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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만원짜리가 '마감 1분 컷'...여름방학 영어캠프 난리 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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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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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수 시작하자마자 마감이라 하더라고요. 다들 ‘올해 여름방학은 역시 경쟁이 세다’고 해요.”

서울 성동구의 초등학교 5학년 학부모 이모씨는 지난 2일 접수 마감한 초·중등 학생 대상 A고등학교의 여름방학 영어캠프에 아이를 넣지 못했다. 350여명 정원이라는데, 신청자가 많아 접수 시작 1분여 만에 모집 인원이 꽉 찼기 때문이다. 이씨는 “일단 대기 명단에 넣어뒀는데 학부모들 사이에선 대기자만 수백명이란 얘기도 나온다”며 “다른 영어캠프도 신청하려는데, 하나라도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9박20일에 380만원, 영어 쓰는 '공부 캠프'

6일 학원가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약 2년간 중지됐던 숙박형 학습 프로그램이 재개되며 여름방학 합숙 캠프에 자녀를 보내려는 학부모들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주요 특목고나 자사고에서 운영하는 여름방학 영어캠프가 대표적이다. 영어캠프는 국제중·특목고 등의 진학을 희망하는 초·중학생 학부모에게 코로나19 이전에도 인기가 많았는데, 올해는 접수가 시작하자마자 마감돼 아쉽다는 후기가 가득하다.

서울 대치동의 한 학원 강사는 “최근 1~2년간 보내고 싶어도 보낼 수 없었던 학부모들의 대기 수요와 사교육 증가 추세가 맞물려 주요 학교의 여름방학 학습 캠프가 더 인기를 끌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오는 8일 접수 시작 예정인 B중학교 운영 영어캠프는 벌써부터 ‘마감 30초컷’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초등학교 4~6학년 300여명을 모집하는 B중학교 영어캠프는 국내 영어캠프 가운데 '탑5' 안에 들 정도로 인기다.

A고교에서 운영하는 여름방학 영어캠프 저녁 이후 일과표. 밤 12시 30분까지 추가 학습이 가능하다. 홈페이지 캡처.

A고교에서 운영하는 여름방학 영어캠프 저녁 이후 일과표. 밤 12시 30분까지 추가 학습이 가능하다. 홈페이지 캡처.

주로 초·중등 학생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국내 영어캠프는 국어 대신 ‘영어’를 사용하는 ‘학습 캠프’에 가깝다. 학부모·학생 후기를 보면 자기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만드는 데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다수의 영어캠프가 19박 20일 일정으로 이뤄져 있는데, 오전 7시에 기상하며 하루가 시작되고 오후 9시에 정규 수업이 종료된다. 오후 9시부터는 숙제를 하거나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데 늦을 경우 밤 12시 30분까지도 할 수 있다. 입학 전에 학생을 평가해 수준별 분반 수업이 이뤄지고, 거의 매일 에세이 평가·토론 등이 진행된다. 참가비는 캠프별로 320만원에서 380만원 수준이다. 1박에 17~20만원 꼴인 셈이다. 부모님과 통화 시간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로 제한돼 있다.

'단기 수학특강' '해외 합숙캠프'도 인기

중·고등학생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단기 수학특강’ 등 수학 합숙캠프 모집도 활발하다. 서울 대치동 소규모 학원이나 공부방 중심으로 ‘끼리끼리’ 뭉치는 경우도 많다. ‘닥수’(닥치고 수학)라는 말이 퍼져있을 정도로 수학에 ‘올인’해야 한다는 학부모들의 불안 심리가 반영된 결과다.

서울 서초구의 중학교 1학년 학부모 이모씨는 “아이가 초등학교 5~6학년 때는 영어캠프를 보내고 싶었는데 코로나19가 한창이라 기회가 없어 못보냈다”며 “중학생이 되고보니 이제는 영어보다 수학에 ‘올인’할 때라고 해서 수학특강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대치동의 한 학원 강사는 “이미 초등학교 6학년 선행반 중에는 고교 수학을 풀고 있는 경우가 꽤 있다”며 “이를 아는 학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이 뒤처지는 것 같다는 생각에 여름방학 때 2~3주간 수학만 하는 합숙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해외 출국도 비교적 수월해지며 미국, 필리핀, 캐나다 등 해외 합숙캠프, 스쿨링 프로그램 모집도 활발해졌다. 가격은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느냐에 따라 월 400만원부터 1000만원을 뛰어 넘는 등 천차만별이다. 아이 혼자 보내는 경우도 있지만, 자녀 나이가 어릴 경우 부모 중 한 명이 같이 가서 '매니저'처럼 모든 활동을 서포트해주는 프로그램도 있다. 해외 합숙캠프는 주말마다 해외 문화 체험 등 놀이에 초점을 맞춘 경우도 간혹 있지만, 국제학교 입시 준비반·주말 수학 완성 등 한국형 입시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들이 인기다.

"공교육 붕괴, 방학 중 사교육 심리 부추겨"

2학기 등교수업이 시작된 17일 대전 동구 성남초등학교에서 1학년 학생들이 여름방학 동안의 기록을 들어보이고 있다. 뉴스1

2학기 등교수업이 시작된 17일 대전 동구 성남초등학교에서 1학년 학생들이 여름방학 동안의 기록을 들어보이고 있다. 뉴스1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인한 기초학력 붕괴와 공교육에 대한 불안감이 방학 중에도 학부모들의 사교육 심리를 부추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서울의 한 고교 진학교사는 “거리두기가 완화되며 다양한 체험학습이 가능해졌는데 결국 어린 학생들의 활동이 영·수 사교육 위주로 쏠린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라며 “학교가 제대로 교육시켜야 아이들에게 진짜 방학다운 방학을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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