설 『향수』(1985)는 주인공 그루누이의 일그러진 삶을 통해 매혹적인 향수를 뿌린다고 해도 그 향이 결코 자신의 것이 될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남다른 후각을 지녔지만, 정작 자신은 체취가 없는 그루누이. 그의 천부적 후각과 체취의 결핍은 자연스레 그에게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향수를 만들겠다는 목적을 부여한다. 매혹적인 소녀의 향기를 한 병의 향수에 담으려는 그의 연구와 실험은 필연적으로 연쇄 살인을 동반한다.

그런데 그의 향수에 현혹된 사람들은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범한 그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심지어 그를 찬양한다. 정작 그 순간 그는 분노한다. 그제야 알았으리라. 사람들이 현혹된 것은 그가 아니라 희생된 소녀들의 향기라는 것을. “그것을 뿌리고도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쥐스킨트는 그렇게 말했다.

잠시 화제를 바꿔보자. 신라의 신화(神畵) 솔거의 황룡사 벽화 ‘노송도(老松圖)’에는 종종 새가 날아들었다는데, 집 앞 도로변 투명 차음벽에 붙여놓은 맹금류(猛禽類) 스티커는 새를 쫓는(보호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만큼 조악하다. 솔직히 말해 보호 대상이 새인지 차음벽인지도 잘 모르겠다. 반면 곤충의 희생은 아직 별로 없는지 별다른 조치가 보이지 않는다. 프랑스 작곡가 메시앙이 화음구성 원리에 어긋나게 추가된 음을 ‘꽃에 앉은 벌’과 같다고 했다는데 불협화를 이루며 반짝이는 음의 부딪힘이 왜 ‘벌 한 마리’ 같다는 것일까?

가꿀 필요 없이 먼지만 가끔 털어주면 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조화와 일주일도 버티지 못하는 생화를 눈으로 구별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거기에 갑자기 벌이나 나비가 한 마리 날아든다면? 벌이나 나비가 시각적 정보에 덧붙여 향기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니 메시앙이 말한 ‘꽃에 앉은 벌’은 ‘꽃의 생명력을 드러내는 존재’라는 뜻이리라.

이렇게 향기는 살아있음의 증거이고 고유의 것이고 주변으로 퍼져나가 우리가 살만한 세상을 만드는 기운이다. 향기 없음은 죽은 것과 다름없고 치장한 향은 실체와 거리가 멀다. 한 송이 꽃에서 저절로 피어나는 향기, 각양각색의 꽃들이 어울려 잘 가꾸어진 꽃밭, 그래서 온갖 아름다운 향기로 가득한 세상을 향한 첫걸음은 이렇게 내 안에서 시작된다.

전상직 서울대 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