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도 한국도, 중앙은행도 기획재정부도, 지금 경제계 최대 화두는 이것입니다. 물가. 소비자물가가 치솟아 5월 상승률이 5%대를 기록한 요즘. 도대체 물가가 오르면 우리 경제와 증시는 어찌 되는 걸까요. 잘 얘기해주실 만한 분을 긴급히 만났습니다. 거시경제 전망이 궁금할 때 기자들이 SOS 치는 전문가이시죠.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입니다.
- 한은도, 정부도 요즘 물가 얘기만 하는데요. 한국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5%대가 될 거라니까 진짜 인플레이션이 확 실감이 나더라고요. 이런 인플레이션을 예상하셨을까요?
- “사실 연초부터 이미 물가에 대한 경고를 계속 해왔습니다. 물가 상승 원인이 조금씩 달라져 왔을 뿐이지 사실 지난해부터 물가가 높아질 요인은 계속 쌓여왔거든요.”
- 지난해엔 코로나가 물가상승의 주요 원인이라고 봤는데요.
- “작년엔 코로나 요인과 구조적 요인이 있었죠. ①미국이 가계에 보조금을 많이 지급하자 저축이 쌓여서 재화소비가 늘었고요. ②오미크론 때문에 인력이 부족하게 되는 공급요인이 있었고요. 이와 함께 ③미국이 생산망에서 중국을 배제시키면서 반도체 등 일부 품목을 중심으로 가격이 올랐고요. ④또 다른 구조적 요인은 탈탄소이죠. 생산비용을 높이니까요.”
- 네 가지 중 코로나 관련은 올해는 좀 사그라 들었죠.
- “올해는 요인들이 좀 바뀌었어요. 우크라이나 전쟁 전에도 국제 곡물·광물시장은 인플레 압력이 높아졌죠. 코로나로 곡물생산국 작황이 좋지 않은 데다, 광물 채굴도 줄었으니까요. 또 지난해는 가계가 초과저축을 주로 냉장고·세탁기·자동차 같은 내구재 소비에 썼는데요. 이제 그게 서비스로 옮겨오고 있어요. 그런데 서비스는 내구재와 가격 조정의 주기가 다르거든요. 내구재는 가격이 급격히 높아졌다가 떨어질 때는 또 확 떨어지는데, 서비스는 그렇지 않아요.”
- 내구재는 주기가 짧고 서비스는 주기가 길군요.
- “냉장고·세탁기는 안 팔리면 가격을 낮추기도 하지만, 음식료업이나 숙박업에서 일하는 분들 임금은 1년에 한번 조정하고, 또 일단 한번 올리면 내리기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식당 음식값 역시 한번 올라가면 내려오질 않죠. 이렇게 서비스는 가격조정 주기가 긴데, 이게 쭉 올라가고 있는 거죠. 그래서 물가상승률이 빨리 떨어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농산물도 마찬가지죠. 석유만 해도 좀 열심히 채굴하면 더 나올 수 있는데, 농산물은 지난해 안 심었으면 지금 안 나오죠. 올해 우크라이나가 (밀 등을) 못 심었으니까 내년엔 더 심할 가능성이 있고요. 그래서 지금은 인플레이션이 광범위해지고 있다는 게 특징입니다. 인플레는 아직 정점을 확인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 미국에선 요즘 인플레 피크아웃 기대감이 솔솔 나오던데요.
- “미국은 전 세계에서 물가상승률이 가장 먼저 빠르게 올랐어요. 가계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대규모로 빨리 했기 때문이죠. 다른 나라들은 국제 에너지·곡물·광물 가격 영향을 이제야 뒤늦게 받고 있고요. 그래서 미국은 코어CPI(식품·에너지가격을 뺀 소비자물가지수)가 좀 떨어질 수 있지만, 아직 글로벌 인플레이션은 정점을 확인했다고 하기 어렵고요. 우리나라도 그렇죠.”
- 한국은 이제야 인플레이션이 시작됐고 피크아웃까진 더 남은 거군요.
- “우크라이나 전쟁은 금방 안 끝날 거예요. 우크라이나 의회가 최근에 3개월 계엄령을 연장했는데, 그럼 8월 말까지는 싸우겠다는 의미이거든요. 대신 중국 코로나 확산은 그보다는 빨리 끝날 수 있을 겁니다. 상당히 길게 갈만한 요인은 자원수출국의 수출 규제 움직임이죠. 당장 자국 국민이 쓸 연료와 식량이 없으니까 수출을 규제해버리고 ‘이제 원료를 빼가지 말고 가공해서 수출해라’라고 하는데요. 이런 자원수출국 움직임은 앞으로 몇년 더 이어질 수 있어요.”
- 물가 얘기를 듣다보니, 인플레 피크아웃이 아직 더 남았다면 금리로 어떻게 대응할지 걱정이 되네요. 한국은행 기준금리 전망도 바뀌셨나요?
- “네. 금리 인상의 상단을 높이는 중이죠. 지금 특히 중요한 건 미 연준이 좀 당황하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에요. 미 연준이 분기마다 이사들을 대상으로 서베이 조사를 해서 정책금리 수준이 얼마가 되는 게 적절한지 ‘점도표’를 발표하는데요. 지난해 6월만 해도 점도표에선 ‘2022년 말까지 금리를 안 올린다’고 했어요.”
- 1년 전만 해도 그랬군요.
- “미 연준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인플레이션이 나오고 있다는 뜻이죠. 지금 금융시장이 왜 이렇게 불안정하냐. 저는 미 연준이 금리를 올리는 것 자체 때문에 불안해한다고 보지 않아요. 불안한 진짜 이유는 앞으로 얼마나 더 올릴지가 불확실한 거죠.”
