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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좋아했지만 법대 간 아이…돌고돌아 '만화가 변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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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만화가인 이영욱 변호사가 웹툰 계약의 기본을 정리한 책 『웹툰계약 마스터』를 냈다. 국내 저작권법 중 '계약' 분야, 특히 '웹툰계약'만 다룬 책은 드물다. 그의 관심사가 '만화'여서 가능했다. 10년 넘게 작가들을 상담하며 알게 된 사례 300여 건을 토대로 했다. 직접 그려 법률신문에 연재중인 4컷 만화 '변호사25시'의 한 장면을 핸드폰으로 보여주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현역 만화가인 이영욱 변호사가 웹툰 계약의 기본을 정리한 책 『웹툰계약 마스터』를 냈다. 국내 저작권법 중 '계약' 분야, 특히 '웹툰계약'만 다룬 책은 드물다. 그의 관심사가 '만화'여서 가능했다. 10년 넘게 작가들을 상담하며 알게 된 사례 300여 건을 토대로 했다. 직접 그려 법률신문에 연재중인 4컷 만화 '변호사25시'의 한 장면을 핸드폰으로 보여주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해요. 계약서가 점점 더 어려워져서, 도움이 더 필요한 때인 것 같았습니다"

웹툰 계약서의 종류부터 저작권법까지 담은 400여쪽의 큰 책을, 법 공부하는 사람들이 아닌 '작가'들이 보라고 냈다. 지난달 19일 『웹툰계약 마스터』(길찾기)를 펴낸 이영욱(51·법무법인 감우) 변호사는 "웹툰·만화 계약에 관한 상담과 강연을 많이 하는데, 물어보는 게 결국 다 비슷하다"며 "차근차근 설명하기도 쉽지 않고, 웹툰 시장이 최근에 확 커졌는데 참고할 게 없으니 정리를 해두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웹툰계도 '표준' 필요하다, 부당계약 신인들 슬퍼" 

폭발적으로 커진 웹툰 시장 규모에도 불구하고 '비밀유지 조항' 등으로 인해 웹툰 계약서는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상태다. 책은 이 변호사가 10년 이상 예술인 복지재단 등에서 상담하며 알게 된 작가 등을 통해 접한 300여건을 바탕으로 했다. '계약서의 형식'부터 차근히 설명한 뒤 참고용 계약서 샘플까지 만들어 담았다. 공동 작업, 영상화 작업이 많아진 현실을 반영해 공동저작계약서, 영상화 계약서, 영어로 된 계약서 예시도 포함했다.

플랫폼, 제작사, 위탁사, 매니지먼트 등등 주체에 따라 계약관계가 복잡해지는 과정에서 계약서도 더 복잡해지지만, 이 변호사는 연예계 '표준 전속계약서'를 예로 들며 "건마다 다른 사항은 별지로 붙이면 되고, 최소한 기본으로 지켜야 할 골자를 '표준 계약서'로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아사리판'이었던 연예계 전속 계약도 공정거래위원회가 '표준 전속계약서'를 만들면서 정리가 된 만큼 웹툰계도 '계약 표준'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부당 계약을 맺는 사람 중에는 신인들이 많다"며 "오히려 '내가 하고 싶어서 하겠다는데 다른 사람들이 왜 이걸 문제 삼느냐, 나는 그렇게라도 해서 유명해지면 된다'라고 말하는 걸 들으면 슬플 때도 있다"고 말했다. "누구 하나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거래라는 건 없다. 합리적이고 납득 가능한 계약을 체결하면 모두가 윈윈할 수 있다"며 "누가 누군가를 쥐어짜는 식의 계약을 피해야겠다는 게 이 책을 쓴 취지"라고 덧붙였다.

그림 좋아했지만 법대 간 아이… 돌고 돌아 '만화가 변호사'

이영욱 변호사는 연재 중인 '변호사25시'에 대해 "변호사 일을 하다가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으면 에버노트에 적어뒀다가 소재로 사용한다. 구상이 오래 걸리지, 네 컷을 그리는 데는 1~2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책에 사용한 캐릭터들을 그려넣은 '만화가용 명함'도 따로 들고 다닌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영욱 변호사는 연재 중인 '변호사25시'에 대해 "변호사 일을 하다가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으면 에버노트에 적어뒀다가 소재로 사용한다. 구상이 오래 걸리지, 네 컷을 그리는 데는 1~2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책에 사용한 캐릭터들을 그려넣은 '만화가용 명함'도 따로 들고 다닌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 변호사는 본인이 만화 작가이기도 하다. 고시생 시절부터 짧은 만화를 그렸고, 변호사가 된 이후 법조신문에 4컷 만화 '변호사 25시'를 15년째 연재 중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였지만, '나중에 여러 가지 할 수 있다'고 해서 성적 맞춰 법대에 갔다"며 "너무 재미가 없어서 전혀 공부를 안 했다"고 했다. 졸업 직후 애니메이션 회사에 취직해 6개월간 AD로 일하고, 광고회사(엘지애드)에서 2년간 일하다 뒤늦게 사법시험을 봐서 변호사가 됐다. 2002년 44회 사법시험, 연수원 34기다.

연수원에서부터 전공으로 저작권법·특허법을 골랐고, 연수원을 마친 뒤 바로 변호사 일을 시작하면서 법무대학원에서 지적재산권을 공부했다. 2015년 저작권법 중에서도 계약 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콘텐트·저작권 관련 책을 지금까지 15권 썼다. 관련 전문가가 적다 보니 그가 쓴 저작권 관련 서적이 이 분야 첫 책인 경우도 많다고 했다. 국제지적재산권기구(WIPO) 의뢰를 받아 그린 저작권 교육 만화는 UN 공식 7개 언어로 번역돼 여러 나라에 배포됐다.

만화로 재판 참고자료, 전 세계 배포된 교육만화도 그린 '덕업일치'

사실관계가 복잡한 경우 만화로 요약한 참고자료를 법정에 제출하기도 한다. 50억짜리 행사 대행 계약이 잘못돼 사기죄로 1심 집행유예를 받은 사건을, 2심에서 10쪽 만화로 16년에 걸친 사건의 사실관계를 요약 제출한 끝에 무죄를 받은 적도 있다. 이 변호사는 "법정은 보수적인 곳이라 처음엔 걱정도 했는데, 판사님들도 '성의있게 준비했구나' 하고 좋게 봐주시더라"고 말했다. "시험만 붙으면 하고 싶은대로 할 거야, 하고 살았는데, 결국 덕업일치(좋아하는 일과 업이 일치하는 것)를 이룬 행복한 경우"라며 "판검사를 했으면 이런 일을 못 했을 텐데, 지금 삶이 더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웹툰 다음 관심 분야로 음악 관련 계약을 들여다보는 중이다. "음악 산업이 덩치가 실은 제일 큰데, 계약서가 없는 경우도 많고 비밀유지 관행 때문에 개선이 안 된다"며 "음악 분야야말로 표준계약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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