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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내장 아닌데 "백내장 수술하셔요"…보험금 4570억 역대급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40대 직장인 A씨는 눈이 침침하고 사물이 흐릿하게 보여 서울 강남의 한 안과를 방문했다. 병원에선 백내장 수술을 하면서 다초점렌즈를 삽입하면 시력이 개선된다고 수술을 권했다. 실손보험금도 청구할 수 있다고 했다. A씨는 곧바로 양쪽 눈 모두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이후 실손보험금을 청구했지만 보험사는 '질병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A씨는 병원에서 받은 영상을 꼼꼼하게 살펴보니 백내장은 보이지 않았다.

백내장 수술 과정. 혼탁한 수정체를 분쇄해(上) 흡입한 뒤(中) 인공 수정체(下)를 삽입한다.

백내장 수술 과정. 혼탁한 수정체를 분쇄해(上) 흡입한 뒤(中) 인공 수정체(下)를 삽입한다.

최근 백내장 증상이 없는 환자에게 시력교정의 목적으로 백내장 수술과 다초점렌즈 삽입을 권유하는 안과가 기승이다. 손해보험협회와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백내장 수술로 지급된 실손보험금은 4570억원에 이른다. 분기 기준 역대 최고다. 지난 3월 한 달 동안에만 전체 실손보험금 지급액의 17.4%인 2053억원이 지급됐다. 지난해 말엔 전체 실손보험금 중 9%였는데 석 달 만에 배에 가깝게 늘어났다.

백내장은 국내 수술 1위 질환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백내장 수술은 한국인이 2016년부터 5년 동안 받은 33개 주요 수술 중 수술 건수가 가장 많다. 증가 속도도 가파르다. 같은 기간 백내장 수술은 평균 7.9% 늘어난 것과 달리 백내장을 제외한 32개 수술은 오히려 0.5% 감소했다.

백내장 실손보험금 지급액.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백내장 실손보험금 지급액.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일부 안과에서 과잉수술을 권유하고, 브로커를 통해 환자를 소개받는 사례가 늘면서 단기간에 백내장 수술 관련 보험금이 급증했다”고 말했다. 손해·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일부 안과는 증빙자료를 허위로 꾸며 백내장 진단을 해준 것으로 나타났다. 현미경 검사 영상의 해상도와 밝기를 조작해 확인이 어렵게 만들거나, 필터를 씌워서 백내장이 심각한 것처럼 조작하는 식이다.

일부 안과에선 평균 진료비보다 3~4배 높은 수술비를 청구하기도 했다.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비급여 다초점렌즈의 가격은 평균 291만원이었는데 비싸게 받는 곳은 최대 831만원을 받았다는 게 보험협회 측 설명이다. 백내장 수술로 보험금을 많이 청구한 상위 10개 안과의 올해 1분기 평균 보험금 청구액은 49억원에 이른다. 나머지 안과의 평균 보험금 청구액(약 1억7000만원)의 2.9배 많다.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보험사가 백내장 수술에 대한 보험금 지급 심사를 강화하면서 정작 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보험금을 받기 위해 의료자문에 응해야 하는 등 불편을 겪고 있다. 또 보험사들의 지급심사 강화로 실손보험금 지급이 거절되는 사례가 늘면서 분쟁도 늘고 있다. 보험사들은 이달부터 백내장 수술 실손보험 전담 상담콜센터를 운영한다

또 과잉 진료하는 안과를 신고하면 포상금을 주는 ‘특별신고 포상금 제도’도 이달 말까지 연장한다. 금융감독원 콜센터(국번 없이 1332)나 각 보험회사 홈페이지의 ‘보험범죄 신고센터’에 구체적인 증거와 함께 환자를 신고했을 경우 100만원, 브로커는 1000만원, 병원 관계자는 300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한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앞으로 과잉진료나 보험사기 등이 합리적으로 의심되는 건에 한해서 선별적으로 조사를 해 선의의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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