- ‘이렇게 연준 스탠스가 계속 바뀌는 걸 보니 앞으로도 그렇겠구나’라는 의심과 불안이군요.
- “만약 미국이 정책금리를 3% 또는 3.5%까지 올린다는 기대가 확실해지면 금융시장은 당장 주가에 그걸 반영해서 주가가 빠지고 그 다음부터는 새로운 재료들을 보겠죠. 그런데 왜 계속 미 연준이 이슈이냐면, 연준이 앞으로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다는 거죠.”
- ‘지금은 3%까지 올릴 것 같은데, 몇달 있다가 또 바뀔지 모른다’고 보나봐요.
- “기대가 고착화되지가 않아요. 그래서 인플레 지표에 관심이 모아지죠. 인플레가 좀 진정이 되는 듯해야 미 연준에 대한 불안도 진정될 테니까요. 반면 한국은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먼저 기준금리를 올렸는데요. 그 이유는 (미국과는) 좀 달랐다고 봐요. 지난해엔 그렇게까지 인플레가 이슈는 아니었죠.”
- 부동산 때문이었을까요?
- “맞습니다. ‘금융불균형 누증’이라는 표현 아래 있던 가계부채와 자산가격이 더 큰 요인이었다고 봐요. 그런데 금리 인상의 주된 요인이 이제 바뀌었고, 그런 면에서 한은은 어쩔 수 없이 금리를 올릴 거예요. 하지만 금리 올리는 속도는 미국을 따라갈 수 없죠. 왜냐면 경기회복 속도나 강도가 미국만 못하기 때문이에요.”
- 미국처럼 경기가 활황이라는 신호는 솔직히 한국엔 없었죠.
- “시간 문제지 결국은 한국과 미국의 정책 금리는 역전이 될 겁니다. 그런데 단순히 금리 역전뿐만 아니라 환율 움직임이 매우 중요해요. 우려스러운 건 예전에도 한미 정책금리 역전을 경험한 적 있는데, 그때는 초기에 원화가 이렇게까지 약세가 아니었거든요. 지금은 금리가 실제로 역전되지 않았음에도, 원화가 약세인 것이 외국인 자금 이동에 영향을 많이 미치고 있어요.”
- 한은이 물가를 우선으로 하겠다고 하지만 경기도 챙겨야 할 텐데요.
- “원래 챙겨야 할 게 많은데 조정할 변수는 하나밖에 없잖아요. 금리. 이미 방향은 물가를 잡는 쪽으로 정해진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직면한 인플레가 통상적인 인플레가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죠. 경기가 좋아지면서 인플레가 생기는 게 정상인데, 지금은 물가는 오르는데 경기는 안 좋아지는 스태그플레이션 방향이잖아요. 금리를 올리면 언젠가 물가는 피크를 찍고 진정이 되겠지만 경기는 굉장히 부진해져 있는 상황이 되겠죠. 그렇다면 할 수 있는 게 뭐냐. 저는 재정정책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 최근엔 결국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저성장)으로 갈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기업 실적과 고용상황이 악화돼서 디플레이션(저물가+저성장)으로 빠질 거라는 비관론도 나오던데요. 그럼 너무 우울한데... 박사님은 어떻게 보시나요.
- “올해보다는 내년 하반기가 걱정됩니다. 미 연준이 금리를 급하게 높이고 있는데, 이게 언제쯤 경제에 부담을 줄지 시기를 보면 내년 하반기~내후년 상반기일 가능성이 있어요. 어쩌면 그때쯤 되면 ‘이젠 경기가 너무 안 좋아’라며 미 연준의 통화정책이 변화할 가능성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그게 스태그플레이션이냐’라고 물어보시면 1970년대 오일쇼크 수준의 극심한 스태그플레이션은 아닐 것 같아요. 하지만 고물가, 저성장, 일시적인 경기침체라는 ‘스태그플레이션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 맞고요. 그 정도로 보고 있어서, 질문 주신 것처럼 디플레이션까지 갈 거라 보진 않아요. 당장 내년 하반기면 경기 둔화 때문에 미 연준의 통화정책이 변화할 가능성이 있죠.”
-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사이클이 예전보다 엄청 짧아지고 있네요.
- “예측과 전망이 어려운 시기인 것 같아요. 그만큼 상황이 빠르게 변한 것도 있지만 다른 표현으로 하면 중앙은행, 특히 미 연준 통화정책의 시계가 짧아진 거죠. 미국의 1년 뒤 기대인플레이션율은 굉장히 빠르게 높아졌는데, 이상하게도 5년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3% 수준에 머물러 있어요. 또 동시에 10년 만기 미국 국채금리가 오르다가 5월 초 이후엔 떨어지고 있거든요. 왜 그럴까요. 1년을 놓고 보면 물가 상승률도 막 오르고 금리도 막 올라갈 수 있겠지만 그 뒤의 경기 상황은 되게 어려워져서 통화긴축 정책이 변할 가능성이 있다는 기대가 반영된 게 아닌가 싶어요. 내년 하반기쯤 미국의 통화정책 흐름이 바뀌게 된다면 투자자 입장에선 어쩌면 다행일 텐데요. 중앙은행이 '금리 올려도 경기가 괜찮을 것'이라고 잘못된 낙관을 가지는 게 (경제와 금융시장엔) 가장 좋지 않기 때문이죠.”
by.앤츠랩
“이런 때일수록 희망이 아닌 전망을 얘기해야 한다. 정말 솔직해져야 할 때.”
-조영무 연구위원, 경제전망이 객관적 수치가 아닌 너무 낙관적인 전제에 기반한 경우가 많다고 꼬집으며
※이 기사는 6월 3일 발행한 앤츠랩 뉴스레터의 일부입니다